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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anmary Feb 27. 2024

엄마, 아빠랑 여행을 다닌다고요?

얼마나 쉬운데요. 가성비 만점의 효녀놀

혼자 하는 여행이 제일 즐겁고 행복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17년 회사를 다녔던 이유는 어쩌면 매년 한 번씩 혼자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돈을 벌어 떠납니다.

아니 떠나기 위해 돈을 벌었습니다.


혼자 프랑스 파리에 갔었습니다.

혼자 체코 프라하에도 갔었습니다.

혼자 미국에도 갔었습니다.

혼자 베트남 나트랑도, 필리핀 세부도, 보라카이 등의 휴양지도 다녀왔습니다.

 

물론, 어쩌다 가끔 양심에 찔릴 때 즈음에는, 엄마아빠와 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은 상상만 해도 어렵고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챙겨야 할까?'

'나 사는 것도 힘든데 무슨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면 많이 싸운다던데'

챙김을 받던 어린아이에서 이제는 부모님을 챙겨야 할 것 같은 나이가 되니, 어쩐지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많이 아팠습니다.

2개의 반려암은 제게 3번의 수술과 5번의 항암치료와 4번의 방사선치료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암 생존자입니다.

어느 정도 살만해지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것은 그저 멀게만 느껴지는 겨우 41살의 저는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남은 인생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생각하니,  그냥 지나가는 이 시간들이 너무 아깝습니다.


그리고 문득 엄마와 아빠를 바라봅니다.

엄마와 아빠는 제가 아픈 시간 동안 같이 아팠던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나 생기가 넘치고,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았던 엄마와 아빠는 어느새 누가 봐도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70대 어르신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엄마, 아빠의 인생도 유한하다는 않구나. 우리는 과연 얼마나 더 함께일 수 있을까?'


혼자 하는 여행이 더 이상 즐겁고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혼자 하는 여행보다 엄마, 아빠와의 여행이 떠나고 싶어 졌습니다.

혹시라도 우리 셋 중 누군가가 먼저 떠나게 되더라도,

남은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떠나고 나니 좋습니다.

함께 하니 좋습니다.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일은, 엄마, 아빠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70 평생 이렇게 좋은 구경은 처음이야"

어딜 가도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분명 지난 제주 여행에서도 이렇게 말했는데, 지난 양양 여행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는 꽤나 멋진 여행메이트입니다.

"여긴 별로야"라고 말하기보다는 "여긴 이래서 좋네"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그녀 덕분에,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아빠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딸! 여보! 여기 서봐 아빠가 사직 찍어 줄게"

아빠는 스마트폰이 필요 없다고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전화만 걸고 받으면 되지 그런 물건을 어디에 쓰냐고 했습니다.

아빠는 사진을 참 바보처럼 찍던 사람이었습니다.

구도는 어디 갔는지 모르고, 다리는 잘리기 일쑤

하지만 최신형 스마트폰과 함께 아빠는 사진작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진을 못 찍을 수 있을까 싶던 아빠는 이제

앞장서서 걸으며 어디에서 어떤 구도로 찍으면 딸과 아내가 예쁘게 나올까는 고민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인사를 받습니다.

"부모님이랑 딸이랑 같이 온 거예요? 너무 보기 좋아요"


생각보다 자식들과 함께 여행을 오는 어르신들은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친구들과 함께입니다.


"딸이 모시고 온 거예요? 세 분 같이 사진 찍어드릴게요. 정말 부럽네요 "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사진을 찍어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네 딸이에요. 늘 딸이랑 같이 다녀요. 조선에 없는 효녀지요"

그저 2박 3일의 짧은 여행인데, 어딜 가나 효녀 소리를 듣습니다.

효녀 되기가 이렇게 쉬운 일이었을까요?

아주 작은 노력으로 언제나 효녀 소리를 들으니, 가성비가 만점입니다.


물론, 언제나 좋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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