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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Nov 17. 2018

아버지 등산화 빌려 신고 지리산 종주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18

아버지께서는 산을 좋아하셨다.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까 취미로 사진 찍기를 좋아하시다 보니 산을 많이 찾게 되었고 그러다가 산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드셨다고 한다. 일일이 기록을 다 해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백두산, 한라산, 설악산, 오대산, 지리산, 소백산 등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명산을 다 누비신 걸로 안다. 나도 고등학교 3학년 대입 수험생이 되기 전까지는 부모님과 함께 등산을 꽤나 다녔다. 주변 사람들이 내 체력이 좋다고들 하는데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했던 등산이 큰 도움이 되었다.


요즘은 제주도의 올레길처럼 지리산에도 둘레길이 생겨서 꼭 등산이 아니더라도 지리산을 즐기며 트래킹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오가는 교통도 불편했고 등산 코스 외에는 지리산을 쉽게 찾기가 어려웠다. 나 또한 불일계곡, 뱀사골, 노고단 등 지리산의 일부 지역을 대구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온 적은 몇 번 있었으나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오른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군 입대를 한 달 정도 앞두고 마찬가지로 군 입대를 위해 휴학 중인 고교 후배들과 훈련소에서 치를 백리 행군을 대비(?)한답시고 지리산 종주를 계획했다.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더니 기특한 생각이라며 반기셨다. 게다가 지리산은 여느 산과는 달리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에 걸쳐 있을 만큼 산세가 크고 험하니 운동화보다는 등산화를 신고 가라며 아버지 것을 빌려 주셨다. 그때까지 등산화라고는 신어본 적이 없었는데 아버지의 등산화를 신어보니 뭔가 묵직하면서도 발목까지 안정적으로 잡아주는 느낌이 괜찮았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이른 아침에 대구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진주로 떠났고, 진주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 도착해 드디어 2박 3일의 지리산 종주를 목표로 산행을 시작했다. 


아버지께 빌려 신은 등산화는 험한 등산로에서 제 힘을 발휘했다. 흙길이든 돌길이든 상관없이 내 걸음걸이에 적절한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등산화를 신고 가라는 아버지의 충고에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다만 처음 신어보는 등산화의 무게에 바로 적응하지 못해서 산행의 스피드를 내는 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후배 2명과 함께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중산리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해 해가 지기 전에 천왕봉에 올랐다. 일몰 직전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노을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스카이라인이 모두 빨갛고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카메라가 없었던 탓에 상당한 시간 동안 눈으로 보면서 동시에 가슴속에 그 장면을 담아서인지 지금까지도 생생하고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이 깔리면서 주위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우리는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서둘러 하산했고 중간에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장터목산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예상 경로를 급격히 바꾼 태풍이 다음 날 새벽녘에 남해안 가까이로 다가왔고, 향후 진행 경로가 한반도를 가로질러 통과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새벽녘부터 몰아친 폭풍우로 잠을 설쳤고 다음날 아침 도저히 산행을 할 상황이 되지 못해 중도에 포기하고 하산했다.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리고 얼마 후 입대했다.



군에 입대한 지 18개월 즈음 지나서 병장 계급장을 달고 열흘 동안의 휴가를 나왔다. 그때가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7월 초였는데 입대할 때 마음속으로 다짐한 것을 실행에 옮겼다. 지난번 아쉬움을 남겼던 지리산 종주에 재도전하기로. 


이번엔 친구와 둘이서 함께 했는데 산행 시작 전날 중산리에 도착해서 민박집에서 잠을 자고 당일 이른 아침에 산행에 나서서 노고단 화엄사까지 1박 2일에 넘는 코스였다. 이번에도 아버지께 빌린 등산화가 함께 했다. 군에서 무거운 전투화에 익숙해져서인지 등산화의 무게감으로 인한 피로는 전혀 없었다. 


술자리 등 불규칙적으로 살았던 대학생활에서 벗어나 1년 반 동안 군에서 체력을 잘 다진 탓인지 다소 도전적인 코스임에도 불구하고 무리 없이 이틀 안에 지리산 종주를 완료했다. 물론 일등공신은 1박 2일의 다소 힘든 산행 동안 내 발을 지켜주며 함께해준 아버지의 등산화다.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께서 서울에 오신 일이 있었는데 북한산에 모시고 가서 등산을 했다. 서울 오실 때마다 함께 북한산에 오르자는 제안과 함께 두 분께 등산화를 사드렸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그 이후로 몇 번 같이 북한산을 올랐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도 등산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버리고 또 채우고 할 수 있어서 좋다. 직장에서도 동호회 활동으로 산악회에 가입해서 일 년에 몇 번 직장 동료들과 등산이나 트래킹을 즐긴다. 지금 나는 아버지가 빌려주셨던 옛날의 등산화보다 훨씬 비싸고 좋은 것을 신고 다니지만, 세월이 흘러도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아버지와의 추억이 얽힌 그 등산화를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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