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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도요새 May 19. 2021

누구나 가슴속에 이혼 서류 품고 있다

정상입니다

직장인들이 늘 가슴속에 사표 하나씩 품고 있는 것처럼 결혼한 부부도 누구나 가슴속에 이혼 서류 하나씩 품고 있다. 그건 지극히 정상이니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닌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직장인들도 다 사표 품고 살지만 그걸 실제로 매번 제출하지는 않는다. 이혼 고민도 모든 부부가 다 하지만 실제로 다 이혼하는 것은 아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한다. 싸워도 관계가 금방 회복된다는 취지로 한 말일 텐데 어떻게 생겨난 속담인지는 모르겠지만 물의 상태변화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은 속담임이 분명하다. 칼로 물은 못 잘라도, 물이 응고된 얼음은 칼로 얼마든지 벨 수 있다. 지속적으로 관계가 냉각된다면 칼로 그깟 얼음 베는 건 일도 아니다. 


부부싸움의 유형을 크게 카테고리를 나누면 서로의 가치관 차이에서 오는 갈등, 생활패턴 차이에서 오는 갈등, 가사노동 분담에서 비롯된 갈등, 자녀문제로 인한 갈등, 돈 문제로 인한 갈등, 양가 부모님으로 인한 갈등일 것이다. 어느 카테고리이든 가슴속에 품는 이혼 서류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갈등이 누적되면 이혼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재판상 이혼까지 오려면 모든 카테고리에서 지속적으로 갈등이 누적된다. 


부부싸움 유형만 봐도 느껴지듯, 부부싸움에는 서로의 답변(answer)만 있을 뿐 정답(solution)이 없다. (실제로 정답이 있는 건 딱 하난데, 그건 가사노동 분담으로 인한 갈등이다. 가사노동 제대로 안 하는 사람이 똑바로 더 해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근데 안 하는 사람은 끝까지 안 하려고 해서 결국은 이것도 답이 없다.) 답이 없는 문제로 싸우다 보니 해결이 안 된다. 그래서 늘 같은 문제로 싸우고 또 싸운다.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도 그냥 답이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하는 말일 것이다. 


많은 인간관계 문제의 해결방법은 서로 더 이상 안 보는 거다. 싫은 사람 더 안 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부부관계는 더 이상 안 볼 수 없다는 점에서부터 그 비극이 시작된다. 답도 없는데 얼굴도 계속 봐야 한다. 답이 없는 싸움을 반복하는 이유는, 정답이 없다고 해서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답을 찾으려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답이 없어도 관계가 냉각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구글에서 이수정 오은영 백분토론을 검색했더니 나온 이미지인데 원본 출처를 모르겠다. 명짤이다 진짜.


사람이 사람 때문에 죽는다는 이수정 교수님과 사람은 사람에게 치유받는다는 오은영 박사님으로부터 부부싸움의 해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배우자에 대한 기대감은 이수정 교수님의 입장을 따르는 것이 좋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부부싸움을 백날 해서 배우자의 성향이나 행동을 바꿔 보려고 노력해도 배우자는 바뀌지 않는다. 이미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인데 무슨 수로 바꾸겠는가. 좋아하는 일 열개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일 한 가지 안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이야기해봤자 배우자는 기어코 그 싫어하는 일을 매번 해내는 존재다. 


어차피 인간에게는 희망이 없다. 사람이 자기 행동을 바꾸려고 하는 유일한 경우는 보상이 있을 때와 처벌이 있을 때다. 하지만 보상이든 처벌이든 가정 내에서는 쉽지 않다. 그러니 배우자가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는 것이 좋다. 당신이 배우자의 행동이나 태도가 바뀌길 바라는 만큼 배우자도 당신이 바뀌길 바랄 수도 있다. 어차피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다. 그냥 다들 조금씩은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기대를 버리는 것이 서로의 정신건강을 위해 좋다.


반면 배우자에 대한 태도는 오은영 박사님을 따르는 것이 갈등을 줄일 수 있다. 배우자의 말을 들어주고, 배우자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고, 배우자의 입장에 공감해주어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수적이다. 싸웠다고 해서 대화를 중단하면 관계만 계속해서 냉각될 뿐이다. 그러니 평소에는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쌓아두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뻥 터뜨리고는 "평소에 내가 얼마나 참았는데!"라는 식의 부부싸움 방식을 고수할 것이라면 더 이상 시간낭비하지 말고 이혼을 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다 자신만의 입장과 변명이 있다. 음주운전을 해서 대여섯 번씩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들도 다 변명거리가 있다. 듣는 변호사 입장에선 대부분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변명인데 그 똑같은 변명을 법정 가서 의뢰인 대신해줘야 하는 것이 아주 고역이다. (이때 유체이탈 화법을 쓰면 좋다.) 배우자도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에 대한 나름의 입장과 변명이 있을 것이다. 그날따라 회사에서 일이 잘 안 풀려서 집에 와서라도 짜증을 풀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 변명을 듣는 것조차 짜증 날 수도 있을 텐데, 그냥 '그랬구나'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고 가만히 듣고 있으면 된다. 그랬구나아~ 직장에서 승진을 못해서 힘들었구나아~ 그래서 요새 계속 우울했구나아~


물론 대화를 한다고 해서 화가 난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것은 아닐 것이고 어차피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겠지만, 적어도 서로의 관계가 더 이상 냉각되진 않을 수 있다. 화가 난다고 그냥 대화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대화를 하며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면 다음번에 똑같은 일로 또 싸울 때 자기 행동을 조금이라도 반성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버려도, 더 나아지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있어야 같이 살아갈 수 있다.





배우자에 대한 큰 기대도 없고 대화를 아무리 해봐도 소용이 없어서 가슴속에 품고 사는 그 이혼 서류를 낼지 말지 계속해서 고민이 된다면,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에 힘든 것인지 정말 이혼을 해야 되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된다. 그냥 스트레스 때문에 힘든 것이면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으면 된다. 


이때 추천하는 방법은 '시발비용 자유적금'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은행에 아무 때나 얼마든지 자유롭게 돈을 넣을 수 있는 자유적금 통장을 하나 만든다(기간은 자유롭게 6개월 ~ 1년 정도로 설정하면 된다.). 그래서 배우자가 열 받게 할 때마다 적금통장에 돈을 넣는 거다(무조건 만원씩 입금하는 방법도 있고, 분노의 정도에 따라 금액을 다르게 입금하는 방법도 있다.). 입금할 때 메모란에 열 받게 한 이유들을 간단히 기재한다. 나는 가슴속에 품은 사표 감별을 위해 6개월 만기 적금통장을 쓰는데 통장 이름은 '빡칠 때마다 만원씩'이다.


적금 만기가 되면 적금통장을 해지하고 거기 입금된 돈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쓴다. 사치품을 살 수도 있고, 평소에 사고 싶었는데 못 산 것을 살 수도 있고, 비싼 호텔에서 1박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적금통장 메모란에 기재되어 있는 분노의 이유들을 다시 한번 본다. 다시 곱씹어보면서 그냥 '아 이런 일도 있었지'라면서 화가 가라앉는다면 그냥 스트레스 때문에 힘든 것이니 스트레스를 잘 해소할 방법을 찾으면 되고, 그래도 계속 화가 나고 가슴이 답답하다면 그냥 이혼을 하는 것이 정답(soluti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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