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남자 옆에 산다는 것

순진함과 신앙, 그리고 의심 많은 아내의 16년

by 요카

어제 남편이 말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여자아이 생일 선물, 뭐 사주면 좋을 것 같아?”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는 남편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다섯에서 여섯 명을 맡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처럼 중1인 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야야, 딸은 이제 중학생이야. 초등학교 1학년 아니거든.’ 속으로 태클을 걸면서 “지금까지 줬던 아이들이랑 같은 걸로 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조언했다.


선물은 공평해야 한다. 나중에 들킬 가능성이 있다. 요즘 아이들의 정보력을 얕보면 안 된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생일이 다 1월이었거든… 그래서 기억이 안 나.”

어머, 어머. ‘아이고, 깜빡했구나’ 하고 웃어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몇 년 전 일이었다. 남편은 회사 연수로 일본의 깊은 산속에 들어가 ‘내관(內觀)’이라는 2박 3일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내관이란, 자기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 이해가 회사 실적 향상으로 이어진다니, 남편 회사는 꽤 철학적이구나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 프로그램에서 “어릴 적 기억 중 뭐든 좋으니 떠오르는 대로 발표해 보세요”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남편은 “아무리 필사적으로 생각해도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어”라며 마치 소림사 수행이라도 다녀온 사람처럼 하소연했다.

“초등학교 때 일 하나쯤은 기억 안 나?” 의심 반, 농담 반으로 물었더니 얼굴이 새파래져서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너무 힘들어서 전부 잊고 싶을 만큼의 경험 같은 건 없었어?” 다시 확인하자 “음… 그것도 모르겠어”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나도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남편과 비교하면, 나는 아직 점잖은 편이다. 아이들과 캠핑을 간 게 작년이었는지 재작년이었는지, 일본에 다녀올 때 신칸센 요금이 얼마였는지, 조카가 아르바이트하는 카페가 코메다커피였는지 호시노커피였는지 그 정도를 헷갈릴 뿐이다. 사실 자체를 통째로 잊어버리는 ‘기억상실급’은 아니다.


나도 나름대로 대범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의 ‘망각’에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당해낼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평소의 남편이 나보다 못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훨씬 훌륭하다. 나보다 성실하고, 깔끔하고, 생활이 단정하다.

빨래를 돌돌 말아 작게 개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입이 떡 벌어졌다. 군 복무 시절에 배웠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한국의 아내들은 예상치 못한 혜택을 보고 있다.

아버지도 종종 말씀하신다.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랑 결혼했다.” 몇 번이고 듣다 보니 ‘도대체 너 같은 애가 어떻게 이런 사람과 결혼했냐’는 의심을 받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남편은 검소하다. 16년 결혼 생활 동안 옷이나 신발을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스타벅스 커피보다 편의점 커피를 마시고, 냉장고를 정기적으로 청소하면서 그 안에서 발견한 재료로 요리를 하고 처리한다. 나에게는 없는 이 부지런함이 가끔은 숨 막히는 부담감이나 죄책감을 주기도 하지만, 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는 이보다 더한 능력이 없다.


그런 남편이 나를 놀라게 한 예상 밖의 지출이 단 두 번 있었다. 하나는 탈모 예방을 위한 거꾸리 기구, 다른 하나는 빛으로 모발을 관리한다는 헬멧형 기기였다. 둘 다 꽤 고가였고 부피도 컸다. 결국 먼지를 뒤집어쓴 그것들을 슬쩍 재활용 박스에 넣어두었지만, 다시 돌아온다. 재활용 담당은 남편이다. 올해가 되어서야 그 존재가 사라졌는데 정말로 버린 건지, 어디 다른 곳에 보관해 둔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정도의 장난기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외모를 중시해서 대통령이 탈모 치료제를 보험 적용하겠다고 할 정도다. 한국 남자들의 흔한 모습이기도 하다.


결혼 초의 이야기다. 남편은 매달 유니세프 같은 여러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월급의 10퍼센트를 다니는 교회에 헌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묻고 싶다. 배우자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시의 나는 노후를 위해 1엔이라도 더 저축해야 한다고 굳게 믿던 사람이었다. “그래요, 계속하세요!”라고 태평하게 대답할 수 있는 성인은 아니었다. 악착같이 살아온 재일 교포다.


하지만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부모 곁을 떠나 일본에서 7년간 유학 생활을 하며 학비와 생활비 대부분을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시어머니가 보내준 김치 국물을 버리기 아까워 김치찌개로 연명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에 비해 나는 결혼 전까지 35년 동안 부모 집에서 세탁, 요리, 가끔 용돈까지 받으며 살았다. 검소한 사람이 큰 기부를 하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남편은 일본에 있을 때도 매주 빠짐없이 교회에 다녔다. 내일의 생활비조차 막막한 상황에서 학기마다 학비를 내는 것이 한계에 다다랐고, 유학을 포기하려던 바로 그때 교회에서 전화가 왔다. “교회 청소 아르바이트를 부탁해도 될까요?” 보수도 나쁘지 않았고, 필요하면 손님용 방에서 숙박도 가능했다는 좋은 조건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어질 때마다 기도하면 이상하게도 장학금이나 아르바이트 제안이 들어오고, 논문 번역을 도와줄 협력자가 타이밍 좋게 나타났다. 그렇게 결국 대학원을 무사히 졸업하고 취업까지 했다는 이야기다.

남편은 가장 힘들었던 시절,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때 일어났던 수많은 ‘기적’을 내게 들려주었다. “아, 멋지네”라고 순순히 믿을 수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우연이 겹칠 수도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을 다 신의 덕분으로 돌리는 건 신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런 의심 어린 시선 속에서 신혼 초에는 기부 문제로 냉전 상태가 이어졌다. 위기였지만, 어딘가 낙관적인 나날이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옆에서 남편을 보다 보니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아이를 너무 심하게 혼냈을 때, 부부싸움 후에 남편은 혼자 조용히 방에 들어가 기도한다. ‘다락방’이라고 멋대로 붙인 종이가 붙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아 몰래 들여다보면 대개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고 있다. 그리고 어느새 문제가 ‘툭’ 하고 해결되거나, 부족했던 것이 채워진다. 우연이 겹쳤다고 하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이렇게 남편은 가끔 신의 손으로 위기를 빠져나간다.


기억상실급 망각과 탈모 예방을 위한 지출은 나의 오기를 자극한다. 기부를 좋아하는 검소한 사람이라는 서로 모순된 성질은 나를 놀라게 한다. 무슨 일이 있으면 기도하는 모습은 나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유니세프를 포함한 여러 기부처, 월급의 10퍼센트, 지금 거기에다가 탈북민을 돕는 교회와 학교까지 추가하는 남편을 나는 날이 갈수록 더 좋아하게 되었다.


돈은 많지만 싫은 사람이 옆에 있는 것보다, 돈은 없어도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게 낫다.


나의 노후는, 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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