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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Jan 07. 2019

고교 졸업식과 대학교 졸업식의 추억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35

졸업(卒業)은 사전에 규정되어 있는 학업을 마치는 것을 말한다.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초등학교 졸업식은 중학교로의 진학을, 중학교 졸업식은 고등학교로의 진학과 궤를 같이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식 전까지는 졸업은 하나의 교과 과정을 마침과 동시에 또 다른 교과 과정의 시작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식 다음부터는 동고동락하며 같은 반에서 공부한 친구들이라 할지라도 그 이후가 사뭇 달라진다. 대학교에 진학한 친구도 있고, 대학입시에 실패해서 재수의 길을 걷는 친구도 있고, 아예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 친구도 있다. 실제로 친하게 지냈던 고등학교 친구 중 한 명은 대구에 있는 모 은행에 고졸 신입사원으로 곧바로 취직을 해서 당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한 경우였다. 그렇지만 하필이면 대학입시에 집중해야 할 고등학교 3학년 때 극심한 사춘기적 방황으로 인해 학업에 집중하지 못한 결과 부모님의 기대는 물론 나 스스로도 그리 만족할 수 없는 대학에 합격을 했다.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을 했으니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으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나는 화를 내야 할 대상이 이런 상황을 자초한 나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다른 구실을 찾는 사람처럼 불만투성이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식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결국 두 달 후에 재수의 길을 걷게 될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나의 졸업식이 둘째 여동생의 중학교 졸업식과 날짜가 겹쳤다. 그런데 내 졸업식이 오전에, 동생의 졸업식이 오후에 있어서 어머니께서는 다행히 두 곳을 다 가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좋아하셨다. 나는 불편하게 왔다 갔다 하지 마시고 시간 여유를 가지고 여동생의 졸업식만 가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렇지만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 고교 졸업식을 안 가볼 수 있냐고 하셨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당연히 두 곳을 다 가보시고 싶으셨을 텐데 내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잘 헤아려 드리질 못했다. 철이 없어도 한참 없던 시절이었다.    


졸업식 전 날까지만 해도 나는 졸업식 자체에 큰 흥미가 없었고 어떤 옷차림으로 갈 지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 전날 어머니께서 졸업식에서도 입고, 나중에 대학교 입학식에도 입을 겸 학생들이 입을만한 것으로 수트를 한 벌 사자고 하셨다. 어머니와 같이 옷을 사러 나갔는데 어머니의 취향과 나의 취향이 크게 다르다는 점만 확인하고 결국 빈 손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졸업식에 나는 평소 학교에 가지 않는 날 집이나 동네에서 입고 다니던 '히포' 브랜드의 트레이닝복에 빨간색 겨울 점퍼를 입고 갔다. 지금 그때 그 졸업사진을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난다. 운동선수도 아닌데 고등학교 졸업식에 트레이닝복이라니.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대학교 졸업식이 다가왔다. 당시의 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서 그 분야로만 취업을 생각했는데 건강과 관련한 약간의 불운이 겹친 데다 준비가 부족해서인지 졸업과 동시에 이어진 취업에 실패했다.   


취업을 못한 부분에 대해 쓸데없는 나의 자격지심이 또 발현되었고, 나는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서 대학교 졸업식 때 대구에서 굳이 올라오지 마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부모님께서는 무슨 소리냐면서 내 졸업식을 축하해 주시기 위해 졸업식 전날 서울로 오셨다. 오히려 더 좋은 곳에 취직할 것이라며 격려와 함께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주고 가셨다. 같이 와준 여동생들에게도 무척 고마움을 느꼈다.


1997년 2월 25일이 대학교 졸업식 날이었는데, 24일 밤 부모님이 다른 방에서 잠드신 시간에 나 홀로 깨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늘까지는 내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학생 신분으로서 한 일이고, 내일부터 내 신분은 백수가 되는 것이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잘 준비해서 하루빨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제 내 인생에 부모님께서 참석하시는 졸업식은 두 번 다시없을 테지만 앞으로는 부모님께 항상 좋은 모습만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함께.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는 바람에 부모님께서는 졸업식 겸 학위 수여식에 한 번 더 참석을 하시게 되었지만, 고교 졸업식과 대학교 졸업식 두 번 모두 부모님께 떳떳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나이가 되어 생각해보면 부모의 마음은 자식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왔다갔다 변하는 것이 아님을 절실히 느낀다. 성공하면 성공한 대로 실패하면 실패한 대로 자식의 있는 그대로를 지켜봐 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임을 헤아리게 되었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든 찬 겨울바람이 불든 눈보라가 몰아치든 늘 꿋꿋이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말이다.  


여진이와 지훈이에게는 아직 대학교 졸업식도 남아 있고, 앞으로 걸어갈 길도 많이 남아 있다. 내 부모님께서 내게 그렇게 하셨듯이 아이들의 기쁜 마음과 아픈 마음을 한결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헤아려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아이들에게 든든한 울타리와 나무가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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