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희수 Feb 12. 2021

[1]

손목에 진동이 울린다. 손바닥을 펴 화면을 보고 데이터를 전송 받으면 아랫배가 가득찬다. 곧장 가까운 화장실로 가서 용변을 본다. 쏟아져 나온다. 최근에 과다한 업무로 항문에 상처가 났는지 그 부분이 쓰리다. 화장실 벽마다 항문 강화수술에 관한 광고지가 붙어있다. 이 수술을 하려면 비용이 지금까지 모은 돈을 다 써야하는데 당장 한달을 살아가는 돈이 부족해서 미뤄만 두고있다. 광고지를 구겨서 바닥에 내팽겨쳐 버린다. 내가 하는 일은 고객의 관한 정보를 알 수 없다. 그들과 나, 중간에는 내가 소속된 회사가 있어서 고객의 사적인 정보는 알 수 없게 일감만 받는다. 당연하다. 누가 자기 변을 대신 싸주는 이런 민망한 상황에서 자신을 알리고 싶겠는가. 이런 민망한 일에서도 타고난 자들이 있다. 튼튼한 장과 항문 내구도로 많은 일을 처리해 개인 사업체를 차리고 고정 고객들과 편하게 거래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는데 너무나도 남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능력은 거기서 거기인지라, 대행업체에서 주는 평균적인 양의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무리가 온다. 이 일로 개인 사업체를 차리려면 무리한 업무를 몇년간은 버텨내야 대출을 받아서 겨우 가능하다. 한 번 속을 비워내면 심한 허기가 밀려온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니 가운데 두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비워져 있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는데 주위가 어두워졌다. 올려다 보니 가게 사장이 굳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내가 멀뚱이 올려다 보고 있으니 방금 화장실에서 대행 용변을 봤는지 물어봤다. 나는 그렇다고 했고 사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끝에는 대행용변금지라는 판이 붙어있었다. 나는 가게에서 쫓겨나 거리로 나왔다. 배가 고파 허리를 굽힌채 걷고 있었다. 손목에 진동이 울리지만 무시한채 팔을 늘어뜨렸다. 그때 한 아이가 골목에서 뛰어나와 내 앞에 넘어졌다. 급하게 일어나는 아이의 팔은 철로 돼있었다. 고개를 돌려 골목을 보니 남자 둘이 뛰어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아이는 쫓기는 듯 했다. 아이는 모자를 눌러쓰고 인파를 향해 뛰어들었다. 두 남자도 금방 그 아이가 사라진 균열을 비집고 들어갔고 아이가 넘어진 자리에는 알약이 보이는 투명하고 작은 봉지가 있었다. 그 봉지를 들어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의 핏줄 처럼 얼기설기 금속이 퍼져있었고 나는 배가고픈 참이었기에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을 구분하는 경계가 흐려져있었다. 봉투를 뜯어 입에 털어넣었다. 약간의 포만감이 드는 것은 기분탓인가. 다시 쪼그라 드는 위를 달래기 위해 배를 쓰다듬으며 집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다 남은 피자 조각이있었다. 나는 잽싸게 입에 물고 쇼파에 앉았다. 무릎보다 낮은 테이블 위에 뚜껑이 따져있는 탄산음료가 있었고 피자와 함께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음식물로 채우니 기분이 좋아져 정신이 좀 들었다. 아까 먹은 알약이 어떤 약인지 궁금해졌다. 손바닥을 펴 벽에 화면을 띄우고 기억을 끄집어내 서칭을 했다. 기억 속에 있는 알약의 모습을 이미지화 시켜 검색해도 나오질 않았다. 찝찝했지만 무시했다. 손목에 진동이 울린다. 화장실로 가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는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 머리 속에 생각하지 못한 정보들로 넘쳐났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한 편의 영화로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배변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심한 두통을 느꼈다. 쇼파로 쓰러졌고 그 상태로 잠이 들었다. 차가운 촉감이 이마를 쓸고 지나갔다. 눈을 떠 보니 아까 마주친 아이가 내 이마를 어루 만지고 있었다. 재빨리 일어나 그 아이를 밀쳤다. 아이는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이 아이가 팔 뿐이 아닌 머리까지 기계로 바꿔 정신이 나갔나 싶었다.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꿈이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시간이었다. 먼지 낀 창문에 네온사인이 비춰 얼굴을 덮었다. 

작가의 이전글 술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