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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달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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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Jul 14. 2018

그리운 냄새

어머니의 빨래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박수근 화가의 ‘빨래터’다. 45억을 넘는다는 그 작품 안에는 개울가에 나란히 앉아 빨래를 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만 해도 동네 개천이나 물통에서 빨래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어머니들은 날마다 물통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쪼그려 앉아 비비고, 밟고, 빨래방망이로 사정없이 빨래를 두들겼다. 거기에는 시댁과 옆집, 앞집의 흉도 덤으로 끼어 있었다. 그렇게 실컷 두들기고 나면 깨끗해진 빨래들처럼 어머니들의 얼굴도 한결 환해졌다.


나는 빨래터에서 나는 물비누냄새가 좋았다. 깨끗한 물에서 풍기는 청량함에 하얀 비누거품이 더해진 상큼한 향이 좋아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늘 빨래터에 따라갔다. 또 말끔해진 빨래가 마당 바지랑대에서 바람 따라 나부끼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지만 이것은 어린 나의 생각이었을 뿐이고, 정작 빨래를 하는 어머니들 입장에서는 손빨래를 하는 수고가 수월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사시사철 찬물에 담느라 손은 퉁퉁 부어오르고, 쪼그려 앉아 문지르고 헹구다보면 다리가 저려 일어서기조차 버거웠으니 말이다. 


이제는 집집마다 상수도시설이 갖춰지고 세탁기를 들여놓으면서 빨래터에 갈 일이 없어졌다. 집에 있는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다른 일을 보다가 세탁된 빨래를 꺼내 건조기에 널면 끝이다. 드럼세탁기에 있는 건조기능을 이용하면 빨래를 바깥에서 건조시킬 필요도 없다. 공기방울로 묵은 때를 싹 벗겨내고, 친환경적으로 세제를 넣지 않아도 되고, 물 없이 공기만으로 냄새와 오염물을 제거할 수도 있다.


게다가 요즘엔 곳곳에 빨래방이 생겨나 이불이나 커튼처럼 부피가 큰 물건들은 그곳에서 말끔히 빨고 건조해 올 수 있다. 주말에 몰아서 빨래를 해야 하는 싱글족이나 빨래를 널 공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겐 더없이 편리한 일이다. 이제 더 이상은 집에서 빨래를 하거나 마당에 빨랫줄을 매거나 베란다에 건조대를 놓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빨래를 널 공간이 줄어들고 지하수가 줄어드는 요즘 세상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 산책길에서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낸 예전의 빨래터를 볼 때면 왁자지껄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청량한 물 냄새와 잘 마른 빨래에서 풍기던 햇빛냄새가 그리워진다. 그 어떤 독한 인조향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그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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