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주일 쉬고 4월 6일 새로운 시작을 위해 원룸으로 출근했다.
퇴사하기 전부터 여행업에 몸담은 고등학교 동창과 잦은 만남을 가졌다. 여행으로 돈을 벌고 싶었고, 구상한 건 있지만 여행 신의 생태계를 전혀 모르는 나는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했다. 여행업에서 10년의 경력이 있었고, 지금은 관광 IT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은 친절하게 업계 전반을 소개해 줬다. 우리는 사업 계획을 공유하면서 불안함보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나는 본격적으로 구상한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1년 정도 여행업을 경험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동창은 마침 자신의 계획을 알려 줬다.
핸디솔루션. 여행사, 특히 1인 여행사와 숙박을 연결하는 IT 솔루션을 개발하고 싶다고 했다. 여행사와 렌터카 사이에 실시간 가격 비교와 예약이 가능한 시스템처럼 여행사와 숙소를 연결하는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선이나 네이트온(제주도 여행업계는 여전히 네이트온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을 통한 예약 확정이 아닌 실시간 예약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 했다. 여행사 IT 솔루션 회사에 다니고 있는 관점에서 100% 필요한 시스템이었다. 여행사 IT 솔루션 중 구축되지 않은 건 여행사-숙소 솔루션이라고 했다. 관심이 갔다.
퇴사는 결정되고 퇴사일까지 남은 연차를 써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내던 때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중국 음식점 사리원에서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다. 이 자리에 고등학교 동창은 또 다른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왔다. 대학 시절 안면이 있던 터라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동창과 또 다른 친구는 이미 핸디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개발자를 영입하고, 현재 80% 진행됐고, 곧 베타 서비스를 오픈해 영업이 필요한 시기라고 했다. 고등학교 동창은 사전에 내 사정을 또 다른 친구에게 했고, 그 둘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핸디숄루션으로 여행 신에 들어왔다. 급여를 받는 직원이 아닌 투자를 통해 지분을 나누는 파격적인 위치로 들어왔다. 4억 원의 퇴직금으로 당장 금전적인 압박은 없었다. 프로젝트의 성공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여행업을 경험하는 게 더 큰 이유였다. 내 사업 계획은 여전히 유효했다.
퇴사 1주일 후인 4월 6일 고등학교 동창과 또 다른 친구가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원룸, 정확하게는 1.5룸으로 출근했다. 우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지문을 찍고, 깨끗한 사무실로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커피 한 잔을 뽑아 오늘 업무 시작을 준비할 수 있었던 시스템이 사라졌다. 1.5룸의 거실은 컴퓨터 2대가 놓여 있었고, 방에는 침대가 있었다. 8시 반에 406호의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고등학교 친구는 여전히 자고 있었고, 개발자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가장 필요한 건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었다. 9 to 6, 12시부터 1시는 점심시간, 사무실과 화장실 청소하는 일, 사무실 안에서는 금연. 아주 사소한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했다.
MS DOS와 GW BASIC 세대가 아니었던가. 핸디솔루션 로직을 이해하는 일이 어렵진 않았다. 처음 보고 이해할 만큼 잘 만든 솔루션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내 미래를 책임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솔루션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용자인 여행사와 제공자인 숙소에 모두 호응을 얻어야 했다. 내가 할 일이었다. 여행사와 숙소에 핸디솔루션을 알려야 했다. 당시 부킹닷컴, 익스피디아와 같은 해외 OTA와 야놀자, 여기어때와 같은 국내 OTA 플랫폼이 활성화되고 있었다. 시장에 나와 있는 플랫폼은 개별 여행객이 직접 숙소를 예약하는 시스템이었고, 대형 호텔 위주로 예약할 수 있었다. 여행사의 편리를 위한 솔루션은 핸디솔루션이 유일했다. 펜션과 중소형 숙소는 핸디솔루션을 통해 여행사에 자신의 숙소를 노출할 수 있음은 물론 비용 문제로, 자체적으로는 구축하기 어려웠던 관리시스템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숙소 예약 솔루션의 춘추전국시대에 분명 틈이 있어 보였다. 이 틈은 여행 신에 들어온 지 일주일 된 애송이의 판단일 뿐이었다.