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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도요새 Apr 17. 2021

이혼할 것처럼 결혼하세요

결혼을 준비하는 많은 분들에게



결혼은 정말 엄청난 일이다. 결혼 한 번 했을 뿐인데 인생이 하루 아침에 송두리째 바뀐다. 갑자기 동거인이 바뀌고, 가족이 늘어나고, 거주환경이 바뀌고, 챙겨야 할 것이 늘어나고, 심지어 연말정산을 할 때 공제항목까지 몽땅 바뀌어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마음가짐도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분명 체감할 것이다. 


흔히 인생이 마라톤이라는 비유를 많이 하는데, 마라톤이라기에는 중간에 분명 인생이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 몇 번 있다. 그래서 인생은 철인3종경기쯤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혼을 한다는 건 수영을 끝내고 이제 싸이클로 넘어가는 단계인 셈이다. 철인3종경기에서 수영은 1.5km인데, 사이클은 40km를 가야 하니 여태까지 한 것보다 더 장거리를 뛰어야 하는 단계다. 수영만 해온 사람들에게 갑자기 사이클을 시키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당장 호흡부터 달라져야 한다. 


결혼이 정말 엄청난 일인 것에 비해 결혼에 열심히 대비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냥 '결혼은 때가 되면 다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이 진리인 것인 양 세상에 떠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로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결혼이라는 엄청난 일에 뛰어들고, 몇 년 뒤에 변호사를 찾아온다. 시작부터 잘못된 것 같다며 엉엉 우는 의뢰인들에게 눈물을 닦을 크리넥스를 건내면서 늘 마음이 좋지 않다. 이혼에 대비하는 방법, 아니 결혼에 대비하는 방법을 누가 알려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없이 많은 부부들의 이혼 동반자로 살면서 깨달은 것은 이혼할 것처럼 결혼을 해야 결혼생활에도 탈이 없다는 것이다. 이 무슨 어그로성 발언인가 싶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이혼에 대한 대비가 된 사람들이 결혼을 해야 한다. 언제든 혼자 살 수 있어야 한다.



1. 배우자가 없어도 혼자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여성분들이 아직도 남편의 소득에 기대어 살아가고, 많은 남성분들은 아내의 가사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모두가 맞벌이를 하는 세상인 것 같지만 아직도 남녀임금격차가 37%대로 OECD국가 중 독보적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어서 그렇다. 


여자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직업이 없어지고 소득이 없어진다.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바로 이것 때문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남자들은 밥솥 취사버튼도 누를줄 몰라서 아내와 별거를 시작하면 정말 몰라볼 정도로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된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피골이 상접해서 '변호사님, 죽겠습니다. 언제 끝나나요?'라고 하는데, 정말 안쓰러울 때가 많다. 


배우자가 없어도 혼자 살아갈 수 있을 준비가 되었을 때 결혼을 해야 한다. 막연히 배우자에게 기대어 결혼생활을 하려고 했다가는 원하는 부분이 충족되지 않을 때 배우자 탓을 하게 된다. 남편이 돈을 못 버는 것에 화가 나고, 아내가 집안일을 해놓지 않는 것에 화가 나는 것이다. 사실 자기 자신이 했어야 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집에서 맨날 놀면서 왜 집안일도 안해놔?", "나가서 돈 벌어온다고 유세야? 집안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해?" 같은 류의 싸움을 막기 위해서는 혼자서도 그걸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집안일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알고, 나가서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2. 결혼해도 내 재산은 내 재산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가계경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부부별산제를 채택하고 있다. 결혼 전에 가지고 있던 각자의 재산은 각자의 것이고, 혼인 중에 취득한 재산도 명의에 따라 자기 재산이 된다는 뜻이다. 소파, 냉장고, TV처럼 누구 것인지 분명하지 않을 때만 공유 재산으로 추정한다.


제830조(특유재산과 귀속불명재산) 

①부부의 일방이 혼인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중 자기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특유재산으로 한다.

②부부의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분명하지 아니한 재산은 부부의 공유로 추정한다. 


위 민법규정의 문제는 바로 '혼인 중 자기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특유재산으로 한다'라는 부분인데, 대부분 집을 남편 명의로 하는 것이 이혼할 때 문제가 될 때가 많다. 결혼한 지 10년 이상이 되어서 이혼을 하면 기여도를 50% 정도 인정해주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는데, 혼인기간이 짧은 상태에서 이혼을 한다면 남편 명의의 집은 남편이 보유하게 되고, 똑같이 담보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을 갚았는데 기여도가 적게 인정되서 가져올 수 있는 재산이 많지 않다.(반대로 아내 명의로 했을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다.)


이혼하는 시점에서 보는 우리나라 결혼제도의 고질적인 문제는 남자는 집을 해오고 여자는 혼수나 예단비를 마련하는 것이다. 남자는 자기 명의로 집을 보유하고 있기에 자신 명의의 재산도 명확하고 자신이 재산에 기여한 바를 무조건 입증할 수 있는데, 여자가 마련해온 혼수는 대개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재산'이고 감가상각도 심해서 별 가치도 없다. 


물론 남자가 집을 통채로 사왔다면 당연히 특유재산이라고 하겠지만, 요즘은 집값이 너무 비싸서 남자가 집을 해오는 경우가 잘 없다. 남자가 집값이나 보증금의 일부를 부담한 뒤 나머지는 대출을 받아 부부가 함께 원리금을 갚고, 여자가 혼수와 예단비를 부담하는 형태로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남자는 본인 명의로 집이나 보증금반환채권을 아무 감가 없이 고스란히 갖게 되는데, 여자는 본인 명의 재산도 없고 같이 대출금을 갚았어도 기여도를 인정받기 어렵다. 특히 혼수나 예단비용의 경우 수천만원이 들어가는데도 영수증을 남겨놓는 것도 아니고 대개 고액이라 할인을 받기 위해 상품권으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아서 비용을 부담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여자 입장에서는 수천만원 비용을 부담했는데 이혼할 때 보면 심지어 그게 본인 명의의 재산도 아닌 것이다.


남편들은 싸울때 "내 집에서 나가"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그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집이 아니라 우리집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이 좋다. 혼수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집 구입자금 내지 전세자금의 일부를 보태는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부담한 금액에 해당되는 지분등기를 하거나 공동임차인으로 기재하는 편이 좋다. 그래야 부부가 함께 이룩한 재산이라는 표시를 남길 수 있고, 경제공동체이지만 또 별개의 경제주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할 수 있다. 


이렇게 각자가 가계경제의 주체가 되고, 공동의 자산이지만 '내 자산'이기도 한 자산을 관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부부 쌍방이 계속해서 가계경제에 관심을 갖는다. 이혼소송을 하다보면 남편이 아내에게 모든 월급을 이체해주고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거나, 반대로 사업하는 남편의 경제상황을 아무 것도 모르고 집안일만 하는 아내들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이렇게 가계경제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가 경제적 위기가 닥치면 배우자 탓을 한다. 하지만 내 자산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3. 혼자가 외롭다고 결혼을 하면 안 된다. 


혼자 살기가 외로워서 결혼했다는 사람이 꽤 많다. 하지만 본인의 외로움을 배우자가 해결해주긴 어렵다. 일단 주중에 대개는 하루에 최소 8시간 이상 나가서 일을 할 것이고, 식사시간과 출퇴근 시간을 포함하면 더 오랜 시간 떨어져 있게 된다. 막상 배우자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서너시간 남짓이다. 외로워서 결혼을 했다는 사람은 이 서너시간을 배우자가 나에게 온전히 쏟지 않으면 화를 낸다. 


신혼 때는 별 문제가 없다. 연애할 땐 몰랐던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즐겁고 같이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할 때니까(물론 아닌 부부도 정말 많으니 만약 아니라고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처럼 쉬는데 배우자에게만 모든 시간을 쏟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도 만나야 하고, 부모님도 뵈어야 하고, 자녀가 생겼다면 자녀에게 또 시간을 쏟아야 한다. 혼자만의 취미생활을 즐기고, 요즘같은 세상엔 자기계발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결혼해서 같이 살지만 혼자만의 시간은 꼭 필요한 것이다.


외로워서 배우자에게 기대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배우자가 자신에게 소홀한 것 같다는 느낌에 배우자에게 점점 더 집착하게 된다. 그러면 배우자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한동안 MBTI테스트가 엄청 유행했는데, 이렇게 집착하는 배우자를 만나면 I유형 사람들은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절실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E유형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못 만나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배우자를 보는 것 자체가 싫어진다. 그러면 또 상대방은 점점 더 배우자가 자신에게 소홀히 한다는 생각을 하고 더 집착하게 되는 악순환이다. 그러다보면 이혼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외로워서 결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해서 외로움이 완전히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종종 외로움을 느낀다. 그 외로움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무조건 해결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엄청 배불러도 치킨을 보면 먹고싶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사람은 욕구가 무난하게 충족되었다고 해서 그 욕구를 안 느끼지는 않는다. 평소에 별로 안 외로워도 가끔 외로운 때가 있는 것이다. 그건 배우자 잘못이 아니고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혼자서도 즐겁게 잘 지낼 수 있어야 결혼해서도 배우자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야 한다.  


혼자에게든 둘에게든 잘 어울리는 술은 단연 위스키다. 


혼자 깡소주를 마시면 뭔가 슬프고 청승맞아 보이는데, 혼자 깡위스키(?)를 마시고 있으면 럭셔리하게 사색에 잠긴 사람처럼 보인다. 나는 아직 위스키의 깊은 맛은 이해를 잘 못하겠는데 아무튼 뭔가 성공의 맛이 난다. 성공의 맛을 느끼려면 꼭 온더락으로 마셔야 한다. (나는 글렌캐런 잔에 샷으로 마셔서 성공을 못하나보다.) 혼자 홀짝홀짝 위스키를 마시면 성공한 기분이 물씬 들고, 둘이서 위스키를 마시면 뭔가 진지하고 진득한 대화를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소주 먹으면서 대화할 때랑 위스키 먹으면서 대화할 때는 대화의 결이 좀 다르다. 배우자와 진지한 대화가 잘 안 되거든 위스키를 한 잔 곁들이면 좋겠다. 


혼자서 자기 인생에 책임감을 가지고 살면서 뭐든지 충분히 다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결혼을 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둘이 되어서도 별 탈 없이 잘 어우러질 수 있다. 결혼을 언제 해야 할 지 계속 고민이 된다면 혼자 성공적으로 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바로 그때가 결혼을 해야 할 때다. 조금 더 진지하고 진득한 인생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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