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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Jan 15. 2021

냉장고

친구가 죽었다. 이사를 하다가 냉장고에 깔려 죽었다고 한다. 이삿짐을 나르는 업체를 불렀지만 냉장고에 흠집이 나기 싫어 본인이 직접하다 계단에서 미끄러져 계단과 냉장고 사이에 끼었다고 한다. 갈비뼈가 부서져 폐를 눌렀고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에 죽었다고 한다. 외상은 생각보다 적어서 말끔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나는 육개장을 먹고 있다. 다른 친구들과 한 상에 둘러앉아 소주를 마시면서 같이 갔던 여행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냉장고는 팔았다고 한다. 누가 그 냉장고를 쓰고 있을까. 소변이 급해 화장실로 가서 소변을 눴다. 비틀대는 몸을 소변기에 기대고 차가운 벽에 이마를 댔다. 욕을 했다. 밖으로 나오니 주변이 조용했다. 담배가 피우고 싶어 밖으로 나왔고 추운 밤공기에 세 가치의 담배를 피웠다. 옆에는 머리가 벗어진 아저씨가 상복을 입고 담배를 피웠다. 다른 방에 사람인 것 같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고 친구들은 슬슬 갈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나도 옷을 챙겨 입고 친구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했다. 친구의 동생이 있었는데 늦둥이라 아직 초등학생이다. 나는 초등학생 때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몇 번 본 친할머니 였는데도 말이다. 그때 사촌동생과 레슬링 놀이를 하다가 울려서 혼나지 않을까 걱정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대리를 불렀다. 각자 집으로 향했고 나는 차 창을 열고 담배를 피웠다. 라디오에서는 우주비행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냉전 시대 소련과 미국은 앞다투어 우주로 로켓을 쏘았다고 한다. 그 우주선 안에는 여러 동물을 태워서 보냈는데 소련은 주로 강아지를 미국은 주로 원숭이를 태워서 보냈다고 한다. 소련은 원숭이를 살 돈이 없었나 보다. 나 같아도 인간과 같은 영장류 동물을 우주선에 태워 보내 실제 인간을 보낼 때 예상치 못 할 차이를 줄일 텐데 말이다. 결국 소련은 미국보다 빠르게 지구 궤도에 인간을 보냈고 미국은 달에 소련보다 빨리 인간을 보냈다. 그런 싸움이 지금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데 당시에는 꽤나 중요한 일이었나 보다. 이어서 라디오에 지겹게 틀어주는 발라드 음악이 나왔다. 슬픈 기분은 고조되기는커녕 너무 유치해서 기사님에게 라디오를 꺼달라고 했다. 조용해지니 잠이 들었고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해 냉장고 문을 열고 물통을 꺼내 물을 반통 정도 마셨다. 술기운에 침대로 쓰러졌고 몸을 조이는 옷을 헐겁게 당긴 뒤 핸드폰을 켜고 다음날 출근을 위해 알람을 맞췄다. 그 상태로 다시 잠에 들었다. 나는 우주에 떠있다. 지구 뒤로 태양이 떠오르고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렸다. 어디선가 개와 원숭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개들과 원숭이들이 서로 뛰어놀고 있었다. 나는 바로 이해했다. 아 미국과 소련에서 보낸 것들이 죽지 않고 우주에서 살고 있구나. 그 다른 종의 동물들은 사이좋게 뛰어놀며 광활한 우주 저편으로 사라졌다. 집에 가고 싶었다. 지구를 향해 헤엄치는데 아무리 가도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쉬며 달을 봤다. 생각보다 거대했다. 달 뒤편에 관한 음모론을 많이 들었다. 달의 뒤편이 보고 싶었다. 뒤편을 향해 뛰었지만 보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야. 누군가 소리치는 소리. 친구다. 친구는 납작해진 가슴을 갖고 나에게로 빠르게 다가왔다. 멀리 점처럼 보였던 친구는 어느새 내 앞에 와있었다. 나에게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 물어봤다.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나도 같은 질문을 친구에게 했다. 친구는 일단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 했다. 같이 하자. 그런데 소변이 마려웠다. 친구는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꿈에서 깼다. 화장실로 갔다. 방금 꾼 꿈이 꿈인지 무엇인지 얼떨떨했다. 냉장고를 열고 남은 물통을 비웠다. 입안이 개운했다. 어두운 방 안에 냉장고의 냉각기 소리만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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