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다. 어렸을 땐 어린이날 선물을 받으려고 한참 고민했는데 어른이 되니 장난감을 못 받아서 아쉽다. 심지어 그때만큼이나 장난감을 아직도 좋아하는데도! 엄마한테 헤어도러블 인형을 사달라고 했더니 엄마는 내가 농담하는 줄 안다. 농담이 아닌데! 결국 동생이랑 1+1 제품을 사서 하나씩 사서 나눠갖자고 했다. 어른이 어린이보다 좋은 건 그냥 내 돈 주고 사는 것이 가능하단 것이다.
진짜 너무 예쁜 헤어도러블 인형 시리즈.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나를 헤어도러블 언박싱 영상으로 이끌었는데 너무 예뻐서 계속 보고 있다. 사고싶다....
이혼 소송 상담을 하면 어린이들을 접할 기회가 많다. 상담을 오는 의뢰인들이 아이를 맡겨둘 곳이 없어서 그냥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상담실에 있는 과자나 사탕을 아이들에게 건넨다. 그 어린이들이 긴 상담 시간 동안 조용히 하길 바랄 수는 없는 일이고, 보통 핸드폰을 쥐어주고 뽀로로나 헬로카봇 같은걸 틀어준다. 옆에서 흘러나오는 애니메이션 소리와 함께 이혼에 대한 상담을 하고 있으면 기묘한 기분이다. 나는 청각이 진짜 예민한 편인데(청각테스트를 해봐도 아직도 10대의 청각을 가지고 있다고 나온다.), 옆에서 그렇게 계속 소리가 나면 집중이 좀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헬로카봇 같은 건 은근 스토리가 신경 쓰인다.
의뢰인들은 어린 자녀들이 이혼이 뭔지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가 무조건 미숙하고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고 그냥 얼버무린다. '엄마는 이제 안 와', '아빠는 저기 멀리 떠나 있기로 했어'. 그냥 어른의 관점에서 어린이가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말로 대강 설명해준다. 이게 어린 자녀의 충격을 덜어주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린이들도 엄마, 아빠의 냉랭한 분위기를 보면서 이미 '이혼'이라는 것이 뭔지 자신들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혼 결심은 하루 만에 뚝딱 하는 것이 아니고 당연히 오랜 기간 가정에서 갈등이 이어져왔을 것이다. 부부싸움을 하면서 "이혼하자!", "그래! 이혼하자면 겁먹을 줄 알아?"라면서 이혼이라는 단어를 종종 썼을 것이다. "이혼하면 애는 누가 키울 건데?", "너 혼자 애 키울 수 있을 거 같아?"라는 말도 그 뒤에 종종 덧붙였을 것이다. 부모가 싸우는 현장에서 꼭 마지막 즈음에 들려오는 단어인 '이혼'과 그 뒤에 따라붙는 '애는 누가 키울 건데'를 들으며 어린이들은 큰 고민에 빠진다.
어린이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이 둘 사이의 갈등으로 이혼을 한다고 해도, 그게 나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잘못해서, 나를 키우기 싫어서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한다고 생각한다. 매번 엄마 아빠는 애는 누가 키울 것이냐고 싸우니까. 게다가 '이혼'은 꼭 부모님이 싸울 때 나오는 단어기 때문에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이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채로 '엄마는 이제 안 와', '아빠는 저기 멀리 떠나 있기로 했어'라고 얼버무린다면 자녀는 자기가 잘못해서 한쪽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어린이들이 이혼소송 초반에 면접교섭을 하기 싫어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 큰 성인도 연인과 이별을 하거나 회사에서 짤리는 등 '버림받았다'라는 경험을 하는 것이 극복하기 쉬운 일은 아닌데, 아직 힘든 경험을 많이 해보지 못한 어린이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인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하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런 힘든 감정이 잠깐 지나가고 끝나면 다행인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끊임없이 남에게서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게 된다던지 누군가와 떨어지는 것을 못 견뎌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제발 이혼을 한다면 어린 자녀에게도 이혼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어린이에게 민법 조항을 들먹이며 우리 사이에 이러한 이혼사유가 있어서 이혼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라는 것이 아니다. 어린 자녀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게끔, 그리고 정서적으로 불안해하지 않게끔 설명해주라는 것이다.
이혼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부터 설명해야 한다. 이혼은 수없이 많은 갈등 해결 방안 중 하나일 뿐이다. 작년 우리나라 이혼 건수는 10만 6,500건이었다(이게 얼마나 많은 건지 감이 안 올 수도 있는데, 작년 우리나라 혼인건수는 21만 3,502건이었다.). 정말 많은 부부가 갈등 해결방안으로 이혼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 자녀는 부모님이 싸우는 때 말고는 이혼이라는 단어를 들어볼 일이 별로 없어서 이혼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엄마, 아빠가 서로 화해하기 위해서 최종적으로 이혼을 하는 것이라는 걸 설명해줘야 한다.
그리고 자녀 때문에 이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고, 자녀가 여전히 부모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계속해서 느낄 수 있게끔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 필요하면 자녀가 심리상담도 받을 수 있게끔 도와주어야 한다. 양육하지 않는 쪽에서는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고, 형식적인 면접교섭을 할 것이 아니라 자녀와 온전히 시간을 보내야 한다. 비록 같이 살지는 않지만 영원히 부모 역할을 할 것이고,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반대로 양육하는 쪽에선 자녀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곁에 있어주고, 상대방이 면접교섭을 할 수 있게 잘 협조해주어야 한다.
또 앞으로 변화될 상황에 대해서도 천천히 납득을 시켜야 한다. 더 이상 동거하지 않는 부모, 갑작스러운 이사, 갑자기 바뀐 경제적 상황 등 자녀가 갑작스러운 변화에 많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자녀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부모가 둘 다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