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삘의 북캐스트 Book&Book] 네번째 이야기
철학자도 아니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음직한 '삶' 또는 '인생'에 대한 말들이 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인생 뭐 있나" "그래도, 인생 뭐 있더라" "사는 게 왜 이리 힘들고 어려울까?" "그냥 사는 거지 뭐" "죽지 못해 산다" "이번 생에서는 틀렸어" 등등.
다 맞는 말이다. 필자 역시 평소에 흔히 쓰는 말이다. 필자가 아직 달관할 만큼의 인생을 살아온 것도 아니고, 요즘 흔히 들을 수 있는 '백세시대'를 감안하면 이제 겨우 인생의 절반 즈음에 와 있을 뿐이지만, 언뜻 드는 생각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그만큼 각각 값지고 의미가 있기에 그 소중함을 애써 지켜나가려는 몸부림 속에서 역설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낀다고 생각한다. <라틴어 수업>과 <인생 수업>은 바로 그 소중한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도, 인생을 한 번쯤 되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가르침과 지침을 전해준다.
<라틴어 수업>은 한국인 최초 바티칸 대법원의 변호사이자 가톨릭 사제인 한동일 교수가 2010년 하반기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진행했던 ‘초급/중급 라틴어’ 강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당시 저자의 강의는 단순한 라틴어 어학 강의가 아니라 라틴어의 체계, 로마시대의 문화/법/종교, 작가의 인생 경험 등을 바탕으로 현대인이 현실의 삶에서 느끼고 겪는 문제들을 함께 녹여낸 종합 인문 교양 강의로 인근 학교의 청강생들까지 몰려들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책 말미에는 수업을 들었던 제자들이 책 출간을 기념해 보내온 편지를 함께 싣고 있다.
<인생 수업>의 저자인 법륜 스님 ‘즉문즉설(則問則說)’을 통해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대안적인 삶을 이야기해왔다. <인생 수업>은 행복하게 살고, 행복하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해 법륜 스님의 인생에 대한 지혜가 담긴 책이다.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한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필자를 비롯한 현대인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주고 인생살이의 지침이 되어 준다. 마치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듯 쓰인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서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고 있진 않은지 머리부터 가슴까지 30cm의 여행을 해보자.
이 책은 총 28개의 강의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Lectio 1 내 안의 위대한 유치함, Lectio 2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 Lectio 3 라틴어의 고상함, Lectio 4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
재미있는 점은 각 강의마다 라티어로 된 문장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그 문장과 관련된 얘기들을 작가의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나간다. 저자가 각 강의마다 소개하고 있는 라틴어 문장 中 '인생살이'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만을 필자가 편집해서 정리해 보았다.
★ 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 :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공부한다
- 학문을 한다는 것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앎의 창으로 인간과 삶을 바라보며 좀 더 나은 관점과 대안을 제시해야 함. 이 점이 바로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라는 말에 부합하는 공부의 길
★ Summa cum laude pro se quisque : 각자 자기를 위한 '숨마 쿰 라우데'
- ‘숨마 쿰 라우데’는 유럽의 대학에서 졸업장의 ‘최우등’을 표시할 때 사용하는 말. 라틴어의 성적 구분은 '최우등 - 우수 - 우등 - 좋음 - 잘했음'으로 평가 언어가 모두 긍정적인 표현임. 스스로의 발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닌 ‘전보다’ 발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만듬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가 나를 ‘숨마 쿰 라우데’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숨마 쿰 라우데’라는 존재감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낮추지 않아도 세상은 여러 모로 우리를 위축되게 하고 보잘것없게 만드니까요. 그런 가운데 우리 자신마저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대한다면 어느 누가 나를 존중해주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스스로에, 또 무언 가에 ‘숨마 쿰 라우데’입니다.
★ Ego sum operarius studens :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 공부는 단발적인 행위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님. 공부에 대한 강약 조절과 리듬 조절을 해야 함. 이것에 실패하면 금방 지치거나 포기할 수 있음
- 어떤 날은 컨디션이 좋아서 집중이 잘 되고, 그러면 목표를 넘어서는 성과가 있을 수도 있음. 반대로 힘껏 노력했음에도 전혀 그렇지 못한 날도 있는 법. 상반된 두 날은 각각 별개인 날들이 아니라 공부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생기는 리듬이고 흐름임
-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과정을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도록 지속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함. 수도자들이 입는 옷 ‘하비투스(habitus)'에서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것을 한다는 의미에서 '습관'이라는 뜻이 파생하게 된 것. 머리로만 공부하면 몰아서 해도 반짝하고 끝나지만, 몸으로 공부하면 습관이 생김. '하비투스'라는 말처럼 매일의 습관으로 쌓인 공부가 그 사람의 미래가 됨. 공부라는 노동을 통해 지식을 머릿속에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공부하는 노동자가 되어야 함
★ Do ut Des : 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준다
- 영어의 'Give and take'로 보면 됨. 쉽게 말해 공짜는 없다는 것임. 다만, 정 없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상호주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함. 어쩌면 삶이란 자기 자신의 자아실현만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준비 속에서 좀 더 완성될 수 있는 것. 그 안에서 자아실현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일 수도...
★ Tempus est optimus iudex : 시간은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다
‘베아티투도(beatitudo)’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행복’을 뜻하는 단어인데 ‘베오(beo)’라는 동사와 ‘아티투도(attitudo)’라는 명사의 합성어입니다. 여기에서 ‘베오’는 ‘복되게 하다, 행복하게 하다’라는 의미이고 ‘아티투도’는 ‘태도나 자세,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즉 ‘베아티투도’라는 단어는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행복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단어가 유독 마음에 남는 것은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 때문입니다.
★ Carpe Diem : 오늘 하루를 즐겨라
- ‘카르페 디엠’은 당장 눈앞의 것만 챙기고 감각적인 즐거움에 의존하여 살라는 뜻이 아님. 매 순간 충만한 생의 의미를 느끼면서 살아가라는 경구임. 다만,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것도, 과거에 매여 오늘을 보지 못하는 것도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 함
★ Aetates Romanorum : 로마인의 나이
우리는 보통 나와 같은 또래의 사람이 무언가 큰 성취를 이루었을 때, 나는 그동안 뭐했나 싶은 생각을 하거나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과 열등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절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학대하는 것과 같아요. 사회로 나가면 대체로 내가 처한 상황은 불리합니다. 나를 칭찬하는 사람들보다 나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고, 나를 치켜세우려는 사람보다 깎아내리려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 속에서 나마저 나를 미워한다면 더 이상 누가 날 사랑하겠습니까? 나마저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와 내가 걷는 걸음이 다르기 때문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나와 그가 가는 길이 다를 뿐입니다.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고 이때 중요한 것은 ‘어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아가는 것’입니다
★ Tantum videmus quantum scimus : 아는 만큼 본다
- 사람마다 자기 삶을 흔드는 모멘텀이 있을 수 있음.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힘은 다양한 데서 오는데 그게 한 권의 책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한 장의 그림일 수도 있고, 한 곡의 음악일 수도 있음. 하지만 그런 모멘텀은 그냥 오지 않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늘 깨어 있어야 함.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깨어 있고 바깥을 향해서도 열려 있어야 함
★ Desidero ergo sum :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스피노자의 주장. 그러면서 욕망에 대해 선하거나 악하다고 단정하기에 앞서 욕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고 함. 한편 데카르트는 ‘코지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음.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인간’은 인간 정신을 존재의 근본적인 규정으로 삼고 있으며, 인간의 감각이나 정서, 욕망마저도 모두 정신에 의해 지배받는 사고의 구조를 전제로 함. 반면에 스피노자는 정신과 신체 가운데 어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배하지 않으며 이들은 모두 동일한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고 생각함. 그래서 인간의 정신과 신체가 공통으로 따르는 법칙을 ‘힘’ 또는 ‘능력’이라고 규정했는데, 그 ‘힘’의 원천이 바로 ‘욕망’ 임
- 요즘의 세상은 노력하면 다 될 거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가슴 아픈 현실에 처해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욕망하기를 멈출 수가 없음. 그게 인간으로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임. 한걸음 더 나아가 욕망하는가 아닌가가 아닌,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 때 존재의 만족감을 느끼는지 생각해야 함. 즉, 나를 충만하게 하는 욕망이 필요한 때임
★ Dilige et fac quod vis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 누구도 자기 생의 남은 시간을 아는 사람은 없음. 그러니 그냥 또박또박 살아갈밖에.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임.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봐야 함. 나는 매일매일 충분히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남은 생 동안 간절하게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두 가지를 하지 않고서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 Hoc quoque transibit! :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연기하듯이 매일매일 부정적인 마음도 늘 그다음으로 연기한다면 어떨까? 우리가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내일로 미룰 수 있는 힘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웃음을 주는 내가 존재할 때 가능하다. 지금 당장 힘들어주겠는데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 이 단순한 말 한마디를 생각하자.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Hoc quoque transibit !)’
지금의 고통과 절망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디엔가 끝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마침표가 찍히기를 원하지만 야속하게도 그게 언제쯤인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 끝이 날 거라는 겁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러니 오늘의 절망을, 지금 당장 주저앉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끝 모를 분노를 내일로 잠시 미뤄두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나를 괴롭혔던 그 순간이, 그 일들이 지나가고 있음을, 지나가버렸음을 알게 될 겁니다. 부처님 말씀에 본래 얻고 잃는 것은 없고 잠시 머물 뿐이라 하셨다. 불가에서 완전이란 없다. 진정한 완전이란 완전의 상태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완전이란 이미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 시시각각 새로운 창조다
★ Dum vita est, spes est :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절망에 지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면 신은 내게 희망이라는 사탕을 주었다. 그 사탕이 달고 맛있어 절망을 잊고 한참 달려가다 보면 어느덧 더 큰 절망이 내게 다가왔다. 거기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노라면 신은 운명처럼 더 큰 희망을 품게 했다. 하지만 다시 삶이 지리멸렬한 일상으로 가라앉을 때 지쳐버린 나는 결국 신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신이 나를 배신했어. 신이 있기는 해?”라고. 사실 신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저 신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달랐을 뿐이다. 신은 언제나 인간의 계획보다 더 오랜 시간을 두고 미래를 본다. 그러니 인간으로서 신의 시간과 뜻을 헤아린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오직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살아 있어야 다른 것을 꿈꿀 수 있고, 크고 작은 것들을 희망할 수 있다. 사람들마다 꽃피는 시기가 다르고,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다. 그렇기에 당장 노력에 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절망해서는 안된다. 그저 그때가 찾아올 때까지, 돌에 정으로 글씨를 새기듯 매일의 일을 조금씩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프롤로그, 에필로그 외에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 인생의 황금기는 지금이다
1장. 지금, 당신은 행복합니까?
2장.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
3장. 사흘 슬퍼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4장. 아픈 인연의 매듭을 풀다
5장. 인생 후반전,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는 법
6장.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에필로그- 나부터 행복해야 한다
법륜 스님의 인생살이에 대한 혜안의 말씀 中 필자가 감명 깊게 느꼈던 부분을 발췌해서 옮겨 본다.
“사람은 왜 살아야 합니까?” 젊을 때 많이 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묻는 시기가 있습니다. 사십대, 오십대, 혹은 갱년기에 접어들어 ‘사는 게 뭔가, 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회의가 들면서 다시 묻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삶이 ‘왜’라는 생각보다 먼저이기 때문이에요. 즉 존재가 사유보다 먼저 있었기 때문이지요. 살고 있으니 생각도 하는 건데. ‘왜 사는지’를 자꾸 물으니 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삶은 그냥 주어졌고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다. 결국 주어진 삶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괴로워하며 살 것인가, 즐거워하며 살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예요. 그래서 내가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할 책임도 있고 권리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서 자신을 괴롭히면 행복해야 할 내 인생을 내가 내팽개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왜 사느냐’는 질문으로 삶에 시비를 거는 대신 ‘어떻게 하면 오늘도 행복하게 살까’를 생각하는 것이 삶의 에너지를 발전적으로 쓰는 길입니다. 그것이 내 인생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지닌 주인으로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 인간관계를 아무렇게나 내버려두라는 게 아니라, 주어진 인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일어나 버렸는데 그걸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무조건 잘될 거다.’ 하는 낙관이 아니라, ‘일어나버린 일은 항상 잘된 일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보고 거기서부터 출발하면서 어느 상황에서든 배울 수 있고, 그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지혜로운 조언도 해줄 수 있게 됩니다
바다에 가면 파도를 볼 수 있습니다.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또 일어나고 사라지지요. 그런데 바다 전체를 보면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물이 출렁거릴 뿐입니다. 바다 전체를 보듯이 인생을 관조하면 삶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변하는 것을 봤을 때 괴로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마치 바다에서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생성되어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걸 깨쳐서 집착을 놓아버리면. 생겨난다고 기뻐할 일도 없고 사라진다고 괴로워할 일도 없어집니다. 그것을 직시하면 두려움도 아쉬움도 없을 텐데, 부분적으로 인식하니까 없어졌다고 생각해서 아쉬움이 생기고, 없어질까 봐 두려움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나 늙음도 죽음도 단지 변화일 뿐임을 알고 나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바다를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럼 바다가 기분 좋은 걸까요, 내가 기분이 좋은 걸까요. 내가 기분 좋은 겁니다. 내가 기분이 좋은 것은 바다가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산은 그냥 산이고 바다는 바다고 하늘은 하늘일 뿐입니다.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냥 바라는 것 없이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겁니다. 바라는 것 없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기대 없이 좋아해 보세요, 바다를 사랑하듯이 산을 좋아하듯이.
보통사람들은 대부분 재미만 갖고 인생의 즐거움을 삼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뒤에 후회나 허전함, 공허함 같은 것이 생기게 됩니다. 한편 또 너무 삶의 의미 같은 것만 찾으면 현재의 삶이 힘들어지고, 스트레스도 많아져 지치기 쉽습니다.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면 가장 좋은데, 바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곧 자기 일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가장 조화로운 상태가 됩니다
우리의 인생도 나고 자라고 나이 들어가는데, 잘 물든 단풍처럼 늙어가면 나이 듦이 결코 서글프지 않습니다. 자연이 변화하듯 편안하게 늙어가면 그 인생에는 이미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잘 물든 단풍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나침'을 경계해야 한다. 나이 들어 과한 것은 항상 부작용이 따릅니다. 과식, 과음, 과로를 하면 안 됩니다
만약 화를 냈다면, ‘아 내가 왜 화를 냈을까?’ 하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화가 났구나.’ 알아차리고 ‘다음부터는 안 내야지.’ 하는 겁니다. 그래도 또 화를 내면 ‘아, 또 화를 냈구나. 다음에는 안 내야지.’ 해야 합니다. 백 번을 화내도 ‘다음에는 안 내야지.’ 이렇게만 할 뿐이지, 어제 화낸 것을 오늘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제 낸 화를 후회하고 따지면 인생 낭비예요. 그러니까 물을 길어 오다가 넘어져서 쏟았을 때, 쏟아진 물을 아까워할 게 아니라 빨리 다시 물을 길으러 가야 합니다. 그것이 지나간 일을 두고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 자꾸 연습해야 합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은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이곳이 극락입니다. 그런 사람은 미국에 가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불평 불만투성이인 사람은 극락에 보내 놔도 불평불만이에요. 불평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불평을 합니다. 지옥, 극락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행복하면 극락이고, 내 마음이 괴로우면 지옥인 겁니다. 여러분은 이미 행복합니다. 자꾸 행복하겠다고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행복하게 살겠다’는 생각조차 내려놓을 때, 바로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진리의 길은 나를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진리의 길은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아야 합니다. 나는 좋은데 남에게는 나쁘거나 남에게는 좋은데 나에게 나쁘거나 한 일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나에게는 이익인데 남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과보가 되어 돌아오고 내가 희생을 해서 남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내가 오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행복이 유지됩니다
어찌 보면 살아가다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참으로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문장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가끔씩 눈을 감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노라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긴다. 쉽고 간결하게 대화하듯 편하게 쓰여진 글도 이렇게 우리의 마음에 충분히 와 닿을 수 있다. 중요한 이야기를 어렵게 쓴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법륜 스님은 우리가 나이가 들면서 후회하고, 또 늘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세상이 또는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이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에 휩쓸려 나의 것을 찾지 못한 데 있다고 하셨다. 나이가 들면 드는 대로 담담히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각자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다. "We ar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are looking at the stars. 우리는 모두 시궁창 속에서 허우적대지만 그럼에도 우리들 가운데 더러는 별들을 바라본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힘들고 괴로운 삶의 과정 속에서도 늘 희망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두 권의 책을 통해 또 한 가지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번뿐이라는 것이다. 남을 위한 삶이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나는 내 운명의 지배자요, 내 영혼의 선장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조건만 염두에 둔다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굳이 YOLO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알 것이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이 한마디 속에 스님은 우리에게 인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가장 좋은 책은 ‘산책(散策)'이라는 말이 있는데, 많이 걸으면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생각을 많이 하시길 권유드리며 글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