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오랜 친구에게.

by Yanggang

안녕, 나의 오랜 친구야.

너무 오랜만에 편지하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문득 전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 이렇게 펜을 들었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이런 장면이 있었지.
로또 당첨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남편이
오랜 친구를 찾아가는 에피소드.

옷 장사를 하던 친구에게
비싼 옷을 한벌 사 오지만,
터무니없이 비싸기만 한 싸구려 옷이었고
아내는 분노하며 그를 비난해.
“이런 사기꾼 같은 친구는 친구도 아니다!”라고

그러다, 부부가 가장 힘든 시절
본인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도와주고 갔던 친구,
천사 같은 친구가 생각난다며 안부를 묻는데
남편의 답변은 뜻밖이었어.

“그 친구가, 이 친구야”

인생이란 게 그렇더라고.
도움을 받았던 친구에게 도움주기도 하고,
천사 같은 친구가 어느 순간 사기꾼이 되기도 하는 거.

그러다 자연스럽게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네가 떠올랐어.
너는 유난히 친구를 아끼는 아이였잖아.

네가 예전에 말했지.
친구란 또 다른 가족같이
실수투성이였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같이 자라나는 사이라고.

하지만, 때로는 서로를 위해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다고.

늘 가까이 있고,

서로의 치부를 다 아는 것만이 친구는 아니라고.
오랜 시간을 가까이 있는 것 만이 우정의 증거가 아니라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믿어주고,
언제나 내 편일 거라는 확신을 주는 사람.
그게 친구인 것 같다고 말이야.

그 믿음이란, 상황과 소문에 휩쓸리지 않고
조용히 응원하고 믿어주며 함께 버텨주는 사람이라고.

아, 이 말도 기억나?
한참 철없던 시절, 삶이 너무 힘들다던 친구에게
네가 해주었던 말.

정말 견디기 힘들어서 그러면 안 되지만
나쁜 생각이 들 때,
딱 한 번만 너를 떠올려 달라고.
그만큼만 네가
친구의 하루를 붙잡아 주는
버팀목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아주 조금만이라도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그때는, 서로의 짐이 되어주는 것이
친구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지.

그런데 요즘은
그 믿음이 틀렸던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제는 그 삶의 무게가
치기 어린 무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

그래서 나는, 친구의 어떤 선택과 결정도
판단하지 않고 이해해 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어졌어.

함께 삶을 떠받쳐주는 친구가 아니라,
잠시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
무게를 줄여줄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었어.

그런데 있잖아.
나는 주변 친구들을 참 열심히 챙기면서도
정작 가장 오랜 친구인 너에게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너는 늘 열심히 살아가니까.
항상 잘 해내고 있다고 믿었으니까.
나는 그저 조용히 응원하고 믿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착각했어.

그 믿음이 사실은
가장 쉬운 방식의 방관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네가 너무 괴로울 때,
나는 그 이유조차 알지 못했어.
어떤 것이 너를

그토록 벼랑 끝으로 내몰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잘 버티겠지’ 생각하며
옆에만 있어주었던 것 같아.

그래서, 이제는 너에게 집중해 보려고 해.

무엇이 힘들었는지,
무엇이 너를 괴롭게 했는지.
그럴 때 무엇이 너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지.
천천히 묻고, 같이 해보고, 함께 연습하면서
조금 덜 아프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 보자고 이 편지를 쓰게 되었어.

가장 오랜 친구는 너였는데,

내가 너무 무심했어.
믿는다는 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지난날들을 사과할게.

가장 네 편이 되어주어야 했던 내가,
정작 네 편이 되어주지 못했던 시절을

조심스럽게 돌아보며
앞으로는 정말 잘해볼게.

Dear. 단 한시도 떨어져 지내지 않았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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