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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Feb 17. 2019

어머니 손잡고 따라나선 재래시장 장보기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44

내 고향 대구에는 시가지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도시 하천 '신천'이 있다. '신천'과 인접한 대봉동에는 재래시장인 '방천시장'이 있는데 내가 여섯 살 때까지 살았던 삼덕동과도 가까워서 어머니께서 장을 보실 때면 늘 그 시장을 이용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장보기를 거들어 드릴 만큼의 나이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여러 상인 분들께서 내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실 정도로 꽤나 자주 어머니의 손을 잡고 따라다녔다. 내가 일곱 살 되던 해에 범어동으로 이사를 했는데, 어머니께선 이사한 이후에도 동네 인근에 꽤 큰 규모의 시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버스를 타고 오가면서 방천시장을 계속 이용하셨다. 그리고 나 또한 기회가 될 때마다 어머니께서 시장에 가실 때 함께 따라나섰다.


시장을 오가며 어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내가 어머니의 짐을 나눠 들어드릴 때는 나름 아들 노릇을 하고 있다는 약간의 뿌듯함도 느껴졌다.


사실 그 당시엔 어린아이들이 할 만한 놀이거리나 볼 만한 구경거리가 충분치 않아서 어린 나의 눈에는 다양한 식자재부터 온갖 잡동사니까지 즐비한 시장 구경이 마냥 신나고 좋았다. 게다가 어머니께서 단골로 자주 찾는 어묵가게에 들를 때마다 가게 주인아주머니께서 내 손에 하나씩 쥐어주시는 맛있는 어묵을 얻어먹는 즐거움 또한 컸다.


어머니께서 이곳저곳 장을 보실 동안 나는 어묵가게에 앉아서 어묵을 먹으면서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다. 지금은 그 방천시장이 예전과 달리 가게 정비도 많이 되었고 무엇보다 가수 故김광석 씨가 어릴 때 살던 곳으로 유명해졌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는 아름다운 벽화 등 볼거리가 많다. 그렇지만 내게 있어서 방시장은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따라다녔던 추억이 한껏 배어 있는 곳인 동시에 재래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식 정서가 담긴 어 맛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내가 초등학교에서 학년이 높아지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는 일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사한 동네에도 바로 길 건너편에 제법 규모가 큰 시장이 생겨서 굳이 '방천시장'까지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 무렵부터 이전의 동네 구멍가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대형 슈퍼마켓이 생겨나기 시작해서 집집마다 어머니들의 장보기가 한결 편리해졌다. 대량으로 구매할 경우에는 직접 집으로 배달까지 해주는 시스템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오히려 시장보다 슈퍼마켓에 어머니 심부름으로 소소한 물건을 사러 가는 일이 잦아졌다. 어머니께선 슈퍼마켓에 심부름을 시키실 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셨는데 평소 내가 즐겨 먹는 떡볶이 한 접시 값을 물건 값에다 얹어서 받곤 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어머니와 함께 재래시장이든 대형 슈퍼마켓이든 장보기를 같이 한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십여 년 만에 방천시장을 다시 찾았을 때 너무 많이 변해서 깜짝 놀랐던 일, 지금은 집사람이 어머니를 따라나서서 하는 일이 되었지만 명절 차례 상에 올리려고 주문한 떡을 찾으러 고향집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에 들른 일, 결혼을 앞두고 이것저것 장만한답시고 대구에서 가장 큰 시장인 '서문시장'을 같이 갔던 일 등이 기억에 남는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그리 많지 않은 시간 중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에겐 소중한 추억들이다.


지금 시대는 예전에 비해 재래시장이 많이 위축되었고 그 자리를 이마트, 홈플러스, 코스트코 같은 대형 할인매장이 대신하고 있다. 결혼 후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할인매장이 들어 선 쇼핑 몰을 가끔씩 찾았는데 필요한 물건도 구입하고, 때론 같은 건물에 들어서 있는 식당가에서 외식도 하고, 극장에서 영화도 보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첫째 여진이는 어릴 때부터 또래 아이들보다 의젓한 면이 있어서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사달라고 조르는 일이 거의 없었다. 반면에 둘째 지훈이는 마트에 갈 때마다 늘 뭔가 꿍꿍이가 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릴 때면 늘 내 옆으로 와서 손을 잡으면서 "아빠 손을 잡으면 왠지 마트에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라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훈이의 속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해주었다. 아이들은 원래 제사보다 젯밥에 더 마음이 있으니깐.    


다른 가족들은 할인매장 내 이곳저곳을 돌며 장을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훈이는 매장 내 장난감 코너에 진열되어 있는 레고 모형이나 플라 모델 모형 앞에서 꼼짝을 하지 않는다. 속셈이 뻔히 들여다보이지만 내가 모른 척하고 관심을 보이면 앞으로 게임도 덜 하고 책도 많이 읽을 테니 레고 하나만 사달라고 굳약속의 멘트와 동시에 애교를 떤다.


이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에 있으랴. 그리고 무리한 요구도 아니다. 가끔은 집사람이 말릴 때도 있지만 나는 웬만하며 지훈이의 요청을 받아준다. 마치 어머니께서 어린 내 손에 어묵 하나를 더 쥐어주시려고, 떡볶이 한 접시 값을 심부름 값에 얹어주시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시장에 갈 일이 좀처럼 생길 것 같진 않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가족여행 때 속초 중앙시장 또는 제주 동문시장 같은 관광 명소에 들러서 시장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들도 사드리고 싶다. 그때는 내 손이 아니라 손자나 손녀의 손을 잡고 계시겠지만, 아이들에게 삼대에 걸친 재래시장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오늘따라 40년도 넘은 방천시장의 그 어묵 맛이 그립다. 늘 나를 귀여워해 주시던 가게 주인아주머니의 미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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