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바로 이혼하지 않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혼하는 부부와 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은 놀랍게도 전혀 다르지 않다.(물론 부정행위나 가정폭력 등 명백하게 이혼사유가 뚜렷한 경우는 제외한다.) 어느 가정이나 화장실 청소를 자주 해라, 물건을 쓰면 제자리에 가져다 놔라, 그때 집을 사자고 했는데 안 사서 우리가 지금 벼락거지가 됬다 등등의 이유로 하루가 멀다 하고 말다툼을 한다.
대개 부부 사이에는 서로 다르게 자란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살게 되며 생활패턴과 성격, 가치관이 달라서 생기는 갈등이 가장 많다. 좀 더 나아가 서로 다른 가정이 합쳐지면서 시가와 처가 문제로 생기는 갈등이 있다. 돈 문제도 언제나 핫이슈다.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누가 돌볼 것인지, 어떻게 키울 것인지, 무슨 교육을 시킬 것인지 등으로 싸우게 된다. 그야말로 싸울 일 뿐이다. 애초에 부부가 된다는 것이 그 싸움을 견뎌내면서도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찾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혼하는 부부에게 대단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곤 하지만, 이혼하는 부부도 갈등의 첫 시작은 빨래를 제대로 빨래바구니에 넣지 않는 배우자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밥 먹을 때 쩝쩝거리는 소리가 거슬렸을 수도 있고, 밤에 코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 물론 그것 하나만 가지고 이혼을 하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갈등의 원인은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는 부부도 매일 겪는 문제들이다.
친구들과 주스티노스 마데이라 와인을 마시면서 불교식 화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불교식 화장이 일반 화장과 뭐가 다른지, 어떻게 사리가 나오는 것인지 한참을 토론(?)했다. 그리고 친구 한 명이 죽으면 절반으로 나눠 한쪽은 불교식 화장을 하고 다른 한쪽은 일반 화장을 해서 사리가 나오는 원리를 생각해보자는 얘기를 했다가, 사람을 어떻게 정확히 절반으로 나눌 것인가에 대해 또 한참 토론을 했다. 스님들이 평생 수행하고 인내하며 얻어 낸 결과물이니 나처럼 대충대충 살아가는 사람 입장에선 신기할 따름이다.
스님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덕목이지만 부부사이에는 제일 필요없는 덕목 중 하나가 인내심이 아닌가 싶다. 인내심의 사전적 의미는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마음'이다. 대개 우리는 인내심을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왔다. 인내심이 강해야 성공한다는 등의 성공신화를 늘 주입받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이혼에 이르게 된 사람들의 원인이 바로 인내심이라고 본다. 배우자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와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 그게 바로 이혼까지 가는 빠른 지름길이다.
배우자랑은 싸울 수 밖에 없다. 애초에 나와는 다른 사람이고, 이미 고착화된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바뀔 수도 없다. 게다가 결혼해서 헤쳐 나가야 할 길은 쉬운 게 단 하나도 없다. 결혼의 첫 단추부터 대난관이다. 시작부터 내집마련을 해야 한다니. 평생의 과업일 것 같은 내집을 어떻게든 마련해놔야 한다. 매매든 전세든 월세든. 애를 낳고 키우는 건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게다가 양가 부모님이 다 이래라 저래라 간섭이다. 부모 손 안 빌리고 내집 마련이 불가능하기에 또 부모님 잔소리를 안 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없어졌고, 요새는 N잡을 해야 된다느니 근로소득의 시대는 갔다느니 난린데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노후 대비까지 빡세게 해야 한다. 애초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는데, 애초부터 나랑 맞지도 않는 사람이랑 그걸 평생 같이 해야되는 게 바로 결혼생활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참고 말자.'라는 생각을 하고 매번 참아버리면 열반의 길에 오르지 않고서야 결국 터지게 되어 있다. 사람이 참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참다 참다 못해 터져버리면, 배우자는 갑자기 터진 상대방에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여태 아무 말 안 하고 잘 지내다가 갑자기 왜그래?" 라는 태평한 소리를 하면서. 그럼 그 말을 듣는 사람은 또 열을 받는 거다. "여태까지 내가 다 참고 살았잖아. 나도 이제 못 참아." 그리고 이혼의 길로 향한다.
(아니면 정말 끝까지 잘 참아서 불교식 화장을 하면 사리가 잔뜩 나올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고승의 길로 가신 분은 내가 여태 본 적이 없어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주스티노스 마데이라 시리즈(후스티노가 맞는 표기가 아닌가 싶긴 한데 확신이 안 선다.)는 포트와인인데, 도수가 19도 정도 된다. 와인치고는 매우 도수가 높은 편인데, 높은 도수에 비해 엄청 달다구리한 맛이다. 케이크랑 초콜릿 같은 디저트류와 찰떡궁합이다. 도수가 높아 밤에 혼자 한 잔 홀짝홀짝 마시고 잘 수 있어서 늘 집에 종류별로 여러 병 구비해놓고 있다. 일반 와인은 오픈하면 바로 먹어야 하는 것에 비해 포트와인은 개봉을 해도 뚜껑을 닫아 서늘한 곳에 두면 한 달 정도는 먹을 수 있다. 그야말로 혼술러를 위한 와인이다.
포트와인은 주정강화와인인데, 일반 와인에 높은 도수의 브랜디를 섞어서 만든다. 와인을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이러한 방법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도수는 높아지면서 더 단맛이 난다니 그 원리가 신기할 따름이다. 와인 색깔도 아주 위스키처럼 예쁘다. 와인을 다 먹고나서 와인잔에 살짝 라인이 남는데, 그게 또 좋아서 자꾸 찾게 된다.
브랜디를 섞었더니 보관도 더 오래할 수 있고 더 달달해진 포트와인처럼 부부 사이도 쎈 걸 들이부어야 더 달달하고 오래 간다. 화가 나면 참지 말고 그때 그때 싸워야 더 굳건하게 오래 가는 부부가 될 수 있다는 거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상대방이 어떤 행동이 문제인지, 앞으로 어떻게 개선해나갈 것인지를 그때 그때 싸우며 설명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참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