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이 주는 위로

사라질 줄 알면서도

by Yanggang

보통 성인이 되거나 운전을 하게 되면

눈이 싫어진다고 한다.
미끄럽고 위험해

하루를 망쳐버리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눈이 좋다.
눈이 내릴 때 사방이 조용해지는

고요한분위기를 좋아하고
평범한 하루가 잠시 특별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이 오는 날이면

가능한 밖으로 나가 눈을 즐기곤 했다.

어릴 적부터 나는

활동적으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런 성향을 고려해
집에는 항상 썰매가 있었고,

눈이 오면 열심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썰매를 타다 지루해질 즈음이면

자연스럽게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완성된 눈사람은 썰매에 태워
눈이 더 많이 쌓인 곳으로 옮기며,
모르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눈사람을 키워갔던 추억이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스키장갑을 끼고 밖으로 나갔다.
혼자서 3단 눈사람을 만들며 시간을 보냈는데,
꾸미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어

밋밋한 모습으로 남겨두곤 했다.
그러면 모르는 누군가 오가며

눈사람을 꾸며주었는데
내가 만든 눈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손을 거쳐
점점 멋있어지는 과정이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눈사람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만들지 않았더라도,
길가에서 우연히 눈사람을 마주치면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눈사람을 만들던 추억을 되새겨주기도 했고
그 눈사람을 만든 사람의 설렘과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이 언제나
기쁜 느낌만을 남겨준 것은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많이 지치고 아팠던 시기에도
이상하리만큼 눈은 늘 쌓여 있었다.

괴로운 날이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처럼
눈 위에는 수많은 발자국이 남겨졌다.
그 흔적들을 바라보며
내 마음이 얼마나 심란한 상태인지
한번 더 확인하곤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눈을 맨손으로 쥐어보면
차가운 감각이 손끝까지 또렷하게 전해졌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심장이 뛰고 있고, 감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말없이 나를 붙잡아 주었다.
그렇게 눈은, 그리고 눈사람은
나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기쁠 때는 장갑을 끼고 큰 눈사람을 만들었다면
슬플 때는 맨손으로 그날의 마음만큼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 녹아 사라지고 있는

눈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안에 남아있던 슬픔과 아픔도

함께 녹아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눈이 오면 잠시 멈춰 서서
눈사람을 만들어본다.
사라질 걸 알면서도 만들어지는 그 존재가
특별하고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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