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동행, 양성필의 다문화사회 이야기_010
5%. "전체 인구 중 상시 거주 외국인 비율이 5%를 넘으면 다문화사회"라는 표현은 뉴스 기사 제목으로도, 칼럼의 도입부로도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전체 인구의 5% 이상이면 다문화사회"는 전 세계적으로 공인된(국제기구가 공식 채택한) 단일 기준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문화사회(multicultural society)’라는 용어 자체가 각 국가별로 사회학이나 정책 담론 등에서 매우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라는 외국인(국적) 비율을, 어떤 나라는 외국태생(출생지) 비율을, 또 어떤 연구에서는 이주배경(국제결혼, 귀화 등) 비율을 쓰는 식으로 지표도 제각각입니다. 5%는 법으로 정해진 기준도, 누가 도장을 찍어주는 인증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가 변하는 속도를 가늠하기 위한 하나의 관찰 도구에 가깝습니다.
즉 5%라는 숫자의 의미를 단순한 양적 증가를 넘어, 사회의 질적 변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지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5%라는 숫자의 의미는, 더 이상 외국인 이주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와 정체성에 깊이 스며들어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시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경고이자 동시에 새로운 기회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2024년 말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체류 외국인 265만 명 시대는 거스를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와 있습니다. 한때는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 아래 다소 폐쇄적인 인식을 유지했던 우리 사회가, 이제는 이 ‘5%의 문턱’ 앞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한 것입니다. 5%는 "이 정도 변화라면, 우리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꺼내기 위한 문턱입니다.
현실은 항상 한발 늦게 작성되는 통계 숫자보다 먼저 움직입니다. 어떤 학교는 이미 다문화 학생 비율이 90%가 넘게 높아졌고, 어떤 산업현장은 이주노동자 없이는 단 하루도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어떤 동네는 상권이 바뀌고, 언어가 바뀌고, 생활 방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국 평균만 보고 “아직은 아니야”라고 말하곤 합니다. 평균은 우리를 안심시켜 줍니다. 하지만 평균은 가장 뜨거운 현장을 가리기도 합니다. “우리 동네는 아직 괜찮아.” 이 말은 어쩌면 내가 살지 않는 동네에서, 누군가가 오래전부터 겪고 있는 현실을 지워버리는 말일 수 있습니다.
특히 학교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교육부·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전국 초·중·고(각종학교 포함)에 재학 중인 이주배경학생은 20만 2208명으로 전년보다 8394명(4.3%) 늘었습니다. 2015년 8만 2536명 과 비교하면 2.5배 증가한 수치이며, 전체 학생 중 차지하는 비율은 전년보다 0.2% 포인트 늘어난 4.0%로 조사됐습니다. 학교급별로는 초등학생 5.0%, 중학생 3.7%, 고등학생 2.6%였으며,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가 평균 20명이란 점을 고려하면 한 반에 최소 한 명은 이주배경학생인 셈입니다. 게다가 현재 한국에서 태어나는 신생아 100명 중 6명은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나는 데다가 중도입국 청소년도 늘어나는 추세라 향후 이주배경학생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숫자는 ‘교육의 주변부’가 아니라 ‘공교육의 표준’을 바꾸는 신호입니다. 교실 안에서 언어, 관계, 규범, 안전감이 동시에 흔들리기 때문이죠. 그래서 5%는 단지 ‘인구비율’이 아니라, 학교·일터·동네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 임계점처럼 느껴집니다.
다문화사회와 관련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이웃, 우리의 동료, 우리의 다음 세대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5%의 문턱에 다가서면서, 또는 이미 넘어서면서 적지 않은 ‘오해’ 속에 갇히기도 합니다. 다문화 사회는 소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 사회 전체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기존의 사고방식과 제도, 그리고 문화를 재정의해야 하는 거대한 과정인 것입니다.
가장 흔한 오해는 다문화 사회가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이라는 편견입니다. 이주민의 증가가 치안 불안을 야기하거나, 일자리 경쟁을 심화시키고, 우리 고유의 문화를 훼손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과 걱정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사회적 변화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갈등이 동반될 수 있지만, 이러한 시선은 다문화 사회의 본질적인 가치와 잠재력을 간과하게 만듭니다. 5%의 의미는 위협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활력과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이주민들의 유입은 단순히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는 것을 넘어, 경제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인구 감소 시대에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갈 핵심적인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 ‘문턱’을 위기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기회의 눈으로 마주할 것인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문화 사회를 바라보는 이러한 오해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이는 주로 ‘문화 절대주의’와 ‘자문화 중심주의’라는 오래된 시선에서 기인합니다. 자신의 문화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우수하다는 믿음, 그리고 다른 문화를 자신들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경향이 다문화 사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낳습니다. 우리는 과거 베트남 신부가 과일 깎는 방식 때문에 시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었던 사례처럼, 아주 일상적인 문화적 차이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을 빚는 상황들을 목격해 왔습니다. 5%라는 숫자는 이러한 문화적 편협함에서 벗어나, 상호 존중과 이해의 폭을 넓힐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또 다른 큰 오해는 '다문화는 소수의 문제'라는 인식입니다. 다문화 가정을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나 '피해야 할 불편한 존재'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다문화 사회는 소수가 다수에 '적응'하는 단방향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수가 소수를 포용하고, 서로 다른 문화가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다방향적인 과정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20만 명을 넘어서는 다문화 학생의 현실은 이미 다문화가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교육 시스템 전반이 마주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을 보여줍니다. 이 학생들은 우리의 다음 세대이며, 이들을 어떻게 통합하고 성장시키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5%의 문턱은 단순한 숫자의 장벽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기준선입니다. 이주민이 증가하는 것을 단순히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하는 정책이나 시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불법체류자'를 범죄자로만 낙인찍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마주하는 구조적인 문제와 인권의 사각지대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다문화'라는 용어 하나가 어떻게 정책을 만들고, 인식을 형성하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5%의 의미는 '이미 시작된 사회'의 현실을 인정하고, 오해를 넘어 진정한 공존과 번영을 향해 나아갈 책임과 기회를 우리 모두에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이 그 문턱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와 인식을 가져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데 단초가 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