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달려볼까요?
올해 2월부터 일주일에 3~4번씩 5km를 달리고 있다. ‘뛰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지만, 시간과 장소를 핑계로 미뤄왔다. 그러다 샬럿에서 사귄 좋은 친구와 달리기를 시작했고, 매주 금요일엔 그 친구처럼 좋은 그의 친구들과 함께 뛴다.
오늘의 코스는 달리기 동료 중 한 분의 집 근처, 아름다운 콜로넬 프랜시스 비티 공원(Colonel Francis Beatty Park)과 그 주변의 주택가다. 작년 이맘때 처음 샬럿에 왔을 때, 밤에는 비가 오고 아침엔 맑은 하늘이 이어지던 날씨가 마법처럼 느껴졌었다. 어젯밤에도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쏟아졌는데, 오늘 아침은 그로 인해 촉촉하고 무덥지 않아 달리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날씨가 온화하고 비도 자주 오는 샬럿의 풍경은 어디에나 키가 크고 품이 넓은 아름드리나무가 가득해서 걷든, 뛰든, 운전을 하든 눈이 시원하다. 내년 이맘때 샬럿을 떠나게 되면, 이 푸르름이 특히 그리울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는 동안 하늘은 완전히 개었고, 햇살 아래 잔잔한 바람이 불 때마다 큰 나무들에서 빗물이 후두둑 떨어지며 반짝이는 빛방울을 만들었다. 조용히 몸을 풀며 그 광경을 바라보는데, 사연 있는 사람처럼 갑자기 마음이 찡-하다.
애플워치의 실외 달리기 모드를 켜고 달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리듬으로 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분 좋은 내리막길을 만났다. 팔을 살짝살짝 흔들며 뒷발을 멀리 차보라는 남편의 조언을 떠올리며 초입의 내리막을 즐겼다. 비에 젖은 가지들이 길 양옆으로 굽어있어 숲 터널을 통과하는 것처럼 아늑했다.
비 덕분인지 공기가 맑고 상쾌해서 보통 첫 위기가 오는 3km 구간에서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러다 오, 드디어 오르막길이 나왔다. 오르막은 언제나 힘들기 때문에 나는 더 열심히 뛴다. 평지나 내리막보다 더 빨리, 더 힘을 내서 뛴다. 그러면 허벅지나 고관절로부터 지금 운동이 잘 되고 있다고 알려주느라 짜르르한 자극이 오는데 그 통증이 묘하게 좋아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삶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면, 어릴 적 나는 왜 내 삶엔 오르막길만 많을까 생각했다. 양팔을 벌리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여유 있게 내려가는 길 같은 삶만 좋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르막 길을 오르는 시간이, 단련된 근육을 느끼며 숨을 고르는 그 구간이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시간이 되었다. 신이 나에게 주신 것에 우연은 없다고 믿기에 달콤한 내리막길뿐 아니라 힘들고 험한 오르막길이 애틋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5km를 달렸다. 아직도 몸이 가벼워 다 같이 조금 더 달리기로 했다. 달리기 혼자 하는 운동이지만, 함께 뛰면 에너지도 기록도 더 좋아진다. 서로의 페이스는 달라도, 앞뒤를 챙기며 느슨하게 응원하다 보면 기록이 당겨져 있는 마법! 5km 이상 달리면 페이스가 떨어질 줄 알았는데, 평균 속도는 그대로였다. 다음번엔 10km도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공원 옆에 사는 동료 분 댁에 주차했기 때문에 다시 그 길로 돌아가야 했다. 약 1km쯤 남았을 때 마지막 오르막길이 나왔다. 아! 여긴 처음에 기분 좋은 시작을 만들어줬던 그 내리막길이네. 우리는 언제나 어떤 길 위에 있고, 내리막은 다시 오르막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구나.
달리기 친구들과 함께 그 오르막을 가뿐히 오른 후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총 8km를 달렸다. 애플워치가 최장 거리 달리기 운동을 완료했다고 금빛 배지를 줬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등에 땀이 흘렀지만 기분은 최고였다. 잘 달릴 수 있는 조건은 길의 고도나 코스가 아니라, 오르막으로 단련된 몸, 그리고 함께 뛰는 사람들이라는 걸 배웠다.
피트니스 앱은 내 달리기를 두고 “케이던스도, 심박수도 이상적”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유튜브에선 매주 5km씩 3~4회만 뛰면 똥배가 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내 보폭은 여전히 짧고, 똥배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ChatGPT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고관절을 단련하고 꾸준히 달리라고 조언해 준다. 귀엽고 짧은 두 다리와 말랑하고 풍성한 나의 배둘레. 이것들도 결국은, 내가 넘고 있는 작은 오르막들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