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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by 양희수

이 글은 설득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운동은 설득으론 지속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저 운동에 관한 고민과 개인적 철학이며 글로 남겨 2차적인 무언가를 기대할 뿐이다.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으려면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로써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기에 운동을 지속하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 긍정적인 면을 완벽하게 정리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리는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과 운동을 하는 사람의 어떠한 차이점을 느낀다. 그것만으로 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지만 스스로 더 근본적인 이유를 찾고 싶었다. 먼저 행동과 운동 그리고 스포츠를 나눌 수 있다. 행동은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이 하는 동작이다. 그 행동에는 이유가 있으며 신체적 영향을 끼치나 우리가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운동은 신체적 발달을 목적으로 한다. 운동을 통해 스포츠의 결과에 영향을 주려고 한다든지 개인적 건강을 위해 한다든지 규칙이 있는 스포츠가 아닌 신체적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위해 운동이라는 추상적 훈련을 진행한다. 스포츠는 앞서 말했다시피 약속이 있는 시공간 안에서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신체적 활동이라고 본다. 이 신체적 활동은 근력뿐만 아닌 두뇌의 활동에도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내가 고민한 문제는 운동이다. 운동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신체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학습과 연구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관성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매번 완벽할 수 없기에 운동도 이와 같은 성격을 띤다. 운동은 신체발달과 더불어 신체학습이다. 우리는 오감으로 학습하고 배운다. 또 스스로의 움직임으로 무언가를 깨달는다. 이것은 어쩌면 받아들인 정보를 토대로 무언가를 창작하는 활동과 매우 흡사하다. 우리는 창작을 통해 스스로 깨닫고 배워나가며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강화시킨다. 운동의 반복적인 동작을 통해 아무리 단순한 동작이라도 우리는 그 안에서 내면적 변화를 느낀다. 단순히 외부에서 봤을 때 물리적 움직임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공간에 맺히는 움직임을 연속해서 붙여나가면서 그 안의 인간의 내면에서 무언가 변화하기도 하고 정리되기도 한다. 그렇게 모양을 잡아나가면서 우리는 체육을 통한 인성발달과 사회성발달 정신적 건강을 기대해 본다. 하지만 단순히 운동을 하는 것 만으로는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 맞는 좋은 교육과 지도가 필요하며 그 안에 체육이 인간에게 필요한 타당성을 녹여서 올바르게 전달해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체육은 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단순히 힘을 기르고 단순히 공을 잘 찬다고 해서 운동이 가치를 띄는 게 아닌 것이다. 현대시대의 운동과 스포츠는 미적 요소 발달과 경제적인 부분에 치중되어 있다. 이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 또한 신체활동이 주는 또 하나의 가치인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체육의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고민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단단한 논리와 풍부한 문화에 끌리고 그 위에서 사회가 형성되듯 체육의 가치를 발견하고 알린다면 사회 전반적인 건강과 그로 인해 막을 수 있는 인적 손실과 체육의 생활화로 더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저 소비적인 경제적 가치는 시간문제이지 언젠가는 전부 손실된다고 본다. 근본적인 체육의 뜻을 발견한다면 체육이 주는 유희도 더 커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운동을 즐기면서 다 같이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구동이 가능한 신체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원초적인 이 활동이 생각보다는 더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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