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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Feb 10. 2019

도대체 그놈의 영어공부가 뭐라고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43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 1970~80년대 시절만 하더라도 같은 반에 유치원을 졸업한 친구들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당시엔 유치원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고, 어린이 집이란 말은 아예 용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 전 한 해 동안 유치원을 다녔던 나의 경우에도 살던 동네 인근에 마땅한 유치원이 없어서 매일 버스를 타고 30분 거리의 유치원을 통학했다.


상당 수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진 별다른 활동이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영어는커녕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한글을 처음으로 배우는 친구들도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은 유치원 이전에 어린이 집을 다니면서부터 한글을 익히고, 유치원에서부터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영어를 배운다고 한다. 그리고 소위 영어로만 수업을 하는 '영어 유치원'도 꽤 많은 숫자가 생겨났으니 실로 격세지감이다.


내가 영어를 처음으로 접해 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즈음이다. 평소 자식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으신 아버지께서 어린이 영어회화 책과 카세트테이프를 사다 주시면서 매일 30분씩 듣고 따라서 말해보라고 하셨다. 여동생들과 같이 뜻도 모른 채 몇 번 따라 하다가 재미가 없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러다가 6학년 졸업을 몇 달 앞두고 학교에서 지금의 방과 후 수업 같은 영어교육 수업이 생겼는데 곧 중학교에 진학하면 어차피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나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했다.  


사실 나는 어린이 교육 전문가도 아니고 언어학자는 더더욱 아니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유치원 때부터의 영어 조기교육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에 영어 교육의 중요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우리말도 제대로 구사할 나이가 아닌 아이들에게 너무 이른 나이부터 영어교육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 경우 오히려 창의적인 사고의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굳이 전 국민이 영어를 다 잘해야 할 이유도 없고,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인정받는 시대도 아니다. 오히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에게 요구되는 사항은 영어보다 창의력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롯이 주관적인 생각이라 나와 다른 의견이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인정한다.


영어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의 학창 시절과 비교해 지금 중고교 학생들의 영어 교육에 큰 개선이나 변화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얼마 전에 우연히 딸내미가 공부하는 영어 책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이게 영어를 공부하는 책인지 수학을 공부하는 책인지. 여전히 우리나라 학교에서 영어는 좋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시험과목의 하나로만 간주되고 있다.


말로만 실용적인 영어, 회화 위주의 수업, 실제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살아있는 영어 운운하고선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학교에서 고득점 전략 위주의 영어 교육을 받고 살아오다 보니 막상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한 번 가려고 할 때마다 서점에서 '생존 영어' 실전 영어' '필수 여행영어' 같은 책을 기웃거리게 된다.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길은 외국에서 살다 오는 방법인 것 같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겠지만 매우 드물 것이다.


몇 해 전에 유튜브 인기 크리에이터인 <영국남자>가 우리나라 영어 수능 시험문제를 영국의 고향 친구들에게 풀어보게 한 영상을 업로드한 적이 있었는데 심지어 캠브리지대학을 졸업한 친구도 반 정도밖에 맞추지 못했다. 영상의 말미에 "한국 수험생 여러분! 이 문제 못 풀어도 인생에 지장 없으니 절대 기죽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찡했다. 도대체 영어의 본 고장인 영국인들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1분 내로 척척 풀어내는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새삼 아이들이 수능 준비에  엄청난 고생 아닌 고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을 하니 토익(TOEIC)이란 시험이 생겼다. 영어를 읽고 쓰기도 쉽지 않은데 듣고 이해하기까지 하라니 난리가 났다. 그 무렵부터 휴학을 하고 외국으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이나 그 이상의 장기간 동안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취업을 위해 영어 구사능력이 중요한 잣대로 급격히 떠오르던 시기였다. 요즘은 취업, 관광, 어학연수를 병행해서 할 수 있는 '워킹 홀리데이' 제도 등 그 유형도 다양해졌지만 당시엔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목표한 외국어의 실력 향상을 위한 거의 유일한 수단이 어학연수였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영어 공부를 완전 손에 놓고 있었던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고, 결국은 단기간에 영어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또 한 번의 휴학을 결심했다. 이번에는 부모님과 충분한 상의를 통해서 결정을 했고 부모님께서도 당시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내가 열심히 한다는 조건 하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셨다.


나는 친구와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해서 해외 어학연수 대신 외국 현지에서와 똑같은 코스로 진행되는 국내 글로벌 영어학원에서 매일 6시간씩 8개월간 영어 공부에 매진했고, 당초 목표로 했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내 계획과 취지를 인정해주시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신 부모님께 심려를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했던 덕분이었다.


영어 공부엔 왕도가 없다고 한다. 나는 학창 시절이나 특정 시험을 준비했던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취미 삼아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여유가 있을 때엔 주말반 학원도 다니고, 회사 온라인 강의 시스템을 활용하기도 한다. 죽기 살기로 하는 것이 아니고 쉬엄쉬엄 재미 삼아 공부하다 보니 지치지도 않고 지속할 수 있는 것 같다. 아버지께서 취미생활의 하나인 난초 키우기를 위해 일본어 공부를 하신 것처럼 말이다.


사실 경제적인 형편도 전혀 되지 않았지만, 조기 영어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강해서 아이들에게 영어 유치원이나 조기 영어 교육 같은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아이들의 창의력 향상을 위해 다양한 체험을 통해 견문을 넓히는 데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나는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는다.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거니와 내 부모님이 나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스스로 고민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 내가 할 역할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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