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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Feb 23. 2019

삼천리자전거, 롤러스케이트, 손 썰매의 추억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46

초등학교 2학년 무렵 같은 동네에 살던 또래 친구들 사이에 자전거 타기 열풍이 불었다. 마치 이번 달은 '자전거 구입의 달'이라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전거를 산 친구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부모님께서는 내심 내가 조금 더 큰 이후에 자전거를 타길 원하시는 눈치였지만 내 성화를 못 이기시고 자전거를 사주셨다. 브랜드는 그때도 지금도 유명한 '삼천리자전거'였다. 


자전거를 처음 타 보는 거라 아버지께서 뒤에서 잡아주시면서 요령을 가르쳐 주시기도 했고, 내가 혼자서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떼지 말라며 보조바퀴도 달아 주셨다. 그렇게 보조바퀴를 달고서 한 달 남짓 타다 보니 넘어지지 않을 자신감도 생겼고, 또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보조바퀴를 먼저 떼내는 것이 뭔가 대단한 자랑거리라도 되는 듯한 경쟁심에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빠른 시점에 보조바퀴를 떼어냈다. 보조바퀴를 떼어낸 날은 동네를 돌면서 마치 내 자전거 타기 실력을 과시라도 하듯이 평소보다 더 많이 탔던 것 같다. 그리고 한 번도 안 넘어졌다고 부모님께 한껏 자랑도 했다.


무엇인가를 한참 동안 하지 않다가 다시 할 때 흔히들 자전거 타기에 비유를 한다. 오랜 기간 동안 경험하지 않더라도 한번 몸에 기억처럼, 습관처럼 밴 것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뜻에서이다. 사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초등학교 시절 외엔 자전거를 탈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체격이 커지면서 성인용 자전거를 다시 사지도 않았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교외로 놀러 갔을 때나 가족들과 함께 간 관광지나 여행지에서 한두 번 타본 것이 내 경험의 전부다. 그래서 지금도 자전거를 탈 수는 있겠지만 너무 오랜 기단 타질 않아서 뭔가 어색할 듯하다.


둘째 지훈이가 여섯 살 무렵에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해서 아버지께서 내게 해주신 것과 같이 보조바퀴가 달린 어린이용 자전거를 사 준 적이 있다. 핸들 앞 쪽에 슈퍼맨 심벌이 삼각판 모양으로 붙어 있는 자전거였다. 나도 예전의 아버지처럼 처음에 몇 번 뒤에서 붙잡아주면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요령을 알려 주었다. 지훈이는 한 가지에 마음이 가면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성격이라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꽤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적으로 인라인스케이트 열풍이 불었다. 여진이와 지훈이 모두 주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에서 스케이팅을 했고, 가끔씩은 주말에 김밥을 싸서 여의도 공원에 나가서 나는 공원 트랙을 돌며 러닝을 하고 아이들은 스케이팅을 즐겼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무렵부터 롤러스케이트장이 생겼는데 사실 나는 롤러스케이트를 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부모님께서는 당시 롤러스케이트장을 다소 불량한(?) 학생들이 가는 곳으로 여기시고 출입을 엄격히 금하셨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약간은 터무니없는 당부의 말씀이셨지만 평소 부모님 말씀을 그다지 잘 따르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약속만은 끝까지 지켰다.


부모님의 신신당부가 아니더라도 야구, 축구 등 공터에서 친구들과 놀거리를 비롯해 가끔씩 들리는 만화방도 있었기에 나 역시 굳이 롤러스케이트를 배울 생각도 없었다. 나중에 성인이 되고 나서 <친구>, <품행제로> 같은 영화를 보다가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에서 약간 불량 학생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면 부모님의 당부가 생각나서 혼자 웃음 짓곤 했다. 그 이후 직장 내에 인라인스케이트 동회회가 생겨서 가입도 했지만 이상할 만큼 스케줄이 맞질 않아서 결국에는 배우지도 못했고, 한 번도 타 보지도 못했다. 바퀴 달린 스케이팅이랑 나랑은 이번 생에서는 인연이 없나 보다.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시내 중심지가 아닌 비교적 외곽 지역이라 미처 개발이 다 되기 전까지는 곳곳에 논이 있었는데 겨울이 되면 꽁꽁 얼어붙은 얼음판으로 바뀌어서 손 썰매를 타기에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도움에 힘입어 나무판자와 굵은 철사 줄을 이용해 손 썰매를 만들어서 친구들과 그야말로 추운 줄도 모르고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과 겨울철에 강원도 쪽 펜션에 놀러 가서 쌓인 눈 위로 눈썰매를 태워 준 적이 있다. 타고 있는 아이들도 썰매를 끄는 나도 무척 즐거웠던 경험이었다. 어릴 적 눈 쌓인 곳에서 놀던 향수가 원인이 된 탓도 있거니와 근본적으로 어른이나 아이나 눈에서 노는 즐거움은 같은 것 같다.


부모님께서 스키장을 가보신 적이 없으니 당연히 나도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나 스키를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몇 년 정도 타다가 꽤 오래전부터는 아예 겨울철에 스키장을 찾지도 않는다. 겨울철 매주마다 스키장을 찾는 스키 마니아들을 보면 한편으론 살짝 부럽기도 하다. 아이들에겐 다양한 체험을 해주고픈 욕심에 어릴 때부터 꾸준히 스키캠프를 활용해 스키와 친해지도록 해주었는데 얼마만큼 취미가 붙었는지는 모르겠다. 요즘은 워낙에 이것저것 할 것들이 많으니 말이다.    


몇 년 전 지훈이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께서 손자의 입학 선물로 자전거를 사 주셨다. 지훈이와 자전거를 사러 같이 갔었는데 선택한 브랜드는 삼천리자전거였다. 공교롭게도 아버지께서 아들과 손자의 자전거 선물을 모두 삼천리 브랜드로 해주신 셈이었다. 우연을 가장한 묘한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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