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며 알게 된 ‘여름방학 숙제 같은’ 시간 감각
한국인 연수생을 담당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일본인과 분명히 다른 것, 그것은 바로 ‘아슬아슬하게 제시간에 맞추는 속도감’이다.
노인요양시설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던 나는 한국의 사회복지학과 대학생 연수생들을 맡게 되었다.
어느 날, 시설장으로부터 연수생들과 함께 창고 정리를 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당시 한국인 연수생은 남자 둘, 여자 둘, 총 네 명이었다.
나는 미리 네 사람에게 점심을 먹고 2시에 모여 달라고 전해 두었다.
그런데 1시 55분에 창고에 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2시가 되어도 네 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2시 15분쯤부터 한 명, 또 한 명, 아무 일 없다는 듯 나타나 잡담을 하고 있었다.
내 전달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그들의 당당한 태도에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아니, 분명히 2시까지 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늦었는데도 사과를 하지 않는 걸까.
왜 이렇게 태연한 걸까.
당황했지만, 속 좁은 여자라고 보일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 나도 서른을 넘어서 이제야 지시하는 입장이 되었구나.
중간관리자라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네,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2시 30분, 드디어 네 명이 모두 모였다.
나는 설명했다.
“여기 있는 자료를 종류별로 나눠서 저쪽 방으로 옮겨 주세요. 3시 30분까지 끝냅시다.”
박스 서른 개 정도 되는 자료였기에,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해가 질 상황이었다.
그래서 시간제한을 둔 것이다.
나는 자료를 꺼내기 쉽게 책상을 정리하고, 작업하기 좋게 의자를 배치하고 있었는데
연수생들은 휴대폰을 확인하거나 계속 잡담을 하고 있었다.
‘어라, 내 한국어가 서툴러서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걸까?’
불안해져 다시 한번 말했다.
“여기 있는 자료를 한 시간 안에 분류해서 옮겨야 합니다.”
그러자 네 명은 밝게 “네네”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 이해는 했구나.
그런데 왜 안 움직이지?
한 명은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고 있고
한 명은 유리창을 거울삼아 머리 스타일을 계속 고치고 있다.
나머지 여자 둘은 킥킥 웃으며 수다 중이다.
‘어… 어…’
이 대범함은 뭐지?
의욕이 없는 건가? 아니면 이 느긋함은 뭘까?
혹시, 이게 바로 문화 충격이라는 건가.
이 상황에서는 내가 연수생이고, 연수생들이 책임자인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역할 전도에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했지만
속에서는 머리를 감싸 쥐고 허둥대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이런 조마조마한 시간이 15분쯤 흘렀을까.
나 스스로가 너무 소심하게 느껴져 한숨을 쉬고 있던 그때,
휴대폰을 만지던 남자 연수생 한 명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박스에 손을 뻗은 순간,
“이거부터 할까?”
“아니, 이게 먼저야.”
그게 그들의 시작 신호였다.
“내가 이거 할 테니까, 너는 저걸 놔줄래?”
“이건 힘이 드니까 내가 옮길게, 이건 네가 해.”
어느새 네 명은 모여서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눴다.
자기 자리가 정해지자, 각자 효율을 고민하며 망설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스는 소리를 내며 차례차례 비어 갔다.
결국 그날 창고 정리는 제시간에 끝났다.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느린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앞질러 가는 속도.
이것이 내가 느낀 ‘아슬아슬하게 제시간에 맞추는 속도감’이다.
그 모습은 여름방학 숙제를 마지막 날 밤에 몰아서 끝내던 그 감각과 닮았다.
이 감각 덕분인가?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오히려 효율을 높이려는, 좋게도 나쁘게도 ‘파인 플레이’가 나온다.
가령 한 장씩 가위로 자르던 종이를 다섯 장씩 겹쳐 자르거나
자료가 든 박스를 한꺼번에 옮기기 위해 대차를 찾아오는 식이다.
내가 떠올리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볼 때면, 왠지 모르게 진 기분이 들었다.
이 ‘여름방학 숙제 같은 속도감’은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서 나이를 먹어 가면서
점점 더 확고한 것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한국에서 처음 이사를 했을 때의 일이다.
일본에서는 미리 상자가 배달되고,
이사 당일에는 대부분의 짐이 이미 포장되어 있어야 한다.
포장용 뽁뽁이나 신문지도 함께 준비된다.
“상자는 어디 있어?” 하고 내가 묻자
남편은
“보이기 싫은 속옷이나 귀중품만 캐리어에 넣어 두면 돼”라고 말했다.
그 여유로운 태도에 속으로
‘말도 안 돼’ 하고 태클을 걸며
“접시 같은 건 신문지로 감싸 두지 않아도 돼?” 하고 다시 물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그럴 필요 없어.”
“아니, 그게 말이 돼?”
이런 대화가 열 번쯤 오간 끝에, 결국 이사 당일이 왔다.
어제까지의 생활감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집에서 아이들은 놀고 있었다.
이른 아침, 한국에서 알게 된 엄마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이사잖아. 애들 우리 집에서 맡아 줄게. 요카 씨는 이사에 집중하면 되잖아.”
일본에 비해, 옷 갈아입듯 이사를 하는 한국 사람들이라서일까.
이런 순간에 아이를 맡아 주는 연계 플레이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걸까.
그 배려에 나는 깊이 감동했다.
아이들이 엄마 친구 집으로 간 뒤, 초인종이 울렸다.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은 남편과 나에게 인사를 마치기도 전에
“시작합니다!” 하며 훌쩍 들어왔다.
‘인사’나 ‘사전 미팅’ 같은 말은 이 업계에는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의 태도에서 모든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알록달록한 대형 바구니에 생활용품을 마구 담아 넣는다.
입실에서 작업 시작까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낮잠 자던 소방관이 신고를 듣고
줄을 타고 내려와 현장에 배치되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일본에서 고층 빌딩 화재 중계에서나 보던 긴 사다리차의 끝이 창문에 고정된다.
(집은 21층이었다.)
딸아이의 인형을 흔들며 바구니들이 차례차례 내려간다.
아까까지 여유를 부리던 남편은
갑자기 테키파키 움직이며
“이건 먼저, 저건 나중” 하고 망설임 없이 지시를 내린다.
평소에는 집안일이나 육아에 거의 입을 대지 않던 남편이
현장 감독이 되어 있었다.
무거운 가구는 옮기면서 배치를 정하고
부족한 상자는 중간에 조달한다.
남편, 제법 하는데?
참고로, 평소 잘난 척하던 나는 이때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계획적으로 준비하는 버릇 탓에 순발력이 부족한 것이다.
바구니는 순식간에 가득 차고 조금 전까지 생활감 넘치던 집은
소리를 내며 이사 모드로 바뀌어 갔다.
이런 군더더기 없는 연동은 새 집에 도착해서도
마치 클래식 협주곡처럼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저녁이 되자 모든 짐은 제자리를 찾았고
최소한의 생활은 이미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심장이 몇 번은 멎는 줄 알았던 하루였다.
지금, 이를 닦고 있는 남편의 휴대폰이 울린다.
아까 불렀던 택시가 도착한 모양이다.
조마조마한 건 역시 나뿐이다.
남편은 말한다.
“네네, 지금 가고 있습니다.”
“아니. 넌 지금 이를 닦고 있잖아.”
나는 오늘도 태클을 건다.
하지만 눈에 선하다.
“기사님, 3시 KTX 타야 하는데 급하게 부탁드려요.”
뻔뻔하게 말하는 남편.
“어렵겠는데요~” 하면서도
말없이 액셀을 밟아
드라마 같은 카체이스를 펼치는 기사님.
남편은, 아마도, 역시 KTX에 제시간에 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