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학 진학과 직업 선택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54

by 양성필

세상살이의 빠른 변화로 인해 꼭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내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시절보다 훨씬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학부모와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들이 대학입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입시 전형만 수백 가지에 달한다는 복잡한 입시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공교육 시스템, 필수가 되어버린 학원 수강 등 여러 상황들로 인해 지금의 수험생들은 학력고사 세대였던 나 때에 비해 훨씬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곁에서 지켜본 수험생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되던 해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셨다.


옛날에는 워낙에 구경거리가 없어서 같은 마을 어느 집에서 굿을 한다든가, 초상이 나서 상여가 나가든가 하는 일이 그나마 큰 구경거리였는데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그런 구경에 나가지 않고 골방에 틀어박혀 공부에 몰두했다고 하셨다. 생전의 할머니께 꽤나 많이 들었던 얘기라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집안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지는 바람에 아버지는 결국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취업을 택하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도 사정이 비슷하셨다.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으로 인해 바로 위의 언니와 바로 밑의 여동생을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서 본인이 희생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하셨다고 한다.


부모님 세대엔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취업을 선택하더라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던 시대적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뛰어난 학업 성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제가 아닌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하셨으니 분명 가슴 한편에 대학 진학에 대한 한이 남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께서는 자식들의 교육에 지극한 애정과 관심을 보이셨고 여러 어려운 환경 하에서도 우리 사남매 모두를 대학까지 뒷바라지해 주셨다.


아버지는 툭툭 농담을 던지시듯 가끔씩 내게 나중에 커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셨다. 나는 장래 희망에 대해 깊이 고민할 나이도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시절엔 판사가 되고 싶다고 했고, 중학교 이후부턴 해외 무역을 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왠지 비행기를 타고 해외 출장을 다니는 것이 멋있게 보이기도 했고 나중에 친구랑 같이 창업을 하기로 약속도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버지의 질문엔 애당초 정답이 없었고 아버지가 나로부터 원하시는 답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내가 뚜렷한 목표 없이 시간을 보내지 말고 그게 무엇이든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라는 차원에서 던지신 질문이었다.


아이들이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할 만큼 컸을 때 나도 가끔씩 아이들과 꿈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예전의 아버지보다 조금 더 나아가서 그 꿈을 빈 종이에 한번 써 보라고도했었다. 늘 꿈을 가지고 도전하고 준비하라는 아버지의 뜻과 같은 취지에서였다.


실제로 나는 아버지께 말씀드린 대로 무역학과에 입학을 했으나, 스스로 재수를 선택하면서 의도와는 달리 전공이 바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무역업과는 전혀 다른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되었다. 어릴 때 꿈을 커서도 그대로 실현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꿈꿔 왔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축구선수 박지성, 야구선수 오타니, 외과의사 이국종 교수, 가수 폴 포츠, 영화배우 강수연 등등.


때로는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기도 했고, 나 자신이 다소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그들이 크게 성공해서가 아니라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고, 그리고 그 꿈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들이 오르고 싶은 나무를 처음부터 선택해서 올랐을 뿐이고, 나는 내가 오르고 싶은 나무를 중간에 바꿔서 올랐을 뿐이다. 다른 누구의 의지가 아닌 나의 의지로 선택한 나무다. 비록 어릴 적부터 꿈꿨던 길은 아니지만 오늘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만족을 느끼며 집중하려고 애쓴다. 어쩌면 꿈이라는 것이 어릴 때 잠시 혼자서 꾼 꿈이었을 뿐 우리는 이미 정해져 있는, 주어진 길을 걸어가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녔던 대구 경신고등학교에는 2학년 겨울방학 때 학교 성적이 상위권에 있는 학생들을 모아서 소위 SKY라고 부르는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를 돌아보고 오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그 프로그램이 딱 내가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는 해에 실행이 되지 않았다. 만약에 그 프로그램이 실행이 되어서 내가 참여했더라면 대학 진학을 위한 동기 부여에 조금은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그게 못내 아쉬웠던지 첫째 여진이가 중학교 3학년이 된 해에 휴일을 이용해 나의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데리고 갔었다. 천천히 학교를 한 바퀴 돌면서 교내 곳곳을 안내해 주고 훗날 대학 진학에 대한 꿈을 심어 주었다. 여진이는 그때의 기운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모모르지만 나의 대학 후배로서 고려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입학식 날 학교 교정에서 같이 기념사진을 찍을 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뿌듯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요즘 같이 대학 입시 공부를 하기가 어려운 시대에 힘겨운 노력을 한 딸내미가 정말 대견스럽다는 마음도 들었다. 간절히 바라면 꿈도 이뤄진다고 하는 말이 현재의 일로 실현이 되어 참으로 기쁜 하루였다. 부모님께서도 손녀의 합격과 입학 소식에 무척이나 기뻐하시고 축하해 주셨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할 때나 졸업 후 어떤 직업을 가지려고 계획하는 데 있어서 큰 틀에서만 충고를 하셨고 철저하게 내 생각을 존중해 주셨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사소한 것까지 간섭을 하지 않는 편이다. 큰 틀에서 내가 생각해둔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스스로 깨우치고 목표를 정해서 나가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내가 택한 방법이다.


운이 좋게도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연계해서 대학교 등에서 강의도 하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4차 산업 혁명과 관련된 세상의 변화에 대해 자주 얘기를 해주는 편이다. 변화의 큰 방향성에 대해서만 제언을 해주고 그 안에서 아이들 스스로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그런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해보고 싶은 것을 찾아내고 그 길을 따라 계속 매진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가올 미래는 직장의 중요성보다 내가 좋아서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는 직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라고 한다.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찾아내기를 바란다.


나는 미래를 위한 대비는 저축, 보험 등 금융자산의 축적이 전부가 아니고, 시대의 변화에 맞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오래도록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이미 수십 년 전에 내게 말씀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셨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제2의 인생에 대한 준비를 몇 년 전부터 조금씩 해오고 있다. 인재론과 조직론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100세 인생>의 저자 린다 그래튼은 기대 수명 100세 시대에 학업-직장-은퇴라는 3단계 생애 공식은 끝났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돈이나 집 같은 유형 자산보다 건강, 적응력, 인맥 등의 무형 자산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사람만이 늘어난 수명만큼 더 행복한 삶을 누린다고 조언한다. 현실로 다가온 100세 인생시대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아이들과 이런 부분에 대한 얘기를 좀 더 자주 나눠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책 읽는 습관 여든까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