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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Feb 04. 2021

술래

아. 푹 꺼진 모래 구덩이는 놀이터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누가 팠는지 몰라도 저 아이들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다섯의 아이가 모여 술래를 정하기 위해 가위 바위 보를 한다. 누가 지든 누가 이기든 결국 술래는 찬우에게 간다. 찬우는 말한다. 아. 아니 그것은 말보다. 소리에 가깝다. 아. 어딘가 아프지 않다. 하지만 찬우는 어른들에게 아픈 아이 취급을 당한다. 동정받고 항상 신경이 쓰이는 아이다. 반대로 또래 아이들에게는 찬우가 골려먹기 딱 좋은 아이다.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찬우는 미끄럼틀 밑에 숨어 숨 죽인다. 한 아이가 가로등에 이마를 대고 일부터 백까지 숫자를 센다. 술래가 정해지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뛰어가 숨는 아이들은 어느새 모두 집으로 돌아간 것처럼 고요하다. 차 소리, 경적소리, 트럭을 모는 생선 아저씨 테이프 녹음 소리. 술래가 된 아이는 길고 긴 백초라는 시간을 세고 폴짝 뛰어 뒤를 돈다. 다른 아이들이 숨어있는 곳곳을 둘러본다. 찬우는 혹시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낼까 딸꾹질을 참듯 가슴을 누른다. 술래가 된 아이는 찬우가 숨어있는 미끄럼틀을 지난다. 찬우는 속이 간지러워 한계에 다다랐다. 그때 엄마가 알려준 방법으로 참았다. 꾹 참고 속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한 계단 두 계단 세 계단 네 계단. 찬우는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술래에게 걸렸다. 이번에는 찬우가 술래가 됐다. 찬우는 이마에 두 손을 포개고 가로등에 이마를 댔다. 아. 하나. 아. 삼십이. 아. 팔십칠. 아. 얼핏 들으면 일정한 박자가 있는 것처럼 찬우는 숫자를 셌다. 어딘가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찬우는 아침 새소리에 깨어 나는 듯 예민하게 귀에 집중했다. 천천히 걸어 그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갔다. 아. 그곳에 아이들이 없었다. 웃음소리는 또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찬우는 그곳으로 다시 천천히 하지만 전보다 빠르게 걸었다. 아. 아이들이 없었다. 찬우는 자신이 내는 소리에 아이들이 도망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이번에는 흥얼거리지 않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 가장 멀리 들리는 것 같아. 더욱 빠르게 걸었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찬우는 얼굴이 빨개져 숨을 크게 뱉으며 웃음소리가 들리는 벤치 뒤를 봤다. 아무도 없었다. 끝내 아무도 찾지 못한 찬우는 그네에 앉았다. 아. 아파트로 둘러싸인 놀이터에 찬우의 목소리가 울렸다. 쇠사슬이 녹슨 소리는 아까 들린 아이들의 웃음소리 같았다. 찬우를 처량하게 만드는 비웃음으로 들렸다. 그네 밑 모래를 발 끝으로 몇 번 긋고 나서 찬우는 그네에서 내려왔다. 하늘빛이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아. 찬우는 이 하늘빛을 제일 좋아한다. 길었던 하루가 지나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항상 하늘의 색은 이렇게 물들었다. 찬우의 엄마는 항상 걱정이 많다. 혹시 따돌림을 받지 않을까. 그로 인해 상처를 받지 않을까. 엄마의 그런 걱정을 알기나 하는 듯 찬우는 먼지 냄새 폴폴 풍기며 잘 놀다 왔다고 한다. 밥도 잘 먹고 매번 잘 웃는다. 찬우가 그러는 이유는 그래야 할 것 같아서이다. 집에까지 밖에서 받는 아픔을 끌어 오고 싶지 않아서이다. 아. 찬우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집을 향해 뛴다. 아. 눈과 귀, 피부로 느껴지듯 빠르게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찬우의 쓸쓸함을 떨쳐내게 해 준다. 찬우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현관에 들어섰다. 마침 자신이 사는 5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있었다. 아마 엄마가 일이 끝나고 방금 퇴근하신 것 같다. 찬우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거울 앞에서 여러 표정을 지어본다. 가장 좋아하는 표정은 입이 찢어지게 웃는 표정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치아가 보이게 웃는 표정이다. 자연스럽지 않지만 괜찮아 보이는 표정이다. 찬우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도어록에 비밀번호를 누른다. 아이들의 작은 웃음소리 찬우는 문에 귀를 대 보지만 이내 사라져 버린다. 찬우는 현관문을 연다. 생일 축하합니다. 현관에 같이 놀던 아이들의 신발이 가득했다. 찬우의 엄마는 주방에서 찬우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고 찬우도 엘리베이터 거울에서와는 다른 밝은 웃음을 지었다. 모두 여기 숨었었나 보다. 이제 술래는 찬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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