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 전체가 친정 집에 모였다. 이번에는 남동생네 100일도 안 된 아기가 있어서 외식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생일잔치를 하게 됐다.
가뜩이나 상 차리고, 맛있는 음식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친정 엄마는 기꺼이 요리를 하셨다. '당신 생일인데 굳이 뭘 직접 하시냐'라고 엄마를 설득하고, 말리고 한 결과 메인 디쉬는 배달을 하고 간단히 밑반찬 거리만 차리시는 걸로 합의를 봤다. 엄마처럼 요리를 좋아하는 남동생은 집에서 미역국을 끓여 왔고 요리 똥손인 나는 그냥 상차림만 돕는 걸로. 당연히 생신 선물은 따로 준비해 두었다.
하지만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들이 올라와도 엄마는 부엌에서 요리를 멈출 줄을 모르셨다. 샐러드에, 나물에, 김치전까지 하신다며 전을 굽고 또 굽고. 정작 생일파티의 주인공은 서서 일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중간중간 음식을 나르고 상을 정리하고 잠깐 앉았다가 호두도 챙기면서 나름 바쁘게 움직였다. 남동생네도 부부가 번갈아가며 아기를 보느라 제대로 먹지 못했다. 상을 온전히 지킨 건 친정아버지와 그의 막걸리뿐이었다. (우리 남편이 장인어른의 보조를 맞추며 이따금씩 그 옆에 있긴 했다.)
그래도 다들 왔다 갔다 하면서도 먹을 만큼 먹었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친정 엄마는 나더러 상을 싹 치우고 다시 세팅을 하라고 명령을 내리셨다. 이제 식사로 밥과 불고기, 미역국이 나와야 된다며.
다들 배가 부른 것 같은데, 뭘 또?
나는 엄청나게 많은 그릇들을 치울 생각에 짜증이 몰려왔다. 도대체 이게 누구를 위한 생일 파티란 말인가?!
어린아이들을 케어하느라 모두 다 같이 상에 앉아있을 수만은 없지만 친정 엄마라도 편히 앉아 드시고 계셨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 같다. 주인공이 계속 일을 하느라 분주히 움직이니 보는 사람들도 불편해서 가시 방석에 앉아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연로하신 엄마에게 일 하시라고 등을 떠민 적도 없는데 말이다.
백수저 셰프가 요리를 하고, 흑수저도 안 되는 주방 보조인 나는 뒷정리와 설거지를 하며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막상 엄마 밑에서 시중을 들 사람은 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편이 자발적으로 도와주어 다행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평소 남편은 장인어른 옆에 앉아 손하나 까딱 하지 않아도 되는 로열석에 자리 잡고 있다.) 이쯤 되니 일을 안 하고 노는 것만 같은 불특정 누군가가 원망스러웠고, 내년부터는 무조건 외식을 해야겠다는 다짐만 백번 넘게 되새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식사 상이 다 끝나고 여유가 찾아왔을 때쯤 나는 케이크와 디저트를 위한 상을 준비해야 했다. 끝도 없는 일에 한숨만 나왔다.
친정 엄마의 음식 부심, 손맛 자랑은 먹는 이에게 좋긴 하지만 이제는 본인을 위해서라도 편히 앉아서 누리셨으면 좋겠다. 올해는 손주가 너무 어려서 상황이 특수했던 점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주객전도가 되어버린 이런 잔치는 이제 내가 먼저 사양한다.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해야 할 사람은 '나'이기 때문에 강력히 외식을 주장하는 바다. 일이 너무 힘든 나머지 '누가 일을 안 하고 있나'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기 싫다. 누가 눈치 없게 놀고 있으면 속으로 원망이나 보내는 일도 더 이상 하기 싫다. 그래서 내년에는 조카가 돌쟁이가 되는 만큼 집 근처 식당에 예약을 해서 보모님을 모시고 가야겠다. 잔칫날은 잔칫날답게 모두가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한다.
그래도 맛있게 집밥 한상을 차려주신 엄마께 감사를 드린다. 누구보다도 힘드셨을 텐데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해주셔서 다행일 뿐이다. 한편으론 내가 요리를 대접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도 있다. 그런 마음을 담아서 내년에는 외식으로 보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