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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도요새 Mar 30. 2021

배우자와 잘 싸우는 법

감정만 상하게 하는 건 인생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인내심은 결혼생활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치고박고 싸우기만 한다면 그것도 결혼생활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건 매한가지다. 무엇보다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잘 싸우는' 것이다. 


부부싸움에 승패를 명확하게 판정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부부싸움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고, 승패를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도 없다. 상대를 때려눕힐 수도 없는 일이고, 누가 더 상처를 받았는지 점수를 매길 수도 없는 것이다. 스포츠처럼 경쟁하듯 부부싸움을 해봤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부 사이에 잘 싸우는 법은 너무나 명확하다. 사실 너무나 명확해서 모든 사람이 이걸 다 알고 있을텐데, 그걸 실천에 옮기는 게 너무 너무 너무 어려울 뿐이다. 



1. 내 감정의 원인을 분석한다.


부부싸움의 원인은 분노가 아니다(글마다 거듭 강조하지만 부정행위나 가정폭력같이 이혼사유가 명백한 경우는 늘 제외한다. 그런건 분노할 일이 맞다.). 어질러져 있는 장난감, 쌓여있는 설거지 더미, 건조시키는 걸 잊은 채 세탁기 속에서 쿰쿰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빨래더미 같은 걸 보고 부부싸움을 하게 된 이유는 화가 나서가 아니라, 가사노동을 제때에 하지 않은 누군가에 대한 섭섭함과 그게 내 일이기도 하다는 것에서 오는 책임감 때문이다. 2년전 집을 안 사고 그냥 전세계약을 해버렸는데 갑자기 몇억씩 올라버린 집값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2년전에 함께 고민해서 내린 최선의 선택에 대한 결과일 뿐이다. 배우자의 부모가 간섭하는 것 때문에 화가 난다면, 그건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배우자에 대한 섭섭함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매일 쌓여가는 빚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은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지 않아서이지 분노해서가 아니다. 


이렇게 내가 배우자와 싸우고 싶은 감정이 드는 원인을 분석하다보면, 해답은 객관적으로 내릴 수 있다.

물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부부싸움을 하려는 이유가 '분노'에서 오는 것이라면 이혼이 답이다. 보기만 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상대방이랑 같이 살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2. 감정과 사실을 분리한다.


남자들은 이성적이고 여자들은 감성적이라는 류의 말은 사람을 텍스트로만 접해본 작자들이나 하는 말이다. 가정에서 남자들은 자존심 때문에 감정과 사실을 분리하지 못하고, 여자들은 공감능력 때문에 감정과 사실을 분리하지 못한다. 


"내가 가장으로서 자존심이 있는데 직장에서 짤렸다는 말을 어떻게 합니까?", "남편이 맨날 짜증만 내는데 어떻게 생활비를 더 달라고 해요? 참다참다 돈 달라고 하면 50만원 꼴랑 주는데."


자존심 상한다는 감정을 좀 버리고, 직장에서 짤렸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전달해야 한다. 물론 말다툼은 좀 하겠지만 그래야 형편에 맞게 생활비도 줄이고, 재무설계도 다시 할 수 있다. 돈을 못 벌어서 짜증이 난 남편의 감정에 공감할 것이 아니라, 필요한 생활비는 달라고 사실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남편도 생활비에 대한 현실감각이 생긴다(이혼소송을 하다보면 남자들이 4인가족의 한달 생활비로 40만원쯤을 생각하는 모양새를 제법 자주 본다. 매월 3~50만원씩 따박따박 주는데 무슨 생활비가 부족하냐고 소리소리 지르는 남자들을 보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기초생활보장을 위한 최저보장수준도 4인 기준 월 1,424,752원이다.).


"너 때문에 개빡쳐" 따위의 말은 그저 감정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이고, 상대방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행태다. 이런 말은 부부싸움에 아무 도움이 안 되고, 감정과 사실은 좀 분리해서 말 할 필요가 있다.


"자꾸 돈 달라고 하는데 내가 얼마전 직장에서 짤려서 돈을 그만큼 벌지 못해서(사실) 힘들어(감정)."

"월 30만원으로 우리 4명 생활비 감당하는 게(사실) 너무 힘들고 장볼때마다 속상해(감정). 생활비 최대한 줄여볼 테니까 일단 대출이라도 알아보는 게 어떨까?(같이 노력할 해결책)"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상대방도 문제의 원인을 알고 해결책을 함께 고민할 수 있다. 힘든 감정을 억눌러가며 갈등의 원인이 된 '사실'을 전달하는데도 상대방이 감정만 내세우면서 폭언을 하거나 듣기 싫다고 화를 낸다면 그냥 갈라서는게 더 명쾌한 해법이다.  



3. 상대방을 무조건 비난하지 않는다.


화가 난다고 상대방을 무조건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쌍시옷이 들어가는 각종 욕설은 물론 '널 만나고 나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라는 식의 폭언을 주로 많이 하는데, 그야말로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문장의 나열이다. 듣는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애가 너 닮아서 이렇게 멍청한 거 아냐

너같이 무능한 사람이랑 결혼한 내가 불쌍하다

너는 뭐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냐?

XX, X같은 X


더 이상 나열하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4. (제발) 과거의 일을 들춰내지 않는다.


부부싸움이 길어지는 제일 큰 이유 중 하나가 결혼 시작 때부터의 일을 몽땅 들춰내가며 싸우기 때문이다. 그 때 상견례때 이러이러했잖아, 10년전에 집 살 때 이러이이러했잖아, 애기 태어나는 날에 이러이러했잖아, 작년 설날에 이러이러했잖아, 나열하면 그야말로 한도 끝도 없다. 과거의 일은 과거에 정리하고 넘어갔어야 한다. 참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혼 상담을 오는 모든 부부들이 상견례 때부터 섭섭한 것을 얘기하는 걸 보면 과거의 일을 과거에 정리하지 못한 게 얼마나 큰 문제가 되는지 알 수 있다. 


부부싸움을 할 때 굳이 과거의 일을 들춰내가며 말다툼을 길게 끌고갈 필요가 없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지금 당장의 문제와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다가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충분하다.



5. 사과한다.


아무리 조심을 하고 신경을 써도 부부싸움을 하면서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을 수는 없다.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토로하면 마치 상대방이 무능력하다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고, 조심스럽게 말하더라도 상대방이 스스로에게 실망하면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자녀 교육 문제로 다투다보면 마치 자식을 망치고 있는 것 같다는 죄책감에 서로 괴로울 수도 있다. 너무 화가 나 그냥 폭언을 퍼부어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미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고, 부부싸움을 아예 안 하고 살 수도 없다. 유일한 해답은 사과하는 것이다. 누가 먼저 사과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쪽이 사과를 하면, 다른 한쪽도 반드시 사과를 해야 한다. 싸움은 일방이 하는 것이 아니고 둘이 같이 하는 것이니까. 변명거리와 조건을 대며 내가 다 잘못했다는 식의 사과 말고, 자신의 잘못을 온전하게 인정하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해야 한다. 


"당신은 집에서 핑핑 놀면서 사회생활 안하니까 모르겠지만 술 먹다 보면 늦을 수도 있고 그런거야. 아무튼 튼 내가 다 잘못 했어"라는 말을 하면서 사과를 했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이혼으로 더 빠르게 가는 길이다. 

"내가 술을 먹다보니 너무 늦어서 당신 너무 걱정하게 했네.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이라도 했어야 됬는데 미안해. 당신이 집에서 걱정하는 줄 잘 아는데, 술을 먹다 보니 신나서 깜빡했어. 다음부턴 늦어도 12시까진 집에 들어올게. 더 늦어지면 꼭 미리 연락할게." 

차이가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올바른 사과의 정석이라 불리는 삼성전자 이재용의 사과문

https://news.einfomax.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0383)



6. (제발 부디) 노력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인정해준다.


사람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다만 배우자를 위해, 가정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있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내 습관이나 행동이 있다면,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꾸준히 노력을 해도 바꾸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습관이나 행동은 고칠 수 있겠지만, 성격이나 가치관은 결코 바꿀 수 없다. 반대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배우자의 모습도 아마 평생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배우자가 그걸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적어도 내 앞에서라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애를 쓴다면 그 노력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결혼생활에 인내심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바로 가정을 위해 나를 바꾸려고 노력할 때와 상대방이 바뀌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기다릴 때다. 





제대로 싸우지 않고 무의미하게 흘러간 부부싸움은 마치 주량 배틀(?) 같은 건데, 술을 미친듯이 마셔봤자 이겼거나 졌거나 다음 날 엄청난 숙취와 함께 고통스런 하루를 보낼 뿐이다. 높은 확률로 만취해서 누가 이겼는지 기억도 못할 것이다. 아마 술값을 계산한 사람이 주량배틀에선 이긴 걸텐데, 술값을 다 냈다는 면에서는 패배했다고 볼 수도 있다. 승자도 패자도 없고, 그날의 대화는 기억도 나지 않고, 그저 먹은 것을 변기통 앞에서 다시 확인하는 작업만 몇 차례 반복할 뿐이다. 숙취의 고통만 가득한 결혼생활을 하다보면 결국 이혼을 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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