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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55

by 양성필

인생살이와 관련해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로 금수저, 흙수저란 표현도 있고,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번 생에서는 틀렸으니 다음 생에서 잘해 볼 거야란 표현도 있다.


그만큼 주어진 환경을 스스로 극복해내기가 어려워진 세상살이에 대한 푸념이 묻어 나는 말이기도 하고, 어차피 힘들게 노력해도 크게 달라지진 않으니깐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동시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인생을 즐기며 살겠다는 자율의지가 내재된 말이기도 하다.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는 말이 있듯이 인생을 즐겁게 살겠다는 데엔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엇인가 조금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세상에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한 번뿐인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자 애쓰는 사람, 즐겁게 살고자 애쓰는 사람, 종교적 신념이나 소명의식을 위해 살고자 애쓰는 사람 등 백 명에게 물으면 백 가지의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다.


당초부터 정답이 있는 질문도 아니지만 개인에게 주어진 환경과 살아온 길, 그리고 살아가야 할 길이 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껏 살아온 자신의 삶이 훌륭한 삶이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과연 이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참으로 본받고 싶은 훌륭한 위인의 삶, 감명 깊게 읽은 한 권의 책, 마음의 눈으로 본 한 편의 영화, 뜻하지 않은 커다란 행운, 전혀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 등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것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그것을 다 합쳐도 부모가 자식에게 끼친 영향만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자식은 부모의 인생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엿보고 배우면서 자란다. 부모가 평소 이래라저래라 충고해준 말도 많지만 굳이 말이라는 매개체로 전수받지 않더라도 옆에서 지켜보는 과정에서 저절로 체득하게 되는 것들도 꽤나 많다. 오죽하면 아이들 앞에서는 찬 물도 못 마신다란 말이 있겠는가.


아이들은 자신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언제나 해결해 줄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부모가 지니고 있다고 믿으면서 자라고 이것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어느 정도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지속된다. 물론,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 다만, 자식을 위해서 늘 최선을 다하는 부모가 있을 뿐이다. 부모의 삶에서 내 인생을 비춰줄 무엇인가를 나 스스로 발견해내고, 깨달은 바를 실천하는 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의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급격한 가세의 몰락으로 인해 아버지를 비롯한 아버지 형제자매 분들은 학창 시절부터 고생을 많이 하셨다. 누군가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닌 불편함이라고 했지만, 아버지께서는 그 시절의 가난과 어려웠던 시절에 대해 우리 사남매에게 구체적인 말씀을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다. 본인이 겪으신 어려움을 가슴속에 묻어두신 대신 평소 성실하게 노력하는 삶을 사시면서 특히 자식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강조하신다.


넉넉하지 않은 생활 속에서도 내가 조금 더 가진 것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면 기쁨도 늘고 내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기회 될 때마다 말씀하신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실천도 하신다.


솔직히 나는 삼십 대까진 그 말씀을 귀로만 이해했다. 그런데 사십 대 중반부터 그 말씀이 마음으로 이해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정기적으로 몇몇 곳에 후원도 하고 있고 여러 형태의 재능 기부를 비롯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인생 2막은 봉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 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몇 가지 준비도 하고 있는 중이다. 내 삶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했다. 남에게 베푸는 것이 남한테만 좋은 게 아니고 복을 지으면 그 복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맞았다.


칠십 대 후반으로 접어드신 어머니께선 기력이 예전만 못 하신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절에 열심히 다니시며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의 안녕을 위해 불공을 드리신다. 한평생을 가족을 위해 마음 쓰시며 살아오신 내 어머니시다.


어머니께선 결혼 후 그리 넉넉하지 않은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친척들에게 늘 마음을 써 주셨고, 시어머니이신 나의 할머니는 물론이고 친부모이신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어머니께선 나에게 평소 하심(下心)을 가지고 늘 감사하면서 하루를 살라고 강조하신다. 노력은 하지만 쉽지가 않다. 어머니는 지금도 전화 통화를 하면 그 말씀을 잊지 않고 하신다. 주위에 훌륭한 어머니들이 여러 분 계시겠지만 나에겐 이 세상에 우리 어머니 같으신 분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 지금껏 "어머니, 사랑합니다"란 말 한 번 제대로 못 해 드렸다. 마음은 안 그런데 표현이 참 어렵다. 고등학생이었던 사춘기 시절에 왜 그렇게 어머니께 화를 내고 대들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다. 이제는 그 시절의 나를 감싸 안아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졌지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리다. 당시 어머니께선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유시민 작가는 그의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급여가 나오는 일자리를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면 봉사활동이 훌륭한 대안이 된다. 몸으로 하는 봉사활동이든 전문성을 활용한 재능 기부든 상관이 없다. 일과 놀이와 사랑만으로는 인생을 다 채우지 못한다. 그것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온전하게 느끼지 못하며, 그것만으로는 누릴 가치가 있는 행복을 다 누릴 수 없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어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사용해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인생이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인생이다."


일면 아버지께서 평소에 우리 사남매에게 하시는 말씀과 맥락이 닿아 있다. 봉사하는 삶이다. 그렇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책 중에 혜민스님이 쓰신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버지는 가족모임에서 가끔씩 책에 나온 말씀을 인용도 하신다.


혜민스님의 책 속엔 우리 삶을 조금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해 줄 좋은 말씀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한 얘기가 있다. "첫째, 내가 상상하는 것만큼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할 시간에 나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둘째,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줄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이다. 내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은데 어떻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줄 수 있을까? 셋째, 남을 위한다면서 하는 거의 모든 행위들은 사실 나를 위해 하는 것이었다는 깨달음이다. 남에게 정말로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남 눈치 그만 보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자. 내가 먼저 행복해야 세상도 행복한 것이고, 그래야 또 내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 너무 어렵게 살지 말자".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는 말씀이다. 그렇다. 한 번뿐인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자. 단,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생 때 명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존 키팅' 선생님의 역할을 맡은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를 봤다. 당시가 1990년이었는데 그 이후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늘 내 곁을 지키는 말이 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


물론 이 말은 당장 내 눈앞의 것만을 생각하고 즐기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매 순간마다 충만한 인생의 의미를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면서 살아가라는 말이다. 다만, 내일의 행복을 위한답시고 오늘을 힘들고 괴롭게 사는 것도 틀린 것이며, 과거에 얽매여서 오늘을 즐기지 못하는 것도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니 오늘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행복함을 느껴야 한다는 말이다.


어찌 보면 어머니께서 매일매일 감사하면서 하루를 살라는 말씀과 통하는 면도 있다. 이 역시 실천이 쉽지 않지만 적어도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또 다른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천명. 하늘의 명을 안다고 하는 나이다. 나는 어느덧 우리 나이로 쉰 살을 넘어섰다. 그런데 요즘은 기대수명 백세 시대여서 옛말이 다소 무색해진다. 게다가 내가 도를 닦는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선지적인 자각 능력이 있지도 않으니 어느 날 갑자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정답을 찾았다면서 유레카를 외칠 일도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조금씩 봉사하는 삶의 시간을 늘려 나갈 것이고, 어머니의 말씀처럼 하루하루를 감사하면서 사는 삶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이 아닌 내가 정한 기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나의 삶이 여유롭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린 결정으로 인해 때론 실수할 수도 있고, 때론 뜻밖의 행운이 찾아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나는 지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내 부모님의 삶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배웠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진정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이제는 내가 이 유산을 나의 자식들에게 잘 물려주는 것이 내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자 내가 할 도리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백 마디 말보다 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실천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있기까지 수많은 노고와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직 자식들이 잘 되기만을 빌어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이어서 행복합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끝으로 내가 좋아하는 박노해 시인의 시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 박노해 >


무기 감옥에서 살아나올 때

이번 생에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혁명가로서 철저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허약하고 결함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기나긴 감옥 독방에서

나는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서

수많은 상상과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

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 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 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에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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