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고민해볼게요."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오전부터 이혼 사건 신규 상담을 했다. 폭언과 폭행을 저지른 남편과 이혼을 하려고 하는 여자분이었다. 남편이 폭언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 묻자 차마 대답을 못하고 말을 돌린다. 한쪽 이마엔 시퍼런 멍이 든 채로.
재산분할이 대략적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설명을 마치고, 재판 진행 절차를 알려드렸다. 다행히 미성년 자녀가 없었고, 재산도 많지 않아 재판이 오래 걸릴 것 같지도 않았다. 잘 상담을 마치고 마무리 하려는데 마지막으로 의뢰인이 한 번 더 묻는다.
"변호사님, 남편이 실수로 한 번 그런 것 같은데 일단 이혼은 조금 더 고민해봐도 될까요?"
그러시라고 했다.
많은 의뢰인이 같은 질문을 한다.
실수로 그런 것 같은데 바뀌지 않을까요?
한 번 용서해주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한 번 더 기회를 주면 어떨까요?
질문을 하고 고민해보겠다며 돌아간 의뢰인 중 십중팔구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사건을 의뢰하러 왔다.
사람은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늘 쌍욕을 퍼부은 배우자는 내일도 쌍욕을 퍼부을 것이다.
배우자를 두고 나가서 바람을 피웠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다른 사람과 또 그러고 있을 거다.
자녀를 때리거나 물건처럼 대하는 사람은 자녀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아직도 구시대적 가부장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영원히 그렇게 살다가 도태될 것이다.
명백한 이혼사유가 없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격차이라든지 경제관념의 차이라든지, 그런건 더더욱 바뀌지 않는다.
왜 그렇게 자신의 배우자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처음에는 의뢰인들에게 잘 고민해보시라고 했지만 요즘은 '안 바뀔 거라는 거, 더 잘 아시잖아요.'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의뢰인들의 동공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모른다. 바뀌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믿고 싶어 하는 것이 결혼생활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자기 고집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런 고집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강요하게 된다. 밖에선 남들 비위 맞춰주느라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데, 집에서 쓰는 치약 정도는 자기가 짜고 싶은 곳부터 짜야 되고 수건은 두고 싶은 데다 아무렇게나 둬야 하는 것이다.
내가 술을 처음 먹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디서든 잘 먹는 술은 청하다. 일단 매우 맛있다. 청하 한 병 주세요 하고 시원하게 넘기는 그 기분은 소주를 시킬 때랑은 분명 다른 청량함이 있다(소주 특유의 알콜 냄새가 덜 나는 덕분인 것 같다.). 고기든 생선이든 가리지 않고 잘 어울린다. 소주보다야 비싸지만 가격도 아주 저렴하다.
소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밍밍해서(?) 싫다고들 하는데, 그래도 회에는 역시 청하라는걸 부인할 수는 없을 거다. 청하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86년에 처음 출시되어 맛에 변함이 없는데(으르신들이랑 청하 먹으면 예전엔 이 맛이 아니었다고들 하는데 내가 먹어 본 뒤로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의외로 도수는 계속 낮아져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4도였는데 요샌 또 13도라고 한다.
배우자가 바뀌길 바란다면, 청하를 생각하면 좋겠다. 결코 그 본질은 바뀌지 않을텐데, 아무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도수가 낮아지긴 한다. 애초에 청하를 시킨 건 그게 청하라서 시킨거지, 이게 13도인지 14도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소주를 시킬 사람이었다면 청하를 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배우자와 결혼을 결심했을 당시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 사람의 가치나 덕목이 여전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이 사람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도 될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그냥 같이 투닥투닥 살면서 도수라도 좀 낮아지길 바라며 존버하는 거다. 하지만 청하보고 소주가 되라고 한다면, 자세한 제조공정은 모르겠지만 그건 아무튼 너무 복잡한 과정이다. 그렇게는 안 될 거다. 소주를 먹고 싶다면 그냥 청하는 옆으로 치우고 소주를 시키면 된다.
하지만 단언컨대 가정폭력 따위의 행동을 하는 배우자에게는 기회를 줄 필요가 없다. 배우자나 자녀, 부모님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고,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감히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치가 떨릴 따름이다. 청하를 마실지 소주를 마실지는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메틸알코올을 마시는 건 누구도 원치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