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사람들: 빛

by 양희수
<엄은솔 두려운 사람들: 빛>

반토막난 집 내부의 세트에서 배우들이 연극을 하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출혈하며 죽어가는 연기를 하고 있고 그의 맥박을 집는 의사역은 땀을 흘리며 지혈하고 있다. 남은 배우들은 창밖으로 다가오는 공포를 경계하면서 창 너머를 보는 배우의 다음 대사를 기다리고 있다. 관객들은 같이 숨죽이며 무대를 향한 기대감을 간직한 채 신체 기관의 움직을 인식하지 못하고 가느다란 호흡을 유지하고 있다. 긴장감 속에 정적은 꽤나 오래 유지됐다. 창밖을 보던 배우는 대사를 잊어버렸는지 커튼을 쥐고 있는 손을 떨고 있었고 그의 눈동자를 볼 수 없지만 그의 뒤통수를 보면 분명히 동공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뒤에 경력이 제일 많은 배우가 그를 밀쳐내고그의 대사를 대신 뱉었다. 다행히 연극은 이어서 진행이 됐고 무대 인사는 한 명이 빠진 자리를 모두가 채웠다.


창 밖을 보던 배우는 연극을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다. 연출가는 왜 그런지에 대해 물어봤고 더 이상 창밖을 보는 역할은 무서워서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를 밀쳤던 경력이 많은 배우는 자신과 같은 것을 봤는지 그에게 물어봤다. 그렇다고 대답했고 자신과 같은 것을 봤는데 왜 두려워 하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대기실을 나갔다. 감정적인 대화들이 오가던 중 뒤에 있던 여배우는 손을 들며 다 같이 창밖을 볼 것을 제안했다. 우습다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연출가는 그 제안이 그만둔다는 배우의 생각을 이해하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창밖을 봤던 두 배우를 제외하고 모두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막상 창 앞에 서니 선 듯 먼저 나서는 자가 없었다. 연출가는 고개를 돌려 두리번 보더니 자신있게 창 앞에 섰다. 그는 과감하게 다리를 굽혀 창 앞에 앉았다고 생각했겠지만 그의 주저함은 티가 났다. 커튼을 천천히 젖혔다. 조명이 꺼진 무대인데도 창 건너편에서는 환한 오후의 빛이 들어왔고 연출가는 박장대소를 하며 자신의 무릎을 치며 일어났다. 그 웃음은 어떤 이에게는 더 큰 공포를 어떤 이에게는 긴장을 풀어주는 신호였다.


이어 다른 배우들이 연달이 창밖을 봤지만 각기 다른 반응을 했다. 우는 배우도 있었고 화를 내는 배우도 있었다. 경력이 많은 배우와 같은 반응을 보인 아무렇지 않아 하는 배우도 있었는데 그는 모두가 미쳤다며 자신은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 관객석을 지나 문을 박차고 나갔다. 다시 닫히는 문은 큰 울림을 냈고 그 소리 덕분에 감정이 범벅된 무대는 조금 안정을 찾게 됐다.


다음날 공연이 있기 전 창문에 나무판자를 부착하고 그 안에 조명을 달았다. 모든 배우들이 창밖에 더 이상 무엇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무대 연습을 마친 후 공연에 들어갔다. 관객들이 하나 둘 입장했다. 객석은 작은 소음들로 채워졌다가 조명이 들어오자 거품이 고요하게 가라앉았고 무대를 응시하는 눈빛들만 살아났다. 창밖에 공포를 목격했던 배우는 생각보다 불편함을 티 내지 않고 잘해주었다. 점차 전에 기억이 살아나는 그 장면이 다가왔고 오히려 경험한 공포를 떨쳐내기 위해 그는 평소보다 거칠게 커튼을 젖혔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그대로 얼어 버렸으며 무대 하수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연출도 무대 위 배우들도 창밖을 보던 배우의 어깨 넘어를 보고 각자의 감정을 터트려냈다.



그림출처

soule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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