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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Dec 28. 2020

퍼즐

겨울이 되면 찬 공기를 피해 긴 굴다리 밑으로 숨는다. 그곳에는 잡상인들과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있다. 굴다리는 지상으로부터 계단으로 이어지고 가장 밑에서 세 번째 칸, 내 자리이다. 처음부터 이런 처지는 아니었다. 사업을 했고 직원은 20명 남짓 됐다. 결혼도 했으며 아내를 닮은 딸이 있었고 남들보다 조금 풍요로웠다. 하나 둘 직원들이 일을 그만뒀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항상 말단 직원들은 자주 바뀌었다. 문제라고 느꼈던 때는 나와 십 년 넘게 일하던 직원이 그만둔다고 했을 때였다. 그때도 그 직원을 붙잡을 생각만 했지 회사가 어느 정도 기울었는지 알지 못했다. 직원들이 적어지니 거래량을 맞추지 못해 거래처들이 떨어져 나갔고 동시에 직원들도 더욱 줄어갔다. 빚에 앉게 됐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압박에 도망쳤다. 모든 것을 포기하니 편해졌다. 처음에는 그저 남들이 찾아오지 못할 곳으로 숨었다. 가진 돈이 떨어지고 노숙을 시작했으며 우연히 얻은 체스판과 체스 말로 시간을 보냈다. 규칙을 알지 못했다. 장기는 둘 줄 알아 체스도 비슷하겠거니 싶어 나름의 규칙을 정해서 두곤 했다. 그 안에서 전쟁도 벌였고 화합도 일어났다. 나름의 드라마도 만들어 그들이 살아가는 것에 집중했다. 무료 급식소에 가서 밥을 받아오면 봉투에 모두 담아달라고 했다. 나는 개밥 같은 밥을 주물럭 거려서 주먹밥을 만들었다. 입에 한 덩이씩 넣고 체스판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짧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뇌가 따라가지 못했다. 기억하는 부분을 다음날이면 잊어버려 이어가지 못했고 기존에 알던 이야기들을 꺼내 썼는데 앎이 적어서 금방 소재가 떨어졌다. 그러다 주변의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둥근 대가리의 말들은 노숙자들로 성난 뿔이 달린 말들은 잡상인과 일반인들로, 하지만 이 이야기도 오래가지 못했다. 누가 이 체스판의 규칙을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전에 듣기로는 평생을 공부해도 모든 수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는데, 당장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규칙을 아는 이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했을 때 나라는 놈이 얼마나 지저분 한지 기겁을 할게 뻔했다. 구걸해서 모은 돈으로 사우나에 갔다. 노숙자라 입구부터 쫓겨 났다가 골목 깊은 곳 오래된 목욕탕에서 받아줘서 깔끔히 씻고 나왔다. 옷도 몰래 샤워장에서 세탁을 하고 말린 뒤 입으니 그럭저럭 멀끔한 얼굴이 됐다. 다시 굴다리로 돌아와 체스판을 계단에 펼쳐둔 채로 앉아 오가는 사람을 기다렸다. 어느새 내 옆에는 60대로 보이는 백인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두껍고 주름진 팔 위에 털이 굵게 나있어서 낯선 느낌을 강렬히 받았다. 그는 턱을 괴고 앉아 그의 앞과 내 앞에 일렬로 체스 말을 정렬시켰다. 그는 나에게 손바닥을 내보이며 먼저 하라는 식의 체스처를 취했다. 나는 말했다. 체스를 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는 놀라 나를 쳐다봤다. 알려주세요. 그는 하나하나 체스 말을 중앙에 두고 움직이는 규칙에 대해 알려줬으며 그 외에 게임에 필요한 규칙들도 알려주었다. 그와 서너 판을 두었다. 나는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았고 그는 시시한지 자리를 떴다. 나는 전과 다르게 체스의 규칙에 맞게 체스를 뒀다. 누군가 상대를 해주지 않았지만 혼자 이리저리 말을 움직여보는 재미가 있었다. 매번 의도적으로 다른 수를 뒀다. 반복 또 반복. 체스 말을 잃는 것이 두려워 오직 갖고 있는 체스 말을 살리기 위해 체스를 하다가 그것은 목적에 반한다는 생각이 들어 킹만을 노리고 체스를 뒀었고 그다음에는 목적을 위해 풀어야 하는 하나의 퍼즐로 보이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퍼즐 킹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는 않았다 단지 이 모든 체스 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어떠한 기세들이 보였다. 전에 하나하나 인물들을 대입했던 기억인지 체스 판 위의 말과 앞의 인간들이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그들도 각자의 기세가 있고 하나의 말로써 역할이 있고  한 판의 퍼즐처럼 살아간다. 그 안에 욕심이 있으면 이 사실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전에 내가 그랬듯이 잃고 싶지 않았던 모든 순간에 그 순간을 풀어나가야 하는 퍼즐이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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