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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a Oct 01. 2019

데모데이까지 앞으로 9일

2019년 5월의 기록


AM 8:00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더듬어 메일함을 열어본다. 역시나, 요청한 자료는 오지 않았다. 데모데이가 이제 딱 9일 남았다. 투자자, 기업 관계자, 기자 등 업계 사람 100여 명에게 우리가 투자한 스타트업의 현재와 미래를 선보이는 자리다. 데모데이에 출전하는 스타트업 4팀은 후속투자유치, 기업과의 파트너쉽, 인지도 확보 같은 각자의 절실함이 있다. 절실함은 하늘을 찌를 만큼 높지만, 그 절실함이 일정 준수로 이어지진 않는다. 벌써 1주 전에 나왔어야 할 발표자료 초안은 4팀 중 2팀이 아직 깜깜무소식이다. 일정 딜레이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니, 이제는 예정된 협박 모드로 들어간다. 메일 대신 라인 메시지를 보낸다. 오늘 중으로 내놓으세요. 그리고 우리 남은 9일 가열하게 달려보아요.

AM 9:00 스타트업들이 자료를 만드는 동안, 나도 우리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오늘은 오프닝 키메시지와 리플렛 콘텐츠를 마쳐야 한다. 특히 리플렛은 오늘 발주해야만 일정에 맞춰 출력할 수 있단다. 예년보다 출력 및 제작 시간이 2배 이상 걸리는 게 이상해 몇 번이나 확인을 요청했으나, 오늘 넘겨야 한단다. 그럼 해야지 뭐.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사무실로!


AM 10:00 힘차게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부팅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응? 다시 비밀번호 입력창이 뜬다. 입력하니 또 입력창이 뜨고, 입력하니 또 뜨고, 무한 루프. 어째 기분이 쌔하다. 업무기기 지원부서에 바로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 이거저거 해보고, 안 되면 OS 재설치를 해야 한단다. 안 그래도 어제 같은 현상을 겪은 사람이 있는데 결국 OS를 재설치했다고 한다. 이거? 안 된다. 저거? 역시 안 된다. 어제 초안을 잡아둔 리플렛 시안은 이 컴퓨터 안에만 존재한다. 무조건 되살려야 한다. 다시 처음부터 만들려면 일러스트레이터나 폰트 설치는 장난이고, 디자인과 문구도 다시 0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조건, 무조건 되살려야 한다.

AM 11:00 노트북을 품에 안은 채, 택시를 타고 그팩으로 달려간다. 창밖 날씨는 좋고, 그팩은 멀기만 하다. 사람 마음도 모르고, 엘리베이터조차 느리다.

PM 12:00 겨우 도착한 업무지원실. 백업을 부르짖는 내게 천사가 강림하셨다. 백업&재설치 작업이 끝나면, 강남 사무실에서 퀵으로 컴터를 받기로 했다. 점심을 대충 먹고, 다시 강남으로 출발.

PM 2:00 오프닝 키메시지 논의 미팅을 시작해야 하는데, 미팅 참석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논의할 사람이 없다. 혼자 머리를 싸매고 이거저거 그려보기 시작한다.

PM 3:00 발표자료 초안이 나온 2팀 중 한 팀과의 리허설 시간. 불안했던 요소들이 하나같이 역시나 삐걱댄다. 수정해야 할 숙제가 한가득 나오자, 스타트업은 자신감을 잃어간다. 대표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내게도 사골 국물이 필요하다.

PM 5:00 노트북이 도착했다. 일러스트레이터, 폰트를 빛의 속도로 설치하고 v0.5 파일을 열어본다. 다행히 제대로 열린다. 문구를 수정하고, 전체 레이아웃도 다듬어 v1.0 파일을 완성한다. 이거 얼른 출력 넘겨줘요.

PM 6:00 인쇄업체와 통화하고 들어온 멤버가 말한다. "인쇄업체 팀장님이 날짜를 착각하셨대요. 리플렛은 이번 주 중으로만 줘도 된다고.." 온갖 미스컴과 삽질이 벌어지는 걸 보니, 진짜 디데이가 얼마 안 남긴 했구나. 으허허허허~

PM 7:00 함흥차사인 발표자료 초안 2건 중 하나가 드디어 도착했다. 역시나 거의 진도가 나가지 않은 개요 수준이다. 무한 디벨롭 루프가 예상되니, 피드백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 메모를 열고, 자료 리뷰 시작

PM 9:00 발표자료가 1건 더 왔다.

PM 11:00 두 번째 자료 파일을 열었다. 일단 메일로 수정사항을 잔뜩 보내놓고, 내일 오전 화상미팅을 잡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사무실 불을 끄고 나오는데, 우리 로고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우리 프로젝트가 출발한지 5년째 되는 날이다. 내가 합류한 것도 5년 전 오늘이다. 5년이 대체 어떻게 흘러온 건지 도통 믿기지 않다가, 문득 알아챘다. 오늘처럼 이렇게 5년이 흘렀구나. 1시간만 있으면, 데모데이가 8일 앞으로 다가온다. 조마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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