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멋진 신세계>라는 똑같은 제목을 가진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출간된 지 80년도 넘은 고전(古典)이고, 다른 하나는 비교적 신간(新刊)이다. 과연 제목처럼 둘 다 멋진 신세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펴보자.
古典 <멋진 신세계>는 1932년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쓴 소설로 과학기술의 지나친 남용으로 인간성이 파괴되는 600년 후의 시대를 그리고 있다. 솔직히 소설치곤 재미있거나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멋진 신세계>라는 표제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5막 1장)>에서 따온 것인데, 이때 ‘헉슬리’가 말한 ‘멋진’은 진짜로 ‘멋진’ 것을 의미하지 않는 역설적 표현이다. 이 소설의 영문 제목은 <Brave New World>이다.
新刊 <멋진 신세계>는 2017년 연세대학교 산업공학과 임춘성 교수가 쓴 책으로 저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꼭 알고 있어야 할 8가지 테크 트렌드 –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무인자동차,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핀테크, 가상현실 – 에 대해 인문학적인 예를 들어가며, 이해하기 쉽게 기술하고 있다. 어떤 면에선 古典인 소설보다 더 잘 읽힌다 ㅎㅎㅎ. 저자는 일단 <멋진 신세계>를 긍정적 관점에서 설명해 나가며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지만, '멋진'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미뤘다.
또 공교롭게도 현재 네이버에 연재되고 있는 웹툰 <2017 멋진 신세계>도 있다. 우리에게 다가 올 충격적인 미래에 대한 내용인데, 필자 개인적으론 꽤나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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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인간의 이상향에 대한 동경이나 이상향의 설계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문명의 극한적인 발달과 과학의 성과 앞에서 인간적 가치와 존엄성을 상실하게 되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일면 전체주의 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비슷하다.
소설의 배경은 2540년이다. 인간은 배아 과정을 통해 제조되기 때문에 부모 자식 관계도, 가족관계도, 부부관계도 없으며, 알파/베타/감마/델타/입실론 등 미리 정해진 계급이 할당되어 태어난다.
성장억제 조치와 주입식 수면교육을 통해 향후 각자의 계급에 맞는 정신적, 신체적 조건을 가지도록 인위적으로 조작을 당하는데, 이러한 준비는 개인을 행복하게 만들고 동시에 국가의 안정성을 보장한다. 누구도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겠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불행하지 않다. 굶주림, 실업, 가난, 질병, 전쟁도 없으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편안한 환각 상태를 유발하는 ‘소마’라고 불리는 묘약에 힘입어 모든 고민과 고통에서 해방되는 생활을 향유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하게 보이는 이 사회에도 문제의식을 지닌, 삐뚤어진(?) 구성원들이 있다. 높은 계급에도 불구하고 결함을 지닌 ‘버나드 마르크스’, 모든 부문에서 뛰어난 ‘헬름홀츠 왓슨’, 그리고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자연출산으로 태어난 ‘존 새비지’가 그들이다.
세 사람의 성격과 지향하는 바가 살짝 다르긴 하지만, 그들의 공통된 의식은 전체적인 안정과 통제에 기반한 안락한 삶보다는 다소 불편하더라도 개인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 국가 체제에 저항하지만 한계에 부닥친다. ‘존’은 문명사회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다가 뭇사람들의 지나친 관심과 조롱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자살한다.
‘올더스 헉슬리’는 1932년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미래의 상황을 천재적인 작가의 역량을 발휘하여 그려내고 있으며, 과학과 기계문명의 발달이 전체주의 사상과 결합될 때 얼마나 위험한 인간적 비극이 초래될 것인지에 대해 다소 과장된 풍자를 통해, 과학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위대한 작가정신을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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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성 교수는 이 책에서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8가지의 핵심적인 테크 트렌드를 '신세계'란 타이틀과 연결시켜 깔끔하고 쉽게 정리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8가지의 테크 트렌드 각각에 대해 알아두면 그나마 쓸모 있을 내용들을 요약, 정리해본다.
☞ 인공지능 : 진정한 신인류
- 인지, 학습, 판단을 대신해주는 지식(知識)의 신세계
- 인공지능은 인간의 ‘정신적 능력’에 관한 것이고, 로봇은 인간의 ‘신체적 능력’에 관한 것. 전자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것을, 후자는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을 만들자는 것. 1997년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딥블루(DeepBlue)’는 기호적 인공지능(논리)에 바탕을 두었고, 2016년 구글 ‘딥마인드(DeepMind)’의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는 신경망 인공지능(데이터)을 바탕으로 탄생한 것
☞ 빅데이터 : 나와 세상을 아는 선견지명
- 수집, 처리, 분석으로 여는 지혜(知慧)의 신세계
- 빅데이터를 설명할 때 꼭 등장하는 3V : Volume(크기), Variety(다양성), Velocity(속도). 이런 빅데이터의 흐름(Vogue)을 주시하며, 나의 관점(View)을 가지고 필요한 가치(Value)를 창출해가는 것이 중요
☞ 로봇 : 귀천 있는 일꾼
- 인간을 초월한 모방과 대체가 불러올 업(業)의 신세계
- 인간이 꺼려하는 3D(Dirty, Difficult, Dangerous), 더 나아가 Dull, Dreamless 한 일들을 대체할 로봇. 현재 인간 대체형 로봇뿐만이 아니라 혈관을 타고 몸속을 누비며 암세포를 공략할 수 있는 ‘나노로봇’을 통한 수술과 치료 연구개발도 진행 중
☞ 무인자동차 : 3천만 원짜리 내비게이션
- 기술 간 융복합이 이뤄낸 휴식(休息)의 신세계
- ‘자율주행 자동차’란 표현이 의미상으로 더 적합. 2025년 즈음 상용화되고, 2035년에는 도로를 주행하는 4대 중 적어도 1대는 무인자동차가 되리라 예측 → 교통사고는 대폭 줄어들고, 도로와 차들은 컴퓨터로 통제, 효율적 에너지 소모, 대기오염 감소, 물류비용 절감 등 기대. 무인자동차는 공유 서비스로 발전 가능
☞ 사물인터넷 : 사물과 이야기하다
- 표현, 연결, 통합이 구현하는 소통(疏通)의 신세계
-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가치를 선사하려면 ID가 있어야 함. 이를 사물 ID라 하는데, 현실에서는 동명이인이 존재하지만, 사이버 세상에서는 동명이컴, 동명이물이 없음. IP주소의 핵심은 유일무이. 겹치지 않는 주소의 개수가 중요. 2020년이 되면 지구 상의 300억 개 사물이 인터넷과 연결된다고 함
☞ 클라우드 : 소유의 종말
- 저장, 접근, 공유로 더욱 풍성해지는 소유(所有)의 신세계
- 혹자는 PC가 디지털 시대의 1차 혁명이었다면, 2차 혁명은 인터넷이었고, 클라우드가 3차 혁명이라고 함. 애플의 아이팟이 처음 출시될 때의 카피 “10,000 songs in your pocket!”. 스티브 잡스는 음악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심을 실현한 것이라고 했으나, 결과적으로 소유를 위함이었던 이 기기가 반대로 소유의 종말을 불러오는 계기가 됨
☞ 핀테크 : 모든 것이 돈이고, 아무것도 돈이 아닌
- 신뢰, 편의,자산을 담보로 한 돈(錢)의 신세계
- 핀테크의 슬로건은 간단함과 편리함. 간편 결재의 핵심은 고객의 수고를 덜어줌과 동시에 책임도 줄여주는 것. 핀테크는 지지 않으려는 자(기존 금융권 기업)와 이기려는 자(네이버/카카오/삼성전자 등)의 싸움. 핀테크는 단순 전자금융이 아님. 고객의 편의가 실현되는 날 더 이상 기존의 금융업은 없을 수도...
☞ 가상현실 : 생각이 경험으로, 상상이 현실로
- 자극, 경험, 현실이 만드는 꿈(夢)의 신세계
- 1968년 HMD기 최초 개발. 2012년 당시 19세의 ‘파머 리키’가 창업한 '오큘러스 VR'을 페이스북이 2014년에 2조 5천억 원에 인수, 소셜 VR을 꿈꾸고 있으며, 앞으로는 친구들과 페이스북에서 실제처럼 만날 수도. 현재 구글, 애플, 소니, 삼성전자 등 여러 기업에서 다양한 유형의 HMD가 개발/출시되고 있는 중이나, 아직까지 기술적으로 해결할 부분들이 많이 있음
임춘성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나에게 멋진 신세계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관찰 - 통찰 - 성찰이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새로운 기술들의 정의와 최소한의 핵심 세부 기술 몇 가지, 그리고 용도 정도만 살펴보고 관찰하고(관찰), 각각의 기술이 우리의 생활과 비즈니스에 어떤 변화를 줄지 인문적 상상력과 사회적 유추력을 동원해서 꾸준히 생각하고(통찰), 자기만의 생각과 해석을 바탕으로 들여다보고 알아야 한다(성찰). 이것이 관찰, 통찰, 성찰의 '찰찰찰'이다.
¶ Epilogue
지금은 인터넷/모바일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유비쿼터스가 사람과 사물을 연결하고, 사물인터넷이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는 ‘초연결의 시대’이며, 소비시장의 통념이 붕괴하고, 소비자의 심리와 행동이 모호해지고, 더 이상 덧셈과 뺄셈의 계산법과 정규분포가 통하지 않는 ‘뉴 노멀의 시대’이며,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안정감과 안도감이 결여된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이러한 초연결, 뉴 노멀, 불확실성이 우리 사회를 또 다른 단계로의, 또 다른 시대로의 변화를 이끌고 어쩌면 내몰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우리 삶을 편하고 윤택하게 해 주고, 불가능했던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끔 해주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한 손에는 스마트 폰을 들고 메신저 톡을 하는 등 점점 아날로그적 인간성이 메말라가고, 일과 생활의 상당 부분을 기계에 의존하고 있고,이러다가 영화나 소설의 한 장면처럼 상상하기조차 싫은 미래를 초래하는 건 아닌가 하는 다소뜬금없는 걱정도 없지는 않다. 지금의 '구글'과 소설 <1984>의 '빅브라더'가 전혀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특히, 인공지능의 발전은 필자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관심, 기대와 동시에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인간을 돕는 컨시어지 서비스로 머물 것인지, 영화 ‘그녀(Her)’에 나오는 ‘사만다’처럼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과학과 기술 발전의 특이점(singularity)부터는 인공지능이 발전을 주도해 나가기 때문에 향후 수십 년 후부터는 무슨 일이 생겨날지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로 필자는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1로 이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바둑은 체스와는 달리 그 수가 거의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에 결코 기계가 인간을 능가할 수 없다고 했던 영역이 아니었던가. 최근에 뉴스를 접하니 '알파고 제로'는 이제 완전무결한 무적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일론 머스크’는 “우리는 인공지능으로 악마를 소환하고 있다”라고 경고하기도 했지만, 인공지능이 미래의 재앙이 될지,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안겨다 줄 신의 한 수가 될지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세계경제포럼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은 그의 저서 <4차 산업혁명>에서 무인 운송수단/첨단 로봇공학 등의 물리학 기술, 사물인터넷/블록체인 등의 디지털 기술, 합성생물학/바이오프린팅 등의 생물학 기술을 '메가 트렌드'라 지칭하고, 이를 통한 4차 산업혁명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하다. 그 실체성에 대한 얘기부터 심지어 용어부터가 너무 앞서간다는 지적도 있다. 필자가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명쾌한 해석과 판단을 내리진 못하지만, 다만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이러한 변화와 트렌드가 아직 3차 산업혁명에 머물고 있든, 새로운 4차 산업혁명에 접어들었든, 주지의 사실은 우리를 둘러싼 여러 환경과 일과 삶 자체가 테크의 발전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잡기 힘든 어려움과 막연한 두려움 또는 낙관주의로 인해 변화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 이어선 안될 것이다. 생명윤리, 비인간화 등 인간의 미래를 위협할 문제를 간과하자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사람은 늘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거대한 변화의 파도에 휩쓸려 가버릴지 파도에 올라타고 변화를 멋지게 누릴 것인지에 대한 선택과 판단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멋진 신세계>가 단어 의미 그대로의 ‘멋진’으로 내게 다가올지, 역설적인 ‘멋진’으로 다가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