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되지 않은 시간들
연말이나 연초가 되면,
나는 연례행사처럼 대청소를 한다.
휴대폰 앨범 속 사진을 정리하고,
재정 상태를 점검하고,
구석진 서랍 속 물건들을 모두 꺼내 청소한다.
새해를 맞이한다기보다,
지난 시간을 다시 정리하는 시간에 가깝다.
어릴 적부터 정리정돈을 중시하던
부모님의 영향도 있겠지만,
단순한 반복 속에서 생기는 집중력과,
청소 뒤의 후련함 때문에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옷은 각이 잡혀 있어야 하는 성격 때문에
엄마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면,
나의 옷장은 은근한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고
물건들은 버릴 것과 사용할 것을 나누어
유통기한이 가까운 것들은 앞으로 꺼내고,
올해 안에 사용해야 할 것과
새로 구매해야 할 것들을 적어두면
새로운 목표가 생기기도 했다.
버리기 아까운 것들은
당근에 올리거나 기부로 묶어 보내면
뿌듯함은 늘 두 배로 돌아왔다.
이러한 청소는 계절이 바뀔 때,
기부할 물건이 모였을 때,
친구를 초대하기 전이나
갑자기 시간이 남았을 때 진행한다.
가끔은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하루 밤 재워줬다는 명목으로 고맙다며 대청소를 도와주기도 했다.
친구의 물건들을 구경하고,
안 쓰는 물건을 하나씩 받아오는
그 시간은 나에게 놀이가 된다.
친구에게는 정리가 되고,
나에게는 재미가 남는, 서로에게 이득인 시간이다.
하지만, 나도 방이 정리되지 않은 날들이 있다.
옷이 의자 위에 걸려 있고,
책상 위에는 정리되지 못한 물건들이 쌓인 채 하루가 끝나는 날.
그럴 때면 나는,
지금의 내가 꽤 엉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청소를 하지 못한 날이 아니라,
청소할 여유조차 없는 상태라는 신호다.
정리되지 않은 방은 게으름의 흔적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풍경이다.
그래서 나에게 청소란,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전 가장 먼저 하는 준비였다.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나는,
정리정돈이 되어 있지 않으면 쉽게 집중하지 못한다.
심심할 때나 정신적으로 힘들 때도 마찬가지다.
청소는 생각보다 많은 도움을 준다.
사진은 날짜와 여행별로 나누어 정리하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따로 골라두는 일처럼,
나에게 정리는 하나의 완결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기억하고 싶은 것은 남겨두는 일.
그것은 비워내는 동시에 쌓아 올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언젠가 쓰겠지 하며 모아 둔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바쁘게 살았구나 싶다가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들은
먼지만 털어 다시 제자리에 넣어 둔다.
정리가 안 됐다는 건,
그 물건에 대한 마음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다.
미련이거나, 욕심이거나,
아니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먼저 버림으로써 마음을 다잡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있다면
조금 더 들여다보고, 기다려주는것을 선택했다.
충분히 바라본 뒤에야
비로소 스스로 놓을 수 있으니까.
어쩌면 나는 물건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천천히 보내는 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