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tay foolish

하루키 <여행법> vs.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양삘의 북캐스트 Book & Book] 두번째 이야기

by 양성필

¶ Prologue

"Man reist nicht um anzukommen, sondern um zu reisen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다)"라는 괴테의 말처럼 여행지에 도착하는 자체를 목적으로 한 여행자는 드물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대부분의 여행은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아무 목적 없이, 목적지조차도 없이 떠나는 여행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이 경우엔 방랑이란 단어가 더 어울린다.


'여행'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은? 오매불망 가보고 싶은 여행지, 다시 찾고 싶은 추억의 여행지, 최악의 여행지, 같이 여행한 사람들, 여행지에서의 에피소드, 비행기 예약, 호텔 예약, 여행 패션, 면세점(으잉?) 등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할 때면 누구나 한 번쯤은(어쩌면 매번) 여행의 고수가 여행하는 법을 벤치마킹해보고 싶은 생각을 한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우리는 가고자 하는 여행지에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後記를 가급적 많이 찾아본다. 대개의 경우 신변잡기에 가까운 글임에도 불구하고, 요모조모 메모까지 해가면서.


사실 여행지만 같을 뿐이지 같이 가는 사람, 머무는 기간, 주어진 예산, 무엇보다도 여행의 목적이 나의 경우와 100% 일치하는 後記를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다행히도 그나마 유사한 경우의 정보를 종합해서 나름 퍼펙트한 계획을 짰다고 치자. 하지만 잠깐만 되돌아보라. 실제 여행지에서 사전에 짜 놓은 계획대로 딱딱 움직여진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여행을 주제로 다룬 책은 부지기수로 많지만, 여기 ‘무라카미 하루키’와 ‘알랭 드 보통’이라는 두 사람의 유명 작가가 여행에 관해 쓴 에세이가 있다. 그들이 여행하는 법에 특별한 것이 있는지 들여다보자.



¶ 무라카미 하루키 <여행법>


이 책의 원제는 <邊境·近境>이다. 미국, 멕시코, 몽고 등 ‘하루키’가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여행한 7곳에 대한 여행기를 사진과 함께 수록했는데, 작가 특유의 감각과 감성잔뜩 묻어나는 에세이 형식의 <여행기>와 동반 여행자인 ‘에이조’가 찍은 <사진편>이 별도의 책으로 발간되어 있다. 사진과 글이 때론 따로따로 각자의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고, 때론 같이 조화를 이루며 독자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어찌 보면 하루키의 여행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여행하면서 느끼는 순간순간의 감상들을 과장하지 않고, 당황스러웠던 일, 불편하고 피곤했던 일, 재미없고 지루했던 일 등을 여과 없이 여행기에 담았다. 하루키가 여행하는 법과 여행에 대해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정리해본다.


(1) 여행지에서는 쓰기를 잊어버리려고 한다. 카메라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내 눈으로 여러 가지를 정확히 보고 머릿속에 정경이나 분위기, 소리 같은 것을 생생하게 새겨 넣는 일에 집중한다.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


(2) 여행에 관해서라면, 설사 아무리 먼 벽지에 가더라도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먼저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도한 계획이나 지나친 의욕 같은 것은 배제하고. “다소 비일상적인 일상”으로 여행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현대의 여행은 시작되어야 한다.


(3)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그렇게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짤막하게 적어 놓을 뿐이다. 요컨대 내가 가장 알아보기 쉬운 형태의 헤드라인이면 된다. 바다에 부표를 띄우듯이 그렇게 적어 놓는다. 서류 서랍의 색인과 같다.


(4) 여행을 마친 후 한 두 달쯤 지나고 여행기를 쓴다. 그동안 가라앉아야 할 것은 가라앉고, 떠올라야 할 것은 떠오른다. 그리고 떠오른 기억만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가는 것이다. 잊어버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5) 겉으로 드러난 갖가지 이유를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버리고 나면 결국엔 그것이야말로 여행이라는 것이 갖는 가장 올바른 동기요, 존재 이유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호기심, 현실적 감촉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욕구!


(6) 여행이란 근본적으로 피곤한 것이다. 이것은 내가 자주 여행을 해보고 나서 체득한 절대적인 진리다. 여행은 피곤한 것이며, 피곤하지 않은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7) "내가 멕시코에서 겪은 피곤은 멕시코 밖에서 얻어낼 수 없는 종류의 피곤이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에 오지 않고서는, 멕시코의 공기를 들여 마시고 멕시코 땅을 발로 밟지 않고서는 얻어낼 수가 없는 그런 피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피곤을 거듭 받아들일 때마다 나는 조금씩 멕시코라는 나라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8) ‘에이조’ 군은 결코 재능 있는 사진작가는 아니다. 칼날에 비유하자면 날 선 예리한 나이프나 면도날 같은 느낌보다는 시골 뒷마당에서 장작을 쪼개는 데 쓰이는 손도끼 같은 투박한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그가 손도끼로 쪼개어 갖고 온 약간 고르지 않은 크기의 장작을 스토브에 넣어 보면, 불꽃이 아주 보기 좋게 피어오르고, 몸 깊은 곳에서부터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이 책은 ‘왜 나는 여행을 하는가’라는 부제를 달아도 충분할 만큼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여행의 목적지뿐만 아니라 여행을 어떻게 가야 하고, 왜 가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의 다섯 가지 챕터로 여행의 기술을 구분하고, 각 챕터마다 암스테르담, 마드리드, 프로방스 등의 <여행할 장소>와 샤를 보들레르, 윌리엄 워즈워스, 빈센트 반 고흐 등의 <안내자>를 등장시켜 작가만의 독특하고 명쾌하고 깊은 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알랭 드 보통이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던지는 여행에 관한 메시지를 정리해본다.


(1)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의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2) 우리가 어떤 장소에 가장 온전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부수적인 도전에 직면하지 않을 때일지도 모른다.


(3) 그냥 집에 눌러앉아 얇은 종이로 만든 브리티시 항공 비행시간표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상상력의 자극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여행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느낀 적이 몇 번 있었다.


(4)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와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


(5) 여행의 위험은 우리가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즉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대에서 사물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정보는 꿸 사슬이 없는 목걸이 구슬처럼 쓸모없고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된다.

(6)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기게 될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


(7) 사진을 찍으면 어떤 장소의 아름다움을 보고 촉발된 근질근질한 소유욕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다. 귀중한 장면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불안은 셔터를 누를 때마다 줄어든다. 아니면 아예 우리 자신을 물리적으로 아름다운 장소에 박아놓을 수도 있다. 우리 자신이 그 장소 안에 좀 더 확실하게 존재한다면, 그 장소도 우리 안에 좀 더 확실하게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러나, 카메라는 보는 것과 살피는 것 사이의 구별, 보는 것과 소유하는 것 사이의 구별을 흐려버린다. 카메라는 진정한 지식을 선택할 기회를 줄 수도 있지만, 어느새 그 지식을 얻으려는 노력을 잉여의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카메라는 사진을 찍음으로써 우리 할 일을 다했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8) 여행을 하면서 사진보다는 스케치를 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굳히려면 글을 써라. 즉 ‘말 그림’을 그려라.


(9) 사막을 건너고, 빙산 위를 떠다니고, 밀림을 가로질렀으면서도, 그들의 영혼 속에서 그들이 본 것의 증거를 찾으려 할 때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먼 땅으로 떠나기 전에 이미 본 것에 대해 다시 주목해 보라.



¶ Epilogue

매주 방영되는 TV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세계 테마 기행'은 필자의 애청 프로그램이다.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어서 TV 속에서 보는 세계 곳곳의 풍경과 문화를 간접 체험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런데 정말 위안이 되는 것인지, 오히려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충동질을 더하는 것인지는 확실치가 않다. 때로는 필자로 하여금 약간의 무리를 해서라도 여행 계획을 짜게 만드는 경우를 보아서는 후자의 효과(?)가 분명 있다. 하루키의 말마따나 그것은 어쩌면 ‘병(病)’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말이지 가슴 저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울려오는 먼 북소리이다. 그것이 우리를 길 떠나게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책의 한 페이지를 읽었을 뿐이다"라고 했다. 여행은 우리의 견문을 넓혀주고, 때론 삶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주기도 한다. 여행을 통해 매번 새롭게 태어난다는 하루키의 경우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여행을 통해 이제껏 겪어보지 않았던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고, 이국적인 문화유산과 자연경관을 오감으로 느끼고, 또한 그 모든 것을 사색을 통해 각자의 것으로 체화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보다 윤택하고 풍성하게 만들어간다.

진정한 여행은 단순히 어느 여행지를 찾아가서 한번 둘러보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 여행지에서의 시간과 공간과 나 자신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굳이 사진과 메모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반추(反芻) 해 볼 수 있는 내 마음속 자산으로 만들려는, 여행을 통해 내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의지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내면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는 껍데기뿐인 여행이다.




¶ P.S : 필자의 인생 여행지 Best 5


1. 사진으로만 보던 알프스에 오르다 !

@스위스 필라투스. 제대로 된 가이드 북이나 여행정보도 턱없이 부족한 시절, 여행경비 마련 등 우여곡절 끝에 친구들과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 영화나 TV 또는 사진으로만 봐왔던 스위스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자연경관에 흠뿍 빠져^^


2.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번지 점프를 하다 !

@호주 브리즈번. 비가 살짝 내려 45미터 높이의 점프대를 올라가는 계단이 미끄러웠는 데다가 긴장감에 다리가 후들후들. "See the bird". 점프를 돕던 안전요원이 아래를 보지 말라며 나에게 외친 말이 귓가에 생생. 떨어지면서 가속이 붙고, 몇 번을 튕겨져 공중에서 허우적거릴 때 느꼈던 극심한 어지러움. 내 인생에 두 번은 없다^^


3. 동유럽의 보석, 프라하를 거닐다 !

@체코 프라하 까를다리. 블타바 강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와 프라하 성을 연결해 주는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의 하나. 천문시계, 틴틴성당 등의 건축물과 주변 자연경관 하나하나가 놓칠 수 없는 장관이라 이틀을 꼬박 걸어서 다녔던 추억이... 필스너 맥주 한 잔에 굴라쉬를 곁들이면 피로가 눈 녹듯^^


4. 예술의 도시에서 파리지엥 따라하기 !

@프랑스 파리. '파리'라는 도시엔 꼭 챙겨봐야 할 것들이 넘쳐 난다. 필자 개인적으론 '오르세 미술관', '몽마르뜨 언덕', '센 강의 여러 다리에서 바라보는, 햇살과 파리라는 도시가 서로 어울려 자아내는 갖가지 풍경들'이 좋다^^

5. TV CF 촬영지, 몽생미셸을 돌아보다 !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안. 수년 전 TV CF에서 처음 봤을 때 "와우! 저기가 어디지? 나중에 꼭 한번 가봐야지"라고 했던 곳(대한항공의 광고 소재). 수도원으로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요새로서, 중세 봉건사회의 전형을 보여주는 역사적 건축물로서의 모습을 각각 간직한, 오밀조밀하면서도 너무나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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