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한 고백

국적과 사랑 사이에서 망설인 시간들

by 요카

남편과 사귀기 전의 이야기다. 재일 교포 1세를 위한 요양원에서 케어매니저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서른네 살의 나에게 태어나 처음으로 맞선 이야기가 불쑥 날아들었다.

요양원 이용자 중에 마쓰다 씨라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그분의 아들 부부가 “우리 아들과 한 번 만나볼 생각은 없어요?”라고 물어온 것이다.

마쓰다 씨는 재일 교포 1세, 그러니 그 손자는 나와 같은 재일 교포 3세라는 말이 된다.


나는 조선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인밖에 없는 환경에서 17년을 살아왔다. 동창들은 조선학교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졸업 후에는 맞선이나 소개를 통해 만난 교포들과 차례차례 결혼해 갔다. 그런 그녀들을 옆에서 보며 파도를 놓쳐버린 나는 바다에 떠 있는 나뭇잎처럼 이리저리 떠다녔다.

합석이나 소개팅 같은 자리에서 “나는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에요”라고 커밍아웃하는 데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찾아오는 어색함과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관계가 내 뿌리 때문인지, 아니면 내 매력 부족 때문인지 끝내 가늠하지 못한 채였다.

일본인 남성과의 만남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결혼이라는 선택지 앞에서는 끝내 발을 내딛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결혼 상대는 같은 교포끼리여야 한다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결혼보다 일이 먼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교포끼리의 맞선”이라는 제안을 받은 순간,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슴이 어쩔 수 없이 두근거렸다. 이제야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 한 번 만나볼게요.” 이렇게 대답한 순간, 내 머릿속에 잠깐 ‘전라도 출신의 스마트한 남자’(10장 참조)의 얼굴이 스쳐 갔다. 하지만 곧바로 억지로 밀어냈다. 아니야 아니야, 말도 안 돼.

그는 ‘진짜’ 한국인이다. 유학이 끝나면 미련 없이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 게다가 밥을 먹기 전에는 항상 기도를 한다. 진지한 사람인 건 틀림없다. 그 모습은 마치 수도승 같았다.

‘기도한다’는 행위는 나에게는 일 년에 한 번, 새해 첫날 신사에서 하는 것에 불과하다. 달라, 너무 달라, 사는 세계가.

그런데도 왜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 걸까. 이렇게까지 과하게 부정하려는 이 위화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는 계속해서 곱씹고 있었다.


한국인 송 씨와 나의 관계는 만난 지 2년이 지나도록 일본어와 한국어를 서로 가르쳐 주는 상담원과 요양보호사 동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재일 교포인 나에게 ‘진짜 한국인’인 그는 동경, 질투, 호기심, 열등감, 부러움, 소외감 같은 여러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게 하는 존재였다.


카페에서 만났을 때 그가 말했다. “요-카 씨, 같이 교회에 가보지 않겠어요?” 순간 당황했다. 데이트 신청인가? 하지만 내용이 내용인 만큼 그렇게 생각하는 건 역시 성급하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 개인의 사랑인지 신의 사랑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송 씨의 속마음을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있으면 가볼게요.”라고 대답했다.


친한 친구 나오짱에게 “나, 교회 가자고 초대받았는데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을 때, 나오짱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기독교 하면 자비에르밖에 생각 안 나는데. 요-카, 자비에르 군이랑 결혼하면 자비에르처럼 살 수 있어?”

“아하하하하!”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그걸 보고 나오짱도 웃었다. 웃는 나오짱을 보며 “꺄하하하!” 나는 몸을 비틀며 더 웃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나오코도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릴 만큼 웃고 있었다.

자비에르의 근엄함과 나의 속세 냄새 가득한 대화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웠다.

아니야 아니야, 말도 안 돼. 역시 그렇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그와 함께 예배당에 앉아 있었다. 이 전개, 스스로 생각해도 웃기다. 하지만, 확인은 해야 했다.

예배가 시작됐다. 모두가 한꺼번에 무언가를 외우듯 읊기 시작해서 나도 따라 했다. 이런 나를 보면 나오짱이 분명 웃을 거라는 얼굴이 떠올라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다음엔 모두가 한꺼번에 기도했다. 나도 질 수 없다는 듯 기도했다. 기도에 이기고 지는 건 없는데 그 순간의 나는 이게 마치 승부처럼 느껴졌다.

이어 모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나도 따라 불렀다. 입만 뻐끔거리며 조심스럽게 옆을 보니 황홀한 표정으로 노래하는 송 씨가 있었다.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됐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늘 체면만 따지며 살아온 나 같은 인간은 이 신성한 공기에 끝내 익숙해질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래, 전도다. 송 씨는 나를 전도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몇 주 뒤, 나는 다시 송 씨와 카페에 앉아 있었다. 일본어 공부도 거의 끝나 가고 이제 슬슬 마무리일까, 시계를 힐끗 보던 그때 송 씨가 물었다.

“요우카 씨, 남자친구 있어요?”

왜 내가 남자친구가 있는지가 궁금한 걸까. 플러팅인가. 지난번 교회에서의 ‘완전한 이질감 사건’을 떠올리면 그렇게 해석하는 건 역시 성급하다.

이 질문이 거리를 좁히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잡담의 연장선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없어요.” 그렇게 말했을 때 가슴이 뛰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로부터 몇 달이 흘렀다. 아무런 진전이 없는 걸 보면 송 씨의 진심은 결국 ‘그냥 세상 이야기’였다는 결론이 된다. 그런데도 왜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었을까. 나에게 관심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남녀 사이에서 흔히 오가는 형식적인 사교 멘트였을까.

혹시 남자친구가 없다는 말을 듣고 이 연상녀가 괜히 오해할까 봐, 그걸 막기 위한 방어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괜히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맞선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부모님도 무척 기뻐하셨다. 마쓰다 씨 아들 부부의 집에 초대받아 그곳에서 만난 아들, 사토루 씨도 부모님의 권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송 씨처럼 세 살 연하였다. 남자라기보다는 동생 같은 인상이었지만 그렇다고 거절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누나 둘이 있는 장남이라는 점도, 커밍아웃이 필요 없는 오랜만의 연애라는 사실도 나를 은근히 들뜨게 만들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송 씨와의 일본어 공부 카페가 점점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해야 할까, 말하지 말아야 할까.

하지만 묻지도 않았는데 “남자친구 생겼어요”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무엇보다 사토루 씨에게도 제대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공부 모임이라 해도,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단둘이 카페에서 만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결국 결심했다. 송 씨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말하자고. 그러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송 씨는 늘 그렇듯 일본어가 빼곡히 적힌 노트를 펼쳐 놓고 내가 말하는 일본어를 쉐도잉하고 있었다.

오늘이야말로 말하자.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놀랄까. 아니, 지금까지의 여러 장면을 차분히 되짚어 보면 나는 그의 연애 대상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바로 말하면 될 일을, 나는 평소엔 강한 척하면서도 이런 순간만 되면 유난히 겁을 먹는다. 한숨 돌리듯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말을 꺼내려던 바로 그때, 송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요-카 씨, 남자친구 생겼어요?” 나이스 타이밍!이게 신의 힘인가. 그는 마치 내 마음속을 들여다본 사람처럼 말했다.

“아, 네. 생겼어요.”

이제 됐다. 이걸로 깔끔하다. 이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렇군요.” 송 씨의 표정은 무표정이었다. 왜 또다시 내가 남자친구가 생겼는지를 물은 걸까. 정말로 나에게 관심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역시 그냥 잡담의 연장이었을까.

더 이상 ‘송 씨의 진심’을 파고들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를 말렸다.


“송 씨는 여자친구 없어요?” 내가 그에게 그렇게 물은 건 처음이었다. “없어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는 송 씨에게 나는 괜히 말을 덧붙였다.

“얼른 예쁜 여자친구 소개받으세요. 송 씨면 금방 생길 거예요.” 어색한 공기를 메우듯 나는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에게는 큰 오지랖일 말들을 줄줄 늘어놓았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않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눌러 담았다. 괜찮다. 이걸로 됐다. 그렇게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차를 몰았다.


다음 날, 송 씨에게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마지막 인사일까. 굳이 이렇게까지 정중한 사람이라니. 사람은 역시 진지한 게 나쁘지 않다.

가볍게 식사를 하고 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대로 돌아가면 그냥 데이트가 되어 버린다.

아직 “고마웠어요” 같은 작별 인사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 나오는 걸까.


헤어지기 직전, 그가 말했다.


“요-카 씨, 좋아합니다. 사귀어 주세요.”


나는 처음으로 그의 얼굴이 빨개진 것을 보았다.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에게 고백하는 그 ‘배짱’은, 부모의 권유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박함’을 이겼다.

한국인이라서일까, 신을 믿어서 두려울 게 없는 걸까. 평소에는 조용한 남편은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늘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파인 플레이를 해낸다.

이 지나치게 아슬아슬한 부분이 신중한 나를 답답하게 만들면서도 뜨겁게 한다.


이날로부터 3년 뒤, 우리는 결혼해 한국에서 첫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런 미래를, 이때의 두 사람은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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