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은솔 자화상>항상 무리한 지시를 한다. 옥상에 올라가 사람들이 다니는 도로를 향해 돌을 던져 보라든지 술을 얼마큼 마셔야 기절하는지 궁금하다며 내가 마시는 모습을 촬영하고 즐거워했다. 또 한 번은 배신당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나의 부모님에게 거짓된 욕설을 시켰다. 나를 갉아먹는 그녀의 말을 듣는 것은 나의 내면의 결핍 때문인지 반항하지 못하고 처참히 삶이 망가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녀 없이 살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고 올바른 결론을 내지만 실행으로 옮기지 못해 여전히 가시가 달린 바퀴에 몸을 굴리고 있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이 현대의 독보적인 진화를 만들어 냈지만 동시에 얼마나 잔혹한가. 더 많은 쾌락과 욕심 내가 죽어서도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그저 결말을 생각하지 않고 비극적인 관성에 의지해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결국 마지막은 살인인가? 왜 인간은 동족을 죽이는 것을 가장 큰 악이라 할까? 사회를 이루는 기초적인 질서 내가 너를 죽이지 않을 테니 너도 나를 죽이지 말라는 기본 생존에 대한 믿음을 부수려 할 때 모두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저지하려 한다. 그녀는 나의 손에 칼을 쥐어줬다. 다른 방법도 많을 텐데 왜 하필 칼일까? 사람을 죽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는 의도일 것이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고 함께 담배를 피우면서 새벽을 기다렸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 주택이 있는 골목길이 아닌 작은 가게들이 붙어 있는 골목길이다. 그녀는 전봇대 뒤에 검은색 옷을 뒤집어쓰고 쭈그리고 앉아 몸을 숨기고 있었고 나는 소매 안으로 숨긴 칼을 강하게 쥐고 있었다. 술 취한 사람이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흐느적 걸어왔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목에 칼을 찔러 넣고 뒤돌아 걸었다. 전봇대 뒤에 그녀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게 잡혀 판결을 받게 됐다. 그럴 때도 그녀는 내 옆에 있었다. 내 어깨에 기대어 작은 콧노래를 불렀고 내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불이 느껴졌지만 여기까지 오는 수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편안하다.
감옥에 있는 나를 찾아와 또 무리한 지시를 할까? 이번에는 따르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더 이상 우리의 숨을 느낄 수 없는 거리에 있을 것이고 그것은 이미 그녀가 나를 떠난 것과 다를 게 없다.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다. 점차 그가 거북해졌다. 나는 그와 관계를 끝내가 위해 헤어짐을 이야기하고 만날 일 없는 곳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나를 찾아냈다. 언제까지 내 옆에 있어 줄까? 한 아이가 다른 아이가 싫어 인상을 찡그리며 얼굴을 밀어내듯 나 또한 그러한 의도로 그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실망하고 떠날 줄 알았다. 이상하게 그는 모든 일을 즐겁게 했고 나에게 자신의 모습을 촬영해 달라며 부탁을 했다. 나는 그의 기괴한 칼날이 나를 향하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그의 기분을 맞춰 줬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없다. 결국 그를 가두기로 마음먹었다. 그에게 살인을 부탁했고 그는 방방 뛰며 기뻐했다. 나는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치고 올라와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장을 참을 수 있었다. 그는 긴장감 없이 인형을 찌르듯 살인을 했고 나는 곧바로 신고를 했다. 그가 왜 신고자가 나인지 의심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그가 떠나는 모습을 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아 판결이 끝낼 때까지 그의 옆을 지켰다. 손에 수갑과 얼굴을 푹 숙인 그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고 안도가 들어 그의 어깨에 기대어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불렀다. 내가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 등줄기가 뜨거워졌지만 그의 무력한 모습에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매 순간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이었다.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줬고 마지막 그녀의 콧노래가 그걸 증명한다. 우리는 멀어지지만 옷 속에 가시가 들어간 것처럼 불편하게 서로를 떠올릴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나는 왜 살인을 부탁했을까 그와 멀어지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을까? 나는 바꿀 수 없는 과거를 계속해서 생각하며 다른 방법이 있었다는 사실을 억지로 피하려 하고 있다. 그때 왜 그 방법뿐이라 생각했는지 어설픈 나의 판단을 그와 연결시켜 모든 것은 그의 탓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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