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제주에서 갈 만한 곳이 어디에요?
장마 기간인 이맘때쯤 많은 여행자에게 받는 질문이 있다. 비가 오면 어딜 가야 하나요? 비 오는 날 갈 만한 곳 추천해 주세요. 제주 여행에서 비 오면 뭘 하나요? 장마철 공식 질문이다. 장마가 지나가는 지금도 질문은 계속된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한동안 실내 관광지 위주로 소개했다. (사실 실내보다 만장굴을 가장 먼저 소개했지만 2025년까지 잠정 폐쇄라 더 이상 만장굴을 추천할 수가 없었다.) 미술관, 박물관, 체험 시설 등 관광지 제주에는 굵직한 실내 공간이 있어 추천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주 여행의 본질을 생각하게 되었고, 다른 곳이 아닌 제주로 여행 오는 여행자의 생각을 그려 보았다. 몇 곳은 제주를 느낄 수 있는 콘텐츠가 있지만 대부분 제주를 느낄 수 없는 미술관, 박물관인데 제주 여행까지 와서 어디서나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소개하는 게 맞나? 의문을 품고 비 오는 제주의 모습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곳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숲을.
여행 중 궂은 날씨를 만나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다. 예쁜 옷을 입을 수도 없고, 사진을 제대로 남길 수도 없고, 돌아다니는 동안 항상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여행하는 동안 비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여행 계획을 세우는 순간부터 날씨 체크는 가장 먼저이고, '가장 날씨가 좋을 것으로 예측되는 날' 여행을 떠나는 우리에게 우라노스도 그때마다 예보도 뒤바꾸며 비를 뿌리지는 못할 것이다. 여행에서 비를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흔한 일은 아니다.(물론 제주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예보를 자주 벗어나긴 한다.) 짜증이 밀려오는 비 오는 날의 여행이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제주에서 비를 만나는 일은 오히려 다른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흔하지 않은 특별한 경험이다. 남과 다른 특별한 여행을 하는 중이다.
비 오는 날 초록의 숲에 간다면 제주의 우중 풍경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투명한 빗방울과 나뭇잎에 떨어져 숲을 울리는 소리, 촉촉한 공기의 감촉, 물을 머금어 더 싱그러워진 초록, 비와 섞여 흙이 만들어 낸 냄새. 이 풍경, 이 감각은 비 오는 제주 그 자체다.
속상하고, 짜증 나고, 불편하다. 한 손에 항상 우산을 들고 튕기는 물을 잘 피해 보지만 바람이라도 불어닥치면 애써 침착했던 마음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런 불편을 무릅쓰고 비 오는 제주를 만나기 위해 애를 쓴다면 제주는 다른 사람에게는 알려주지 않는 소중한 비밀을 우리에게만 알려준다. 이 비밀은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