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신규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위험에 노출되는 경계선은 가혹하게도 사람을 가린다. 난 올해 대부분을 재택근무 중이고, 사회적 거리 두기 2.5 단계와 3단계의 차이를 아마도 직접 느끼진 못할 거다. 그건 내가 일정한 경계선 내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누리는 안전일 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그 정도의 안전망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사람마다 위험에 노출되는 정도가 다르고,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의 수준이 다르다. 그러니 '위험하다'고 느끼는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잊지 말아야 할 건, 내 기준이 모두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계선을 오가는 사람들이 있고, 경계선 밖에 머물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3단계 조치는 너무나 무겁고 무섭다.
이 정도로 큰 사회적 충격은 극복한다 해서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전환점이 되고, 이렇게 바뀐(혹은 가속화된) 흐름은 좀처럼 바꿀 수 없다. IMF가 그랬고, 세월호 또한 그럴 것이다. 내년 이 맘때 면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뭔가가 잘못된 채로 돌이킬 수 없이 질주하고 있을까. 새로운 대안을 실현하고 있을까, 그 대안은 과연 해답일까.
거창하진 않지만, 이랬으면 좋겠다고 가끔 그려보는 세상이 있다. 적어도 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모두가 최소한의 안전망은 공유했으면 한다. 나와 다른 목소리가 있다는 걸 알고, 가끔은 그게 무슨 소린지 들어보는 여유 정도는 가지면 좋겠다. 조금 부족하고, 많이 다르더라도 함께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한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호명되는 이 시간은 과연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그냥 희망만으로는 부족한데, 무엇을 더해야 할지 몰라 이따금씩 답답한 요즘이었다.
그래서 두 권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건 그동안 뭔가가 잘못 굴러왔다는 반증이다. 진단은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시장과 자본에 지나치게 매몰된 사회 구조, 환경 파괴, 끊임없는 우열 경쟁... 등등. 도대체 어디까지 굴러갈까 싶었는데 이 지경이 되고 나니 (그동안 외면하고 소홀히 여겨왔던) 문제와 대면할 수밖에 없다. 억지로 멈춰 선 지금이야말로, 잘못된 뭔가를 찾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일지 모른다.
진단이 비슷하니, 나아가야 할 방향성도 유사하다. 하지만 실현 방법은 여전히 모호하다.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예측은 많지만, 공감 가는 시나리오는 없다.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거나, 지나치게 많은 가정을 집어넣는다. 짧은 분량의 한계도 크겠지만, 그래도 '석학' 13명의 통찰인 걸 생각하면 참 공허하다.
그러다 문득, 원래 석학의 역할은 진단하고 (모두가 아는) 방향을 환기하는 것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현은 결국 각자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속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하는 거 아닐까. 주목하는 문제는 제각각 다를테고, 솔루션도 상충하고 어긋날 거다. 그런 사소한 행동들이(혹은 행동하지 않음이) 모이고 모여 큰 방향을 이루고, 어느새 현실이 되는 게 아닐까.
내 삶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놓치지 말아야지 싶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닐 거다. 그렇게 가다가 마주하는 곳이, 그것이 더 나은 세상이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p.42 생태와 인간 "바이러스 3~5년마다 창궐한다" / 최재천
모든 동물 중에서 이 단계를 넘어선 유일한 동물이 우리 인간이에요. 아예 모르는 사람들과도 그냥 지낼 수 있는. 그런데 앞으로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일들이 계속 잦아지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가는 작업이 필요해질지도 모릅니다. 슬픈 얘기지만요.
(중략)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시절이 오면, 누구와는 가까이할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을 일상의 행동 패턴으로 지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62 경제의 재편 "1929년과 같은 대공황 온다" / 장하준
집에서 하는 가사노동부터 의료, 기본 서비스 등에 종사하는 분들이 없으면, 즉 이러한 돌봄경제가 없으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경제라는 것이 존재할 수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다 서로 얽혀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서로 돕고 안전을 지켜주지 않으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거죠. 코로나19 사태를 기회로 이런 인식들이 점점 퍼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좀 더 연대가 강화되는 쪽으로 사회가 재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p.116 새로운 체제 " 지구 자본주의 떠받들던 4개의 기둥 모두 무너져" / 홍기빈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미래를 대하는 방식은 '결단'입니다. 우리가 이 상황에서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고 어떤 식의 미래를 우리가 만들고 싶은가? 이처럼 우리의 이성과 양심으로 되돌아가서 어떤 미래를 만들지, 그 그림을 우리 스스로 결단하고 만들어야 합니다.
p.147 세계관의 전복 "자본주의가 무너지거나, 자본주의가 인간화되거나" / 김누리
그래서 제가 보기에 현재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봅니다.
(중략) 첫 번째는 자본주의를 폐기하거나, 두 번째는 자본주의를 인간화하는 겁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자본주의가 작동한다면 저는 22세기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p.167 행복의 척도 "사회가 강요한 원트로는 버텨낼 수 없다" / 김경일
심리학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불안은 사실을 알려달라는 감정이고, 분노는 진실을 말하라는 감정이다.
(중략) 광우병 사태 때 시민들이 분노해서 광장으로 나갔습니다. 우리가 왜 이걸 먹어야 하는지 진실을 얘기하라는 거였어요. 미국에서 수입한 쇠고기가 신체에 해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사실을 몰라서 나간 게 아니라는 겁니다.
p.181 행복의 척도 "사회가 강요한 원트로는 버텨낼 수 없다" / 김경일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남의 인정이나 남의 감탄을 받을 기회가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중략) 예전에는 외로움을 못 이겨서 관계로 도피하는 삶을 살다 보니 남의 인정, 남의 감탄에 목을 맸었는데요. 그러던 사람들이 갑자기 '어라, 내 감탄도 소중하구나, 중요해지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거죠.
p.10 들어가며 / 유발 하라리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반드시 스스로에게 꿈을 갖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지금은 한참 전에 이뤄야 했던 개혁을 감행할 수 있는 시간이며, 불리한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올해 말이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 속에서 살 겁니다. 그것이 더 나은 세상이기를 희망합니다.
그것이 더 나은 세상이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