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를 찾는 할머니들

재일 교포 3세 케어매니저가 만난 1세 들의 삶

by 요카


“아이라― 아이라― 아이라―는 어디 있니? 아이라― 배고프대, 아이라― 어디 있어?”


오 할머니는 늘 앉아 있던 자리에서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아기 인형을 안고 있었다. 때로는 거칠게 쓰다듬고, 들어 올렸다가, 책상 위에 내리치기도 했다. 아기 인형은 옷도 입지 않았고, 머리카락은 오래 쓴 빗자루처럼 부스스했으며 한쪽 눈알이 없었다. “자식들은 다 어른이 됐는데도 늘 아들들 걱정만 하세요.” 직원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치매가 꽤 진행된 오 할머니와 꼭 닮은 얼굴의 장남은 매일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는 반찬을 올린 숟가락을 1.5배속쯤 되는 속도로 할머니의 입으로 가져갔다. 숟가락이 다가오면 할머니는 새끼 새처럼 입을 크게 벌려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말끔히 먹어 치웠다. 그 두 사람의 완벽한 호흡에 나는 늘 압도되곤 했다.

식사가 끝나면 장남은 반드시 500ml 물통에 가득 담긴 ‘수제 특제 채소 주스’를 할머니에게 먹였다. 나는 속으로 “저렇게 많이 드시고 또 마시니까 통통하신 거구나” 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 나는 무릎을 꿇고 오 할머니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할머니, 아기 인형 귀엽네요” 하고 말을 걸어 보았다. 반응은 없었다. 그저 “아이라― 아이라― 아이라―”를 외치며 인형을 마구 흔들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내 거야, 내 거야”라고 말하며 내가 착용하고 있던 목걸이를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놀란 나는 뒷걸음질쳤다. 식사 리레이와 특제 채소 주스 덕분인지, 오 할머니의 악력은 나보다 훨씬 강했다. 아무리 물러서도 목걸이는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내 거야, 내 거야―”라는 고함과 동시에 귀 옆에서 ‘툭’ 하는 소리가 났다. 체인이 끊어진 목걸이를 손에 쥔 채, 오 할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아이라― 아이라―” 하며 인형을 찾기 시작했다.

이것이 ‘고향의 집’ 첫 출근 날, 내가 받은 세례였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 몇 년간, 나는 재일교포를 위한 노인시설 ‘고향의 집’에서 케어매니저 겸 상담원으로 일했다.(※ 7장 참고) 상담원은 기본적으로 접수 창구에 앉아 입소자와 가족들의 상담을 받는 역할이다. 하지만 입장상 시설 돌봄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아야 한다는 이유로 간병 직원으로서 주간 근무와 야간 근무도 맡게 되었다.


1세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니.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내가 바로 1세들의 아이돌이다’ 같은 착각에 빠져 있었지만, 첫날의 세례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담당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액세서리 같은 걸 하고 올 곳이 아니에요. 앞으로는 조심해 주세요.”


남성 입욕 보조 날이었다. 입소자들은 직원들의 “자, 두 팔 들어 주세요.” “허리 들어 올릴게요―”라는 안내에 따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손을 잡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 안에서는 비닐 앞치마를 두른 직원이 비에 젖은 사람처럼 땀을 흘리며 와상 상태의 입소자를 기구에 올려 몸을 씻기고 있었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이성 직원이 입욕 보조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곳에서는 ‘수치심’이라는 감정 자체가 서로에게 금기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나는 목욕을 마치고 의자에 앉아 있던 벌거벗은 김 할아버지에게 “조금만 일어나 주세요”라고 부탁하며 준비해 둔 기저귀를 채웠다. 바지를 올리고, 셔츠와 겉옷을 입혀 방으로 안내하는 직원에게 인계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대부분은 몸 어딘가에 마비가 있었다. 소매 밖에서 손을 넣어 마비된 쪽 팔을 당기면 아픈지 얼굴을 찡그렸다. 그 팔은 묵직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미 서른을 훌쩍 넘겼지만 이성의 하반신을 보지 않은 척하는 데에는 여전히 일종의 각오가 필요했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할아버지라고 생각하자. 아니지, 할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이미 돌아가셨지. 그럼 아빠? 아빠랑 목욕한 건 초등학교 2학년쯤이 마지막이었나? 그래, 집 앞에 있는 너구리 석상이라고 생각하자!” 이런 식이었다.


입욕 보조만이 아니었다. 배변 보조나 와상 환자의 기저귀 교체를 나보다 어린 여성 직원들이 담담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설레면서 동시에 질투를 느꼈다. 이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근성이 필요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에 온몸이 저릿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전직한 후, 처음으로 불안해졌다. ‘나, 여기서 버틸 수 있을까.’

야간 근무는 입소자들과 천천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속마음을 보여 주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괜히 긴장하지 않으려고 편한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밤에 순찰을 돌면, 낮에는 휠체어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박 할머니가 침대에 누운 채 손짓을 하고 있었다. 침대 옆에 의자를 놓고 앉자 “너한테만 특별히 이야기해 줄게”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낮과는 전혀 다른 표정에 놀라며 “무슨 일이세요?”라고 묻자 “내일 딸이 오는데 밥 준비가 안 됐어”라고 했다.(딸이 올 일은 없었다.)


“그건 걱정되시겠네요.” 부정하지 않고 들어 주었다. “제가 준비할 테니까 걱정 말고 주무세요.” “다른 걱정은 없으세요?”라고 묻자, 어릴 적 전투기가 날아와 무서워 도망쳤던 이야기, 친동생이 전쟁에 끌려갔던 이야기, 강물이 시신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는 이야기를 아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마치 논픽션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치매가 진행된 사람들 중에는 배우자나 자식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이렇게 뇌리에 깊이 박힌 먼 과거의 기억만은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다. 특히 1세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전쟁 체험은 언제 들어도 내용이 흔들림 없이 일관되어 있다.

박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흥분 상태가 된 나는 휴식 시간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교대 시간이라는 직원의 말에 깨기 전까지 내가 근무 중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불안할 때는 알람을 맞춰 두세요.” 조용히 주의를 받았다.


서둘러 일어나 아침 준비를 했다. 컵에 차를 따르다 주전자를 통째로 엎질러 버렸다. 이미 바쁜데,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어제까지의 기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는 태풍 속의 우산처럼 아무 쓸모 없는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오전 9시, 주간 근무자에게 인수인계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차에 올랐다. 백미러 속에는 허탈한 눈빛으로 고개를 떨군 서른 살 여자가 있었다.


아들과 나란히 앉아 있으면서도 아들을 찾는 오 할머니, 여성 직원에게 입욕 보조를 받던 김 할아버지, 딸은 오지 않지만 옛이야기는 또렷했던 박 할머니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끊어진 목걸이의 양쪽 끝을 손에 쥐어 보았다. 담당 직원의 어이없다는 표정도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눈가가 뜨거워졌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할머니, 금순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차 시동을 걸고도 한동안 핸들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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