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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조선사

1. 고려 말 이성계 장군(12)- 고려의 마지막 충신

by 나루터

정몽주는 본래 이성계와 친했다.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러 전국을 돌아다닐 때, 많은 전투에 정몽주가 따라다녔다. 이성계가 활약했던 황산대첩 때도 그가 부장이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와 '육룡이 나르샤'에서 나오는 밀본의 민본주의 사상은 정몽주가 원류였다.


학식이 높고, 문하에 훌륭한 제자가 많고...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성리학을 고려에 들여온 인물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그는 학계의 거두였다. 그런데 그 점이 바로 이성계가 그를 계속 포섭하고 싶었던 이유였고, 이방원이 그를 반드시 제거해야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 이유였다.


'백성에 충성하지, 왕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우왕과 창왕을 폐위할 때도 찬성했던 그가, 과전법 등 신진사대부가 했던 숱한 개혁에는 때로 이견이 있어도 넘어가줬던 그가, 불과 얼마전까지 흥국사 9공신 소리를 들으며 이성계파로 여겨졌던 그가, 마지막 공양왕을 두고는 무모한 도박을 벌였던 이유였다.


우왕과 창왕이 아니라, 그뒤에 고려를 좀 먹고 있는 친원파 권문세족 이인임 세력을 쳐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이고, 마찬가지로 요동 정벌이라는 무모한 전쟁에 백성을 휘둘리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것이 그가 고려와 백성을 대하는 충절의 방식이었다.


이성계가 사냥으로 낙마하여 부상 당한 틈에 이성계 파의 주요 각료들을 귀양보내고 실각시킨다. 이성계 일파를 잠시 당황하게 한 것은 맞지만, 과연 그와 같은 방책이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두었을지는 불분명하다.


이성계가 죽은 것이라면 모를까 분명히 살아있었고, 이성계와 연관된 신진사대부를 모두 축출하기에는 이미 많은 신진사대부들이 이성계에 동조하고 있었다.


이방원은 그를 마지막 몽니로 보았다. 병문안을 왔다가 돌아가는 그를 조영규, 조영무 등 이성계 휘하의 무장들을 동원하여 선죽교까지 쫓아가 철퇴로 내리친다. 혹시나 정몽주에 동조하는 세력들에게 경고성 차원 또한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런 방식 역시 이성계가 이해못할 일이었다. 이성계가 바라보는 정몽주는 설득 가능한 대상이었고, 설령 설득이 불가능하다손 치더라도 공경해야 할 대상이었고, 죽이더라도 사약을 내려야할 선비였다.


정몽주의 죽음은 같은 목표를 향해 끈끈하던 아버지 이성계와 아들 이방원이 갈라지기 시작한 지점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후에 정몽주를 복권시켜준 것은 바로 아들 이방원이었다. 또한 세종을 이어 문종까지 조선은 4대 동안, 정몽주가 그토록 바라던 성군의 치세를 이룩한다.


개경의 다리에서는 충신의 피로 대나무가 자랐고, 그해 1392년 고려의 마지막 충신은 죽고, 조선이 건국되었다. 고려의 아이콘은 조선에서도 충신의 상징이 되었다. 고려의 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없었지만, 정몽주를 기리고 기억하고 계승하는 자들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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