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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Feb 17. 2019

어릴 적 병치레와 약전골목 한약방의 추억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45

건강은 절대 과신해선 안 된다고 하지만 쉰 살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비교적 건강한 편이다. 특별히 몸에 이상이 있지도 않고, 신장 181센티미터에 체중 79킬로그램으로 아랫배가 나오는 등 중년의 부작용(?)도 거의 없고, 심지어 흰머리도 한두 가닥 외엔 없다. 좋은 유전자를 물려주신 부모님께 고마울 따름이다.


예전만 못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도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꽤나 소주잔을 주고받는다. 사실 마음 같아선 이삼십 대 시절처럼 마실 수 있는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면 확실히 나이는 속이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사십 대 중반 이후로는 시쳇말로 잔 수 또는 병 수를 세면서 마신다. 나름 건강을 위해서 들인 습관이다. 그래야 다음 날이 편하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피웠던 담배는 완전히 끊었다. 100세 시대를 대비해서 건강하고 깨끗한 폐로 숨 쉬고 싶어서다.


내가 또래 평균보다 비교적 좋은 건강 상태와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어릴 때 건강이 좋지 않아 큰 병치레를 한 적이 있는데 어머님께서 내 건강 회복에 엄청난 신경을 써 주셨다.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아버지께서 일찍 찾아온 당뇨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았기 때문이다.


굳이 한 가지 이유를 더 찾자면 내 또래 연배의 사람들에 비해 좀 바쁘게 활동적으로 생활하는 편이다. 현재 직장 생활을 하는 것 외에도 한국어 교원으로서의 봉사활동, 취미로 그림 그리기, 대한민국 방방곡곡 걷기, 그리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쓴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활발히 움직이면서 살다 보니 정신과 신체가 모두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신장염을 앓았다. 방과 후에 점심도 거른 채 친구들과 인근 공터에서 놀다가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병원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뭔가 응급처치를 하고 계셨다. 


신장염이 생긴 줄도 모르고 방치한 탓에 상태가 악화돼서 꽤 심각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도 받아야 했고, 퇴원 후에도 며칠 동안 집에서 쉬는 바람에 학창 시절 유일하게 개근상을 못 받게 되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비록 한 때지만 몸이 약해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이로 여겨졌다.


장기간 병원에서 처방해주신 약을 먹은 것은 기본이었고, 그 약과는 별도로 어머니를 따라 대구 시내 약전골목에 위치한 한약방에서 건강 회복을 위한 한약을 지어먹었다. 


'창덕 한의원'이란 곳이었는데 원장 선생님께서 동네 아저씨처럼 친절하면서도 편하게 대해 주셨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한두 번 찾아간 적이 있는데 늘 인자한 미소로  맞아주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한참 나중의 일이지만 어머니는 한의원 원장 선생님의 둘째 아들이 맘에 든다고 하시면서 사위 삼고 싶은 욕심을 내시기도 하셨다. 여동생과 이어 보려는 시도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결과로만 보면 어머니 혼자만의 상상에 그쳤다.


그때 원장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 중에 아직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나는 태음인이니 체질에 맞는 음식을 가려서 먹는 것이 좋다는 말씀, 상대적으로 위장이 좋지 않으니 관리를 잘하라는 말씀, 그리고 간이 너무 좋으니 늘 경계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나는 어머니의 철저한 관리 하에 거의 6개월 이상을 양약과 한약을 동시에 먹으면서 건강 회복에 힘썼다. 몸에 좋다는 여러 음식을 두루 섭취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니께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 주셨다.


우리 집 윗동네에 나를 맡아서 가르치시는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살고 계셨는데 출근길에 나를 데리고 학교에 가 주셨다. 어차피 출근길에 우리 집 앞을 지나가기도 하시거니와 혹시라도 내가 등교 길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셨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에는 가방을 들어주시기도 했다. 아침마다 번거로운 일이셨을 텐데 정말이지 너무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아무튼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 여러 분들의 관심과, 배려, 그리도 도움으로 나는 병을 완치하고 건강을 회복했다.


건강이 회복되자 마치 그간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했던 것을 일시에 만회라도 하듯이 동네 공터에서 해 질 녘까지 뛰어놀았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방과 후에 늘 학교 운동장이나 동네 공터에서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그게 축구든, 야구든, 농구든.


주말에는 부모님을 따라 팔공산을 비롯해 여러 산으로 등산을 다녔다. 그렇게 쌓은 체력과 건강 덕분에 지금껏 큰 병치레 없이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병치레가 잦은 허약 체질이 부모님의 보살핌으로 인해 더 건강한 체질로 바뀌는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자식이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희게 세어도 부모의 마음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를 보듯 늘 같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면 내가 부모님 건강 걱정을 하는 것 이상으로 술 많이 마시지 마라, 담배는 확실히 끊어야 한다, 찬 음식을 가급적 피해라 등 여러 가지 당부의 말씀을 하신다. 귀에 딱지가 열 번은 앉았다가 떨어질 만큼 들었다. 예전에는 그만 좀 하시라고 역정도 냈는데 지금은 가만히 듣는다. 언젠가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그리워질 날이 올 것이기 때문에 녹음이라도 해두고 싶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한약방이 예전만큼 성해하지도 않거니와 그 역할과 기능도 많이 바뀐 것 같다. 동네 한의원 앞에 있는 홍보용 입간판을 보면 단기간 체중 감량을 위한 한약을 지어준다고 한다.


아이들은 한약이라면 아예 기겁을 한다. 요즘은 각종 종합 비타민은 물론이고 홍삼, 생들기름, 흑마늘, 비트, 콜라겐, 오메가 3 등 다양한 건강 보조식품들이 있다. 경우와 필요에 따라 나도 이용하고 있고 명절이나 생신날에는 부모님께 선물로 드리기도 한다.


부모님께서는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시려고 매일매일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신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비교적 큰 병 없이 건강히 잘 지내시는 편이다. 아이들도 큰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서 너무나도 다행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동시에 폐렴 증세가 있어서 한 병실에 같이 입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다. 특히 간호사가 혈관을 찾지 못해 링거 주사 바늘을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하고 여러 번 찌를 때는 몹시 화가 나기도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아이들 대신 아파주고 싶었다.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건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진정으로  생각을 염두에 두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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