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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도요새 Apr 08. 2021

벼락거지가 된 30대 부부들에게

돈 때문에 이혼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이혼사유 중 부정행위와 더불어 스테디셀러인 것은 바로 '배우자의 경제적 무능력'이다. 요즘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다들 불로소득에 혈안이 되어 근로소득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어서 더욱 더 그렇다.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다는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오면서 부자가 되지 못한 것이 마치 내 배우자의 잘못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특히 30대 젊은 부부들이 경제 문제로 이혼을 고민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이혼 소송을 하다보면 정말 다양한 종류의 가정경제 문제로 인한 갈등을 본다. 부자는 부자대로의 경제적 갈등이 있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 고통이 있다. 이혼 소송에선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돈이 많은 부부가 30억원을 놓고 싸우건, 가난한 부부가 마이너스 대출 1,000만원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를 놓고 싸우건 그 부부에게는 그것이 그때까지 일궈온 전재산이었고 상대방과 이별하고 나서 그 돈으로 다시 삶을 꾸려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경제가 다 우상향 곡선을 그리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시장은 제로섬이고, 벼락부자가 됬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만큼 누군가는 많은 돈을 잃고 있다.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벼락부자가 많아지려면 벼락거지도 그만큼 많아져야 시장의 균형이 맞는 셈이다.


집을 마련하지 못한 30대 부부들이 경제 문제로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결혼할 때 내가 영끌해서 집 사자고 했는데, 당신이 전세로 들어가자고 해서 우리가 벼락거지가 되었어! 

분명히 경제적 상황에는 변동이 없는데, 남들이 부자가 되어 버린 것에 대한 나의 상대적 박탈감을 배우자 탓을 해서라도 해소하고 싶은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당신의 잘못도, 배우자의 잘못도 아니다.





지금의 30대는 정말 불쌍하다. 3700년전 점토판에서부터 요즘 젊은이들을 탓하는 라떼가 가득한 세상에서 어느 세대인들 고통이 없겠냐만, 유독 그렇다.

20대 땐 '88만원 세대'라고 불렸다. 취업난에 비정규직으로 88만원을 벌며 살아간다고 했다.

운이 좋아서, 혹은 정말 노오오력해서 취업에 성공했더니 이젠 '헬조선'에 살아간다고 했다. 삶의 터전은 갑자기 지옥불반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해서 아프다고도 못했다.

곧이어 20대 후반이 되자 'N포세대'로 다시 정의되었다. 연애, 결혼, 출산을 다 포기하고 산다고 했다.(나중엔 포기하는 항목마저 몇 가지 더 추가되었다.)

그 모든 험난한 역경을 딛고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고 노오오오오오오오력해서 연애, 결혼, 출산까지 성공했더니 이제 '벼락거지'가 되어버렸다. 


그동안 힘들게 노력했던 만큼의 박탈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차라리 노력이라도 안하고 88만원 벌면서 헬조선에서 다 포기한 채 살았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았을텐데.


경제문제로 이혼을 고민하는 많은 부부들이 이 박탈감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는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전세집을 구하자는 결정은 분명 배우자와 함께 내렸을 것이고, 과거에 영끌해서 집을 샀더라도 대출금을 갚느라 허덕이면서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에 대해 또 배우자를 원망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돌연 '벼락거지'가 되었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건 당신의 배우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 것은 오롯이 부부의 몫이다. 이혼하는 부부가 많아지는 것을 개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늘 의문이다. 벼락거지가 된 다음엔 또 무엇이 되어 있을까.



일본 오키나와의 특산품 중에는 '아와모리'라는 술이 있다.

특이하게도 아와모리는 일반적으로 한국이나 일본에서 먹는 쌀이 아니라 안남미(인도 커리집이나 쌀국수집에서 흔히 보는 길쭉하고 퍼석퍼석한 쌀이다.)로 만든 술이다. 오키나와는 논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석회암 지대라 쌀을 대부분 수입해와서 먹었다고 한다. 어렵게 수입해온 쌀로 또 훌륭한 누군가는 술을 빚어 먹겠다고 아와모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내가 마셔본 아와모리는 화이트타이거 5년이 전부인데, 스트레이트로 마셨을 때 처음 목넘김이 정말 부드러워서 이게 40도짜리가 맞나 싶었다. 고량주나 보드카를 마실 때 목부터 타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물론 몇 초 뒤에 곧바로 훅 올라왔지만. 오키나와에서는 온더락으로 먹거나 커피를 타먹는다고 했다. 꽤 맛있는 술이었고, 만약 오키나와를 가게 될 일이 있다면 다른 종류도 더 먹어보고 싶다.


좀처럼 쌀로 술을 만들어 먹기 힘든 척박한 환경에서도 오키나와 사람들은 아와모리를 만들었다. 그들의 삶의 터전에 맞게 적절한 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무튼 술꾼들은 어떻게든 숢(술과 삶을 떼어놓을 수 없다.)을 살아낸다. 벼락거지가 된 30대 부부들도 오키나와의 술꾼들처럼 어떻게든 삶을 살아냈으면 좋겠다. 쌀을 구하기 힘들었던 오키나와 술꾼들이 안남미로 어떻게든 술을 만들 생각을 했듯, 집을 사지 못해서 벼락거지가 되었다면 그 척박한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또 가정경제를 일으키기 위한 묘수를 떠올려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 오키나와의 술꾼들이 어떻게든 석회암 지대에서 쌀을 키워보려고 노력해봤자 아와모리는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배우자가 제대로 돈도 벌지 않으면서 노름이나 도박에 빠졌거나, 형편에 맞지 않게 사치을 일삼고 낭비벽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 가정경제 문제는 십중팔구는 배우자 탓이 아니다. 문제의 원인이 배우자가 아니라면, 배우자를 문제해결을 위한 동반자라고 생각하는 편이 인생에 더 도움이 된다. 소득이 얼마건간에 혼자 버는 것보단 둘이 버는 게 더 많다. 배우자와 같이 가계 지출을 분석하고, 어떻게 시드머니를 모으고 재테크를 할 것인지 재무설계를 받아보고, '벼락거지'라는 이 난관을 또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나중에 정말 이 사람은 아니다 싶어 이혼을 하게 되더라도, 아무튼 분할할 재산은 더 많은 게 좋다.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나도 아직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한 벼락거지다. 작년에 어렵게 구한 전세 아파트의 매매가는 6개월 사이에 1억이 올랐다. 허허허. 내가 벼락거지가 된 만큼 집주인은 벼락부자가 되었을 거다. 이 나라는 뭐 이렇게 벼락이 자주 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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