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없다는 것은 어떠한 구조를 세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건축을 할 때도 수많은 단위들을 통해 복잡한 구조체를 튼튼하게 세울 수 있고 안경 도수를 맞출 때도 시력검사를 통해 정확한 도수를 눈에 맞출 수 있다. 종교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어떠한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며 그 기준에 따라서 살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철학자들이 고민하는 것들도 그들만의 어떠한 삶의 기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며 과학들이 원리를 밝혀내고 수학자들이 공식화하는 것 또한 정확한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기준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삶의 기준을 삼을 때 변하는 것에 기준을 삼는다. 그렇게 되면 삶이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기준을 삼고 그에 합당한 미래를 그려보지만 그것은 확률일 뿐 좋은 선택이 되지 못한다. 착한 남자와 결혼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기준을 삼았다. 착한 남자와 결혼하면 행복할 수 있는 확률은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착한 남자와 결혼한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고생한 만큼 삶의 성공이 있을 거야. 하지만 모든 사람이 고생한다고 그만한 성공을 얻지 못한다. 이처럼 수많은 기준들은 사실 기준이 아니며 그저 기준 삼을 뿐이다. 정확한 기준을 삼기 위해서 는 기준의 속성을 알고 고민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기준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또는 어떠한 상황이 와도 예외가 없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진리라고 이야기하며 누군가는 원칙 혹은 원리, 법칙 기준 등등 다양한 단어들로 이야기한다. 이 단어들은 이러한 성질을 대변하는 단어에 불과하며 불변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 것에 논리적으로 추론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수많은 기준들을 깊게 이해할수록 삶은 더 안정적이며 풍요로워진다고 확신한다. 미래가 불안하지 않으며 통제가능하는 것은 삶의 상수로 두고 그 이득을 꾸준히 증가시키며 통제 불가능한 것에는 쓸데없이 힘을 쓰지 않고 확률의 문제로 인식한다. 그렇게 되면 많은 것들이 정리되고 삶이 단순해진다.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는 없으며 확실한 이익들이 점차 증가한다. 그 이익은 누군가에 것을 뺏거나 속여서 얻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익히고 가꾸어 얻어내는 것들이다. 기준이 아닌 것, 원칙이 아닌 것, 원리가 아닌 것, 진리가 아닌 것을 속여서 파는 수많은 사기꾼들에게 더 이상 속지 않게 된다. 필요 없이 뺏기는 것이 없으니 스스로 윤택해지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니 스스로 풍요로워진다. 자신의 분야와 삶의 원칙을 안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