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희수 Jan 07. 2021

안녕 양희수씨

인류가 좀비가 되어버린 상상을 한 적이 있는가. 나는 그런 상상을 자주 했다. 그러한 괴생물체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나면 서른이 넘은 나이인데도 방에 낮은 불빛을 켜 두고 잘 정도로 겁이 많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이 실제로 오고 나니 밖을 나갈 수 없었다. 모든 바이러스가 그러했듯 시작은 약소했다. 사실 좀비라고 말하는 그 상태와 다른 점은 공격적이지 않고 입에서는 가래 끓는 소리를 냈으며 얼굴에는 붉은 반점이 났다. 독특한 점은 바이러스가 걸리기 마지막 생활 패턴에서 머물러 행동했다. 지적인 수준은 아니었고 자신의 직업이나 취미생활에 맞게 움직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바이러스에 걸리게 되면 피부가 재생하지 못해 햇빛과 습기에 빠르게 몸이 부패하면서 죽어갔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 끔찍한 모습에 심하게 동요했다. 어떤 이는 종말을 이야기했고 거리로 몰려나와 해괴한 짓을 벌이는 단체도 생겨났다. 그러자 더욱 빠른 속도로 퍼지는 바이러스는 그들을 다른 공포로 몰아넣었다. 전 세계에게 지도자들은 모두가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으나 그들도 곧 좀비가 되어 목구멍에서 듣기 싫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확실한 전파 방식도 알 수 없어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폐쇄하고 모든 연락을 끊었다. 밖에는 운전하는 좀비, 뛰며 운동하는 좀비, 청소하는 좀비도 있었으나 그 소리가 활기보다는 소름을 돋게 했고 얼마 안 가 그런 소리마저도 고요하게 변했다. 한 공간에 오래 머무른 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특히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 없다면, 한동안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좀비들이 가져다주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봐 소독을 실시했고 수시로 상태를 체크했다. 밖에 나가서 물건을 구하는 것보다는 감염 확률이 낮아 보여 선택한 방법이었다. 얼마 못가 배달 좀비들도 몸이 다 부패했는지 더 이상 오지 못했고 나는 생존을 위한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 했다.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필연적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감염을 막기 위해 모든 구멍을 막았고 물안경까지 쓰고 밖으로 나왔다. 상당히 더울 것으로 예상했으나 다행히 밖은 늦가을에 조금 쌀쌀한 날씨였다. 예상외로 폭발한 자동차나 사람의 내장을 파먹는 좀비는 없었다. 손에 든 방망이가 민망할 정도로 밖은 어떤 움직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걷는 와중에 길 군데군데에 검은 덩어리들이 있었으나 자세히 가서 보지 않아도 예상되는 정체였다. 집 앞 소형 마트로 들어갔다. 통조림을 가방에 마구 쓸어 담았다. 발 밑에 수많은 전단지가 있었는데 신약 개발에 관한 전단지들이었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면 현재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겠지. 가방 가득 둘러매고 마트 카트도 꺼내서 그 안에 최대한 많은 물건들을 담았다. 집까지 끌고 가는 중간에 조금씩 떨어지기는 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감염이 되기 전에 빠르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나에게 손짓을 하며 자신에게 오라고 소리쳤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나 자신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지나갈까 생각도 했지만 일단 발길을 그 사람에게 돌렸다. 그 사람은 문을 열지 않았고 종이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써서 나에게 보여줬다. 첫 문장이 강렬했다. 백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다음 문장을 읽어 나갔다. 바이러스 사태가 일어나고 전 세계의 의학 전문가들은 빠른 확산속도를 어떻게든 막고자 다양한 백신을 만들어 일단은 보급을 했다고 한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완벽히 임상실험까지는 하지 못했고 즉각적인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으면 적은 가능성이라도 걸어보고자 많은 종류의 백식을 퍼트렸다고 한다. 그중 하나의 백신이 효과가 있었는데 이 백신은 바이러스가 완전히 감염되지 않는 사람에게만 예방 효과가 있어 이 사실을 모르는 이들에게  바르게 사용되지 못했고 자신은 그 효과를 자신의 자식에게서 발견해 지금 자식에게 투여한 상태라고 한다. 전파 속도가 너무 빨라 다른 사람들은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만약 효과를 발견해도 이미 신체에 잠복하고 있는 바이러스가 있어서 효과를 못 봤을 것이고 했다. 자신은 감염되어 문을 열지 못하는 상태라 하며 자신의 아이와 하나 남은 백신을 부탁한다고 했다. 머리가 멍해졌고 다시 한번 유리문을 두둘기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나보고 뒤로 물러나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이미 마스크로 가린 입을 막고 뒤로 물러났다. 살짝 문이 열리고 가방을 멘 아이가 나왔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아이의 가방 안에 백신이 들어있다고 했다. 얼떨떨했다. 아이가 와서 손을 잡았다. 이미 엄마와 어떤 약속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카트를 비우고 아이를 태웠다. 우리는 유리문 넘어의 좀비에게 손을 흔들고 큰 도로로 향했다. 어디로 갈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일단 걸었다. 걱정인 것은 나도 점차 목에서 가래가 끓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오래 시간을 끌기에 위험했다. 어디로 아이를 데려다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곳이 이미 감염이 되지 않는 곳이라고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만약 좀비가 된다면 아이는 찾아오는 겨울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우울해지는 감정 사이로 번뜩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카트를 강하게 밀며 뛰었다. 주변 두리번거렸고 원하는 것을 찾았다. 나는 아이를 안고 건물 이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쇼핑몰 사무실이었다. 나는 좀비가 쓰러져 있는 의자를 밀어내고 켜져 있는 컴퓨터로 주문 내역을 살폈다. 있다.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양희수. 역시 나와 같이 아직 서울 내에서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제 택배 좀비만 찾아와 준다면 그 좀비를 이용해 이 아이를 그 사람에게 보내 주면 된다. 나는 편지를 써서 아이의 가방 안에 넣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조금 있으면 냄새나는 아저씨가 오는데 꼭 놓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날 때까지 붙어있으라고 일러두었다. 편지 내용은 아이의 엄마가 쓴 내용과 크게 다르진 않았으나 인류를 위해 꼭 이 아이와 백신만은 지켜달라고 적었다. 곧 오후 네시다. 슬슬 택배 일을 하는 좀비가 올 시간이다. 혹시나 좀비가 오지 않거나 아이가 좀비와 같이 이동하다가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일어나지 않는 일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은 내려두고 선택을 믿기로 했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좀비가 들어왔다. 다행이다. 부패가 덜된 싱싱한 좀비다. 나는 아이에게 다시 한번 더 당부를 하고 아까 주문내역을 통해 송장을 뽑아 물건과 함께 좀비에게 주었다. 한 손에는 택배를 쥐어주고 다른 한 손은 아이가 손을 잡았다.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나는 차를 타는 아이와 좀비를 배웅하며 점차 멀어지는 택배 차를 보면서 안도감에 눈물을 흘렸다. 

작가의 이전글 퍼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