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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도요새 Mar 30. 2021

이별의 전문가

남들 이별 시켜주는 것이 직업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다들 핑계를 찾고 있었던 것 뿐인지 모르겠지만 홈술이 대세가 되었다.

원래 프로 홈술러였던 나는 다양한 주종을 더 가까운 곳에서 많이 팔기 시작한 것이 기쁘기만 하다.

이제는 집 앞 편의점에서도 제법 와인을 갖추어 놓고 있고, 심지어 특가로 판매하기까지 한다. 물론 그 특가가 정말 특가인지 어제까지 9천원이던걸 오늘 1+1해서 2만원에 파는 것인지 찾아보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가성비의 나라에서 가성비 좋은 술은 언제나 옳다. 

편의점에서 9,900원에 팔고 있던 스팀슨 샤르도네 와인을 깠다. 코르크도 없이 뚜껑을 돌리기만 하면 되는 와인이라 지나치게 편리하다. 집에 있던 양파와 할라페뇨, 페페론치노, 새우를 넣어 크림스파게티를 뚝딱 만들어서 함께 먹었다. 와인도 뚝딱뚝딱 마셨다. 가짜 사과맛(?) 같은 맛에 벌컥벌컥 넘길 수 있는 가벼운 느낌이지만 9,900원에 이 정도면 아주 흡족하게 마실 수 있었다. 아무런 특색도 없는 맛이라 퇴근하고 뚝딱 만든 아무런 특색 없는 스파게티와도 잘 어울렸다. 초록색 도는 노란색의 와인 빛깔이 아주 오묘하다.







어쩌다보니 남들을 이별시키는 것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다.

이별에는 케케묵은 감정이 함께하지 않을 수 없어서 자꾸만 술을 찾게 된다. 의뢰인들이 뿜어내는 먼지쌓인 감정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서는 적절한 알콜로 뇌를 희석시키는 수밖에 없다. 


결혼생활이나 회사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결국은 삶의 가성비를 유지하는 것과 다름없다.

가성비가 누구에게나 다르게 느껴지듯 견딜 수 있는 삶의 무게도 저마다 다르다.

사람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에 걸맞는 적절한 삶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게 아닌 것 같은데, 내 인생이 너무 가성비 떨어지는 질 나쁜 삶인 것 같은데 싶을때 나를 찾아온다. 


견딜 수 없는 배우자. 견딜 수 없는 직장. 그런 것들을 해결해주는 것이다.

견디기 위해 노력했던 세월들을 내가 어떻게 다 공감하고 이해하겠냐만 그래도 누군가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최후의 보루가 되어준다는 것은 어찌 보면 보람있으면서도 참 버거운 일이다. 변호사는 그런 버거움에 익숙해져야 하는 직업이다.


변호사는 남들이 견디지 못한 삶의 무게를 재보고 거기에 지연손해금까지 붙여서 돈으로 계산한다.

이혼한 누군가의 눈물은 1,500만원이 되고, 해고를 당한 누군가의 노동력은 5,000만원이 된다.

이렇게 모든 이별을 돈으로 계산하다보면 자신의 고통이 고작 이것 밖에 안 되냐며 오열하는 의뢰인을 종종 본다. 마음은 아프지만, 그 고통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을 만한 금액을 전문가가 된 지금도 잘 모르겠다. 1억? 10억? 100억? 


누군가의 삶의 무게를 돈으로 환산하다가 모처럼 칼퇴를 하면 9,900원 짜리 스팀슨 와인을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다. 나의 오늘 하루의 무게는 9,900원이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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