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동행, 양성필의 다문화사회 이야기_009
2025년 5월 31일, 경상북도 구미에서 열린 '2025 구미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 남자 400미터 계주 결승에서 우리나라가 종전 한국 최고 기록을 0.02초 앞당긴, 38초 49의 신기록을 세우며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선수권 남자 400미터 계주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번 남자 400미터 계주를 이어 달린 선수는 서민준, 나마디 조엘진, 이재성, 이준혁입니다. 네 사람 중에 이름이 김 아무개, 이 아무개가 아닌, 좀 특이한 사람이 있죠? 하지만 그도 엄연히 위풍당당한 대한민국 남자 육상 국가대표 선수 중 한 사람입니다.
나마디 조엘진(이하 나마디) 선수는 2006년생으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족 자녀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재학 당시 코치의 권유로 육상을 시작했지만 어린 시절에는 TV 드라마 등 아역 배우로도 활동했으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건 김포제일중학교 2학년 때부터라고 합니다. 나마디는 학교와 김포시육상연맹으로부터 운동 환경, 식사, 훈련 등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기록이 수직상승했습니다. 왜소했던 체격은 매년 10cm 이상 크면서 180cm 이상으로 훌쩍 자랐고, 멀리뛰기 선수였던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유연성과 순발력은 타고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나마디는 국내 고교 최강 유망주로 관심을 받았던 또 한 명의 다문화가정 출신 선수인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안산시청)와 박원진(속소시청)의 고교 기록을 뛰어넘었습니다. 나마디가 2024년 9월 고교 3학년 때 수립한 100미터 기록 10초 30은 현재 한국 고등학생 최고기록입니다. 참고로 10초 07로 남자 100미터 한국 기록 보유자인 김국영의 고교 시절 최고 기록은 10초 47이었다고 하네요.
앞선 글 <원곡초등학교는 97%가 다문화 학생이라고 합니다!>에서 언급했듯이 안산에 위치한 원곡초등학교는 전교생의 97%가 다문화 학생입니다. 비웨사 다니넬 가사마(이하 다니엘) 선수가 바로 이 원곡초등학교 졸업생입니다.
다니엘은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부모님을 둔 육상 선수로서의 장래가 촉망되는 대한민국의 청년입니다. 다니엘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출생지주의(속지주의)가 아닌 혈통주의(속인주의) 국적법을 따르는 국가이기 때문에 한국 출생이라는 이유로 한국 국적을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전에는 콩고민주공화국 국적이었다가 2018년 다니엘이 중학교 3학년 때 비로소 어머니가 귀화에 성공하면서 미성년자 자녀로서 대한민국 국적을 자동 수반 취득했습니다.
다니엘은 한국 국적을 얻기 전까지는 육상대회에 출전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으며 전국 단위 대회가 아닌 안산시 대회에만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안산시에 위치한 관산중학교와 원곡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2022년부터 안산시청 소속으로 경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국적 문제로 인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기간이 불과 수년밖에 되지 않은 선수치곤 성장세가 놀랍다고 합니다.
2023년 원곡초등학교의 졸업식에서 안복현 교장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온 다니엘 선수야말로 우리 안산 원곡초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귀감”이라면서 “선배를 보며 후배 학생들이 더 많은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니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후배들에게 “사람마다 모양과 크기와 넓이, 깊이는 달라도 어떤 아픔과 슬픔이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살아갈 세상도 마찬가지다. 꿈꾸는 그 세상은 한계가 없다. 어떤 환경이어도 우리의 꿈을 가둘 수 없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니엘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 그 누구도 그가 한국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재능 있는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들이 어릴 때부터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다니엘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관리와 훈련을 받아왔다면 지금 어떤 선수가 돼 있을까요? 아마도 100m를 9초대에 뛰는 세계적인 육상선수로 활약하고 있지 않을까요? 필자는 이 부분에서 진한 아쉬움을 느낍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국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라면,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때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특별 귀화법까지 제정해 서둘러 영입한 외국의 인재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대표적인 사례로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팀은 주전 선수 6명이 모두 파란색 눈을 가진 특별귀화 선수였다고 합니다.
한 세기에 한번 치를까 말까 하는 동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해외 우수 인재를 영입한 부분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단기 성과 중심의 임시적이고 단기적인 처방은 지양해야 합니다. 다문화 인구 증가라는 대한민국의 인구사회학적 변화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재능 있는 다문화 청소년을 조기에 발굴해 육성하는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최하위 수준입니다. 스포츠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여러 부문의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의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에 다문화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대한민국의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구사회학적 변화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함께 대처해 나아가야 합니다.
나마디와 다니엘 두 선수가 함께 대한민국 육상 국가대표선수로서 태극마크를 달고 100미터를 9초대에 돌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이 땅의 모든 다문화 청소년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