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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Nov 18. 2018

양념치킨과 닭튀김에 얽힌 논산훈련소 퇴소식 면회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19

부모님은 내가 군 복무를 하는 30개월 동안에 딱 두 번 면회를 오셨다. 한 번은 논산훈련소 퇴소식 때였고, 또 한 번은 논산훈련소에 이어 수송 교육부대에서 8주간의 후반기 교육을 받고 퇴소할 때였다. 


논산훈련소에서 퇴소식을 2주가량 앞두고 어머니의 편지에 답장을 하면서 양념치킨이 너무 먹고 싶으니 다른 것은 필요 없고 꼭 그것만 넉넉하게 준비해 오시라고 신신당부하는 내용을 써 보냈다. "훈련생은 늘 춥고 배고프다"는 말은 나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되었고, 훈련소 시절에는 정말이지 밥 먹고 돌아서면 다시 배가 고팠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퇴소식이 진행되었고, 나는 행진을 마친 후 관중석에 계신 부모님께서 내려오셔서 계급장을 부착해 주실 수 있도록 왼손바닥에 500만 광촉의 빛을 발하는 이등병 계급장을 올려놓고 최대한 늠름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기다렸다. 


한눈에 부모님이 눈에 들어왔는데 아뿔싸 부모님이 나를 지나쳐서 뒤로 걸어가시는 게 아닌가. 그래서 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 저 여기 있는데 어디 가세요?"라고. 나는 원래도 까무잡잡한 편이었는데 두 달여 기간 동안 훨씬 더 햇볕에 그을어 있었고, 규칙적인 생활, 많은 양의 훈련, 그리고 불가피한 금주(?)로 인해 체중이 입대 전 보다 무려 10킬로 가까이 불어나 있어서 부모님이 미처 나를 못 알아보신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두 달밖에 안 지났는데 하나뿐인 아들 얼굴을 못 알아보시다니.    


부모님께서는 부탁드린 대로 내가 고향집 근처에서 즐겨 배달시켜 먹던 집에서 양념치킨 세 박스를 포장해서 오셨다. 아버지께서 기름진 음식을 갑자기 많이 먹으면 탈이 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먼저 소화제부터 챙겨 주셨다. 


나는 당시 인기상품이었던 '멕소롱'인가 뭔가 하는 소화제를 먼저 마신 후 순식간에 양념치킨 두 박스 반을 먹어 치우고 부모님께 원 없이 잘 먹었다는 고마움을 전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은 그날 저녁이 논산훈련소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인데 하필 마지막 날 평소에 그토록 먹고 싶었던 닭튀김이 메뉴로 나오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사실 훈련소에서 닭튀김이 식사 메뉴로 나온 날, 나는 이미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겪은 경험이 있었다. 그날 주간 훈련을 모두 마치고 식당으로 가기 전에 야간 경계업무 신고를 하러 갔는데 일직사관님이 다른 일 때문에 늦게 오시는 바람에 평소보다 1시간 가까이나 늦게 식당에 도착했다. 마침 내가 오매불망 손꼽아 기다리던 닭튀김이 나오는 날이었는데 나를 비롯한 동료들 십여 명이 늦게 도착하자 배식이 모두 끝날 줄 알았던 식사 담당 병사들이 밥과 반찬을 다 치워버렸다. 


춥고 배고픔에 더해 닭튀김을 못 먹게 된 사실에 분노 게이지가 급상승한 나는 식사 담당인 동료 병사에게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그 장면을 우연히 보셨던 소대장님이 우리 둘을 불렀고, 자초지종을 들으시더니 두 사람 모두에게 벌을 주셨다. 지금부터 엎드려서 팔 굽혀 펴기를 열 번씩 하는데 한 번씩 할 때마다 나에게는 "동료를 사랑하자"를 외치게 하시고, 그 친구에게는 "밥을 잘 주자"를 외치게 하셨다.       


아무튼 나는 낮에 부모님께서 가져오신 상당한 양의 치킨을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훈련소에서 나오는 닭튀김에 대해 쌓이고 쌓였던 갈증(?)을 풀어내고자 또 식당을 찾아갔다. 예상대로 낮에 면회 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은 탓인지 저녁식사를 거르는 동료 병사들이 많았고 나는 닭튀김 중에서도 다리 부위만을 골라서 먹는, 이제 막 훈련병 생활을 마친 이등병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황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나의 치킨사랑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수송 교육부대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고 난 후에 하는 퇴소식 면회 때는 오징어회가 먹고 싶어서 염치 불고하고 또 부모님께 편지를 올렸다. 그래서 면회 날에 그토록 원했던 오징어회에 초장을 듬뿍 찍어서 양껏 먹을 수 있었다. 


퇴소식 후엔 내가 고향 집에서 가까운 부대로 배치를 받는 바람에 그렇게 부모님께서 오신 두 번의 면회가 내 군 복무 시절의 전부가 되었다. 정기적인 외박과 휴가가 있어서 굳이 가까운 곳에서 복무하는 나를 면회 오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군에 입대하는 날부터 근래 살아왔던 일상에 대한 기억과 주변 사람들과 맺었던 관계는 복무기간이 끝날 때까지 고스란히 국방부에 저당 잡힌다. 국방부는 정확히 복무기간이 끝나는 날에야 내가 맡겨 두었던 것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준다. 한 마디로 피 끓는 청춘의 세월에 단절이 생기는 것이다. 누구나 짊어져야 할 국방의 의무만 아니라면 굳이 군에 가고 싶지 않은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단절'일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은 병영생활이 엄청나게 많이 개선되어 잘 알 수가 없지만, 사실 내가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에만 해도 입대 전 사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잠시 가슴 한편에 묻어두고 '단절'에 잘 적응하는 친구들이 힘들고 고달픈 군 생활을 잘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사람인지라 이상하게 잠이 잘 오지 않는 비 오는 밤에, TV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푸른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갑자기 입대 전에 있었던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추억이 떠올라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곤 한다. 그래서 유독 군 복무 기간 동안 부모님, 친구, 애인 등의 면회를 손꼽아 기다리는 동료 병사들이 있다. 비록 짧은 시간의 만남이지만, 그 시간 동안만이라도 단절된 추억과 인간관계에 대해 반추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리라. 게다가 대개의 경우 누군가가 멀리서 면회를 오면 예정에 없던 외박 정도는 내보내 주니깐 말이다. 내게도 비록 딱 두 번에 불과했지만, 군 복무 시절 부모님의 면회와 음식에 얽힌 즐거운 추억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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