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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Jan 23. 2021

화상

애인과 차를 타고 캠핑장을 향해 가고 있다. 도로 옆 캠핑장 입구를 표시한 현수막을 보았다. 어둠이 길을 잘라먹고 있었다. 차를 몰아 그 안으로 들어갔다.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멀리 오두막이 보였다. 몇몇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여 조용했던 도로와 달리 그곳은 활기가 넘쳤다. 우리는 오두막 밑 공터에 차를 대고 나무 계단을 올랐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젊은 사장 둘이 있었다. 예약한 데크는 다른 캠핑장보다 떨어져 있어서 생각보다 걷는데 시간이 걸렸다. 둘이 조용히 있고 싶어 일부러 정한 장소인데 막상 와보니 외져서 위험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텐트를 설치했다. 늦가을이라 산 공기가 차가워 텐트 안에 난로를 뒀다. 늦게 캠핑장에 도착할 것을 예상해서 저녁은 오다 길에서 사 온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가 잠에 들었다. 새벽에 잠결에 옆에 누워있던 애인의 상의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맨살이 닿으니 따뜻했다. 그대로 가슴에 손이 갔고 애인도 잠에서 깼는지 고개를 돌려 키스를 했다. 입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고맙게도 코는 익숙한 냄새에 적응해 있었다. 우리는 작게 섹스를 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 사람은 자신이 서있는 위치의 감사함보다 보이는 위치의 갈망이 더욱 크다. 평화로움 속에서는 자극을 바라고 자극 속에서는 평화를 바란다. 아쉽게도 세상은 내 욕심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그런 환상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 내 집 안방에 강도가 있을 때도 있고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뛸 듯 기쁜 소식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는 전의 기억은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당장의 일에 온 집중을 한다. 그다음은 그 전에 지배를 받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적응하고 살아간다. 온몸이 불타는 고통에 깨어났다. 내 비명소리에 간호사는 달려와 진통제를 놓아줬고 나는 다시 잠에 들었다. 그 후 얼마나 지난 후에 다시 깨어났는지 모르겠다. 아픔을 참지 못하고 소리칠 때면 간호사가 달려왔고 그런 짓을 몇 번 반복하니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옆에 애인은 없었다. 의사가 찾아왔길래 애인이 괜찮은지 물어봤다. 괜찮다고 했다.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다. 우리가 자던 텐트에 불이 났고 나는 일산화탄소로 인해 기절해 있다가 구출됐다고 한다. 나 자신이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 물어봤다. 다음날이 돼서야 애인이 찾아왔다. 멀쩡한 모습에 안도감이 들었다. 자신이 빨리 구해보려 했는데 내가 무거워서 텐트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미안하다며 울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손을 잡아주고 싶었지만 온몸에 진물이 나서 움직일 때마다 살이 베이는 고통을 느꼈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는 말을 했다. 자꾸 잠이 쏟아진다. 진통제를 넣어주지 않아도 쉴 새 없이 잠이 온다. 아마도 몸이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 것 같다. 전처럼 돌아갈 수 있도록. 


일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 퇴원을 하게 됐다. 전과 다른 모습이다. 보이는 많은 부분이 피부가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눌어붙어있고 머리카락은 차라리 다 뽑아 버리는 게 더 보기 나을 정도로 흉하게 나있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썼다. 아직은 더운 10월의 날씨였지만 긴팔을 입고 택시를 탔다. 애인은 옆자리에서 내 울퉁불퉁한 손을 잡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애인과 같이 동거하는 집 달라진 점은 나와 같이 쓸 때보다 깔끔해졌다는 것. 둘이 쓰다 혼자가 쓰니 당연한 일이다. 미리 주문해 놓은 이발기로 머리를 밀고 깔끔하게 얼굴을 정돈했다. 막상 이리저리 보니 괜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애인은 우리가 모았던 캠핑 기구를 다 처분했다고 한다. 알았다고 했다. 고개를 숙이기에 다가가 안아줬다. 어깨가 움츠려 들기에 끌어 오르는 감정에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애인이 고개를 들자 우리는 키스를 했고 나는 애인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점차 아랫도리가 묵직해지기 시작해 나는 애인의 목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팔로 나의 가슴을 살짝 밀쳐내는 느낌이 들어 거리를 뒀다. 애인은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부재했던 시간 동안 내가 있었던 자리들을 정상화시키는 데에 많은 노력이 들었다. 그리고 몸상태가 전과 같지 않아서 더욱 힘들었다. 어딜 가도 주목받았다. 몸은 왜 이리 간지러운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를 챙겨주는 유일한 사람은 애인뿐이다. 연고를 발라주고 옆에서 부족한 부분을 챙겨준다. 하지만 더 이상 섹스를 하지 않았다. 나는 헤어지자 말했고 그녀는 울기만 했다. 짐을 정리해서 동거하던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일을 쉬어서 돈이 부족했다. 작은 원룸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새집에 들어와 모자를 벗었다. 차가운 공기가 두피를 통해 느껴졌다. 몸이 간지러웠다. 전과 달라진 것은 부족한 통장 잔고와 애인뿐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팔 한쪽이 없는 사람, 선천적으로 외모가 기형적인 사람, 키가 2m가 넘는 사람 등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해당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봤다. 정서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다쳤다면 방황했겠지만, 그런 심리적인 위태는 오히려 나의 목을 조를 뿐이다. 몸이 불편하고 상처 받는 말을 듣겠지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단 밖으로 나왔다. 목적은 산책이다. 사람들에게 나를 선보이기 위해 나왔다. 나를 보거나 나를 보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두 가지 목적만 있는 듯했다. 색달라 보이는 것에 대한 시선과 애써 피하려는 시선. 지금 정하지 말자. 새로운 삶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쌓는 게 중요하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혼자 밥을 먹고 술도 마신다. 편의점에 들어가 담배를 사고 콘돔도 산다. 한동안 섹스는 힘들겠지만 미리 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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