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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Jan 30. 2021

분실

철문 앞에 한 덩어리 봉투가 놓여있다. 안에는 우유, 세제, 시리얼, 라면 등 생활용품과 먹거리들이 들어있다. 검고 두꺼운 외투를 입은 장훈은 봉투를 가슴으로 끌어안고 문을 연다. 불 꺼진 집 안에 곰팡이 냄새가 감돈다. 장훈은 봉투를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 신발을 뒤꿈치로 눌러 벗는다. 방 안에 불을 켜니 군데군데 피어난 곰팡이들이 보이고 싱크대에도 물때가 끼어있다. 장훈은 봉투 안에 손을 집어넣고 들어 있는 온갖 물건들을 싱크대 위로 꺼내 놓는다. 아직 두꺼운 외투를 벗지 않는 장훈. 손마디가 두껍고 하얗게 갈라졌다. 머리는 턱까지 길렀지만 정수리 부분에 머리카락은 많이 빠져 두피가 눈에 띄게 보였다. 장훈은 냉장고를 열고 우유를 통째로 들고 마신다. 목 근육이 울컥 움직인다. 목주름이 사슬처럼 자국 남아 그의 목을 두르고 있다. 장훈은 봉투에 담긴 것들을 정리하고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간다. 거울에도 물때가 많이 껴있다. 겨울이라 집안을 환기하기가 쉽지 않다. 외풍 때문에 추운 집을 창문까지 열면 집에서도 외투를 입고 다녀야 할 정도다.  씻고 나오자 미리 켜 둔 보일러를 급하게 끈다. 아직 갚아야 할 빚이 많다. 예상치 못하게 누나가 사고를 당하고 얼마 모으지 못한 돈을 다 그 일에 부어야 했다. 그래도 모자라 대출을 받았으나 아직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은 빚을 갚는데 대부분 나가고 최소한의 생활비로만 생활하고 있다. 서른 중반에 이렇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미래의 대한 기대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걱정이 있지는 않았다. 그저 착실히 모으는 돈이 삶의 기쁨이었고 그 돈이 쌓여 갈수록 늘어나는 자유로운 상상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됐다. 집에는 컴퓨터도 티브이도 없다. 침대와 이불 그리고 옷을 거는 행거뿐. 몸이 차가워지기 전에 바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는다. 핸드폰을 켜고 얼굴에 비추는 작은 창을 보면서 오늘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린다. 장훈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길 바란다. 그래야 통장에 매달 꽂히는 돈이 그를 점차 가난한 구속에서 탈출할 여건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에는 누나를 외면할까 고민한 적도 있다.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금액도 있으니 어찌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다음 더 깊게 생각이 들어가지 못했다. 단 한 번도 돈이 많아 본 적이 없다. 풍족하게 써 본 적이 없다. 그저 생활하는데 내 한몫 부족하지 않게 살아왔다. 그게 익숙해져서인지 전보다 조금의 절약이 누나를 외면할 정도의 고통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저녁이면 장훈의 누나는 장훈에게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회사 다녀왔어? 응. 밥은? 집에 오자마자 먹었어. 누나는? 나도 방금 먹었어. 오늘 많이 춥다. 응 아침에 눈 내린 거 봤어? 아니, 지금은 녹아서 없네. 쌓이지 않는 눈인가 봐. 그래도 길 미끄러우니깐 조심하고. 알겠어. 또 전화할게. 장훈은 먼저 전화할 때가 없다. 돌아가는 시계침처럼 매번 이 시간이 돌아온다. 같은 목소리가 들린다. 장훈은 어릴 때 만화를 많이 봤다. 모험과 스릴이 있는 삶. 그런 삶을 추구하는 것은 철이 들은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지금의 장훈은 선택권이 없다. 극단적인 삶은 오히려 그를 안쪽부터 무너지게 만들 뿐이다. 새벽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불면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새벽 세시 집 앞에 쓰레기 차 소리가 들린다. 매번 듣는 소리에 장훈은 시간을 가늠한다. 삼일에 한번 그나마 잠 같은 잠을 잔다. 그것도 오래 자지는 못하고 작은 소리에도 바로 깨어나 버린다. 그 알람 소리에 대부분 주인공은 쓰레기차이다. 얼굴까지 이불을 뒤집어쓴다. 그래도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면 피곤함이 덜하니 몸을 곧게 펴고 딱딱한 나무 기둥처럼 누워있는다. 내일도 출근이다. 지금 다니는 직장은 월급이 넉넉하지 않아서 기술을 배워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돈과 시간을 들여 기술을 배워도 뽑아주는 곳이 많지 않아. 섣불리 해보지는 못한다.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있고 이 삶이 유지가 된다면 장훈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위태로움이 삶이 돼버렷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외식을 한다. 회사에서 식사를 지원해 주지만 집에서 항상 라면만 먹다 보니 영양 불균형이 와 병원비가 오히려 더 나온 적이 있다. 그래서 의무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외식을 한다. 주말이 되면 시간이 남는다. 장훈은 딱히 취미도 없고 밖에 나가면 돈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집에 있는다. 외식을 시작하면서 취미 아닌 취미가 됐다. 처음에는 집 근처 눈여겨봤던 음식점에 들어가서 식사를 했다. 몇 번 먹다 보니 질리기 시작했고 이왕 먹는다면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고 싶었다. 장훈은 회사에 출근할 때 입는 외투를 챙겨 입고 나와 걷는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음식점이 나올 때까지 계속 걷는다. 그러다 우연히 운명을 조우할 때가 있다. 내부로 들어가 사람들이 주로 시켜먹는 음식이 무엇인지 보고 종업원에게 같은 음식을 주문한다. 대부분 맛있다. 항상 익숙한 음식들만 먹다 일주일에 한 번 새로운 자극은 충분히 기다려질 만한 시간으로 바뀐다. 이제 장훈은 숨을 좀 쉬어낸다. 덮어쓴 이불을 얼굴까지 가린 채로 주둥이만 뾰족하게 내민다. 밖에서 침범해오는 추위나 쓰레기차 소리나 이불 한 겹에 가려져 버린다. 아직 내면에서 올라오는 불안함은 다스릴 방법이 없다. 도피처가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색다른 밥을 먹는 장훈이 도망갈 곳이 있다. 장훈은 출근을 하고 있다. 일부러 회사도 멀지 않은 곳에 구한다. 어떤 일을 하든지 상관없다. 장훈은 그저 돈이 필요하다.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이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말랐다. 애초부터 없었다. 그런 사람이었다. 부족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장훈은 항상 부족하다. 결핍으로 살아가게 하는 신의 장난인가. 장훈은 딱 그만큼 부족하고 그만큼 힘들다. 포기할 정도는 아지만, 딱 그만큼이다. 몇 년간 해온 일이다. 익숙하다. 일 머리가 좋지는 않다. 하지만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차곡차곡 늘어가는 실력이 지금의 위치를 만들어 줬다. 일반 직원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일을 맡고 있다. 중간급이라고 하기에는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그 어중간한 어딘가에서 장훈은 일을 한다. 장훈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 매번 하는 일에 스스로 방식을 만들었고 회사도 묵묵히 불평 없이 일하는 장훈을 내버려 둔다. 한 번은 회사가 바빴을 때가 있었다. 모두가 예민해졌고 서로가 서로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장훈에게도 이런저런 일을 과감하게 시켰다. 처음에는 묵묵히 하다 속도가 뒤쳐지니 큰소리가 날아갔다. 그때 장훈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자신에게 날아온 큰소리가 가득 따른 잔에 계속 물을 붓듯 쉼 없이 분노했다. 주위에 있던 모두는 놀랐다. 그 날 이후 더욱 서로의 범위를 침범하지 않는 어중간한 관계가 돼버렸다. 걸어서 퇴근이다. 박스를 들고 옮기던 손은 상처가 없는 날이 없다. 두꺼운 외투, 메마른 피부, 오래 서있어서 삐걱거리는 무릎을 앞으로 밀어내며 흡사 물속을 걷는 만큼 힘들다. 바닥에 떨어진 흰 장갑이 있다. 추워서 얼었는지 사람 손이 넣었다가 뺀 공간을 갖고 있다. 나도 누군가 떨어뜨린 장갑이 아닐까 생각하는 장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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