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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달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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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Jul 15. 2018

책에서 빗소리가 들릴 때

버스를 타요

책에서 빗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더없이 낮게 내려앉은 구름사이로 비가 내리고, 옆을 스치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자동차 경적소리가 멀게 느껴지는 그런 날.


예전에는 그렇게 빗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버스를 탔다. 무조건 거리로 나가 아무 버스에나 올라 종점에 닿을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창밖 거리 구경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울한 기분이 나아지고 속이 후련해지곤 했다. 버스를 처음 탔던 중학교 때부터 생긴 오래된 버릇이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버스로 통학하게 됐다. 부모님이  용돈을 주면 가장 먼저 승차권을 샀다. 열 장이 한 줄로 이어진 승차권을 받아 자로 갖다대고 반듯하게 잘라 지갑에 넣었다.  종이로 만든 버스 승차권이라 쉽게 찢어지고, 흘리기 쉬워 늘 조심조심 간수해야 했다. 


승차권을 잃어버리면 버스에서 현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에게 승차권을 빌리거나 그게 안 되면 집까지 걸어가야 했다. 학교에서 집까지 한 시간 가까이 걷는 일도 힘겨웠지만 친구들이 버스를 타고 떠난 길을 혼자 걷는 외로움이 더 싫었다.


스치는 차창 너머로 웃고 떠드는 친구들을 보며, 인생이 버스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버스가 멈추는 정류장에서 타고 내리는 이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고, 그러다 종점에서 홀로 버스를 내리는 것. 여전히 내게는 빗소리처럼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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